"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시민건강논평] 사회적·건강 불평등, 현실 정치가 풀어야 할 가장 긴요한 과제

일부 지역에 또 큰 비가 예고된 광복절 아침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 14일 현재 14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황망하게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주택과 일터가 침수되고 파손된 이재민들도 하루 빨리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년 전 여름, 기후활동가들은 이례적이고 길었던 당시 집중호우에 대하여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라며 그 심각성을 알린 바 있다. 그런데 지난 주 폭우는 심지어 기상학적 특성이나 발생 시기에서 통상적인 장마 기준에도 벗어나 있다하니, 2년 새에 기후위기 문제는 보다 심각해진 것이 분명하다. 아니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비현실적 장면들은 그런 설명조차 필요 없게 만들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자연재난의 빈도나 강도가 평균과 변동성의 예상수준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1994년~2013년 동안 발생한 전 세계 자연재난의 43%가 홍수였다거나, 홍수 피해는 미국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자연재해라고 한데서 보듯이, 침수와 범람을 만들어 내는 홍수는 가난하거나 부유한 나라를 막론하고 대규모의 인명 손상과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흔하고 파괴적인 자연재난이다.

여름철 장마와 계절성 태풍 피해를 주기적으로 겪고 있는 우리나라도 풍수해 종합대책과 홍수상황 비상대응체계를 가동 중인데, 특히 올해 1월부터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홍수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이 증대된 상태이다.(☞ 바로 가기 : 환경부 5월 12일 자 '선제적·체계적 홍수관리로 인재 발생 막는다')

지난주에 발생했던 호우 피해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비적정 주거(반지하, 컨테이너 등)라는 사회적 위험이 기후 재난과 교차하면서 그곳에 거주하던 분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극단적 건강 불평등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모두가 극심한 홍수 상황에 노출되더라도 개인의 생물학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각자의 위험은 증가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 가령 어린이,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장애인은 특히 생물학적인 조건에 따른 이동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해안지역 주택이나 절개지 부근 거주자들은 범람이나 산사태 우려 때문에 재난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또한 이상기후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는 익사의 위험도 증가시키는데, 익사는 예방 가능한 죽음과 손상의 원인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그룹에서 익사 사망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건강 불평등이 존재했다.(☞ 바로 가기 : Social inequality in accidental drowning in Denmark 2001–2006)

건강 약자나 사회취약계층들이 재난의 피해를 가장 먼저 그리고 혹독하게 겪게 되는 이유는 미리 기후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거나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는, 그리고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복구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후 관련 사건의 위험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성 제한도 이들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더욱이 가족 중의 누군가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직접적인 건강 피해 외에도, 그로 인한 소득 감소나 가족 해체 등을 겪으면서 2~3배 높은 정신건강문제도 겪게 된다. 재난은 그 이전의 불리한 사회적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불평등의 격차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후재난과 주거빈곤의 결합으로 인한 생명과 삶에 대한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두고 주거정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구와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문제가 된 반지하 건축 불허에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양질의 주거환경을 부담가능한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주거 체제'에 대한 전면적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주거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기후재난이 주거나 노동, 교육과 지역 등 기존의 여러 사회적 불평등을 경유하여 건강과 죽음의 불평등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하고자 한다.

첫째, 재난의 대비와 대응과정에서 목소리 내기.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후 재난에 대하여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시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진 정부에 필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 관련 재난 위험이 개인의 건강상태, 삶의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재난에 취약한 집단들이 그들의 고통과 대안을 이야기하고 재난대책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정책과정을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취약집단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운동장'을 기울게 하는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가령 정부에서 밝힌 대로 '주민 소통 및 수요자 관점에서 홍수위험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 효과적이려면, 영향을 받는 주민과 수요자들이, 특히 재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정부가 수집하는 정보가 실제로 적절한지 혹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참여의 구조가 필수적이다.

둘째, 재난 복구 과정에 형평지향적 접근 적용하기. 홍수피해가 큰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의 홍수위험보호 프로젝트의 비용편익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재산피해를 효율적으로 줄이는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면 경제적 자원이 적은 흑인거주지역보다 부유한 백인거주지역의 보호가 우선이 되었다. 반면 각 주택에 균등하게 가중치를 두는 형평지향적 접근은 다수의 흑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많은 재건자금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바로 가기 : The Society for Risk Analysis(SRA) 2021년 12월 9일 자 'TRACKING INEQUITIES AND HEALTH IMPACTS OF FLOODING') 이는 재난 복구 계획에서 다수 시민들의 삶을 보호하는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쓸 수 없게 된 재료와 세간살이를 꺼내놓은 시장 골목과 반지하 가구의 안타까운 피해가 대서특필 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 재난 복구 계획과 예산집행이 이런 피해를 정상화하는데 얼마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던 포항 지진(2017년)이나 동해 산불(2019년)의 경우 사건 발생 후 2~3년이 지나도록 피해 인정과 지원금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정부의 이런 대응이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수해 현장에서 보인 여당 의원들의 몰지각한 언행은 이 정권의 권력자들이 시민들의 삶을 핍진하게 이해하고 형평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음을 짐작케 해 준다. 그들이 내놓을 대책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시민사회가 고통의 당사자들과 함께 형평지향적 대안을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의사결정자들을 견인해야 한다.

셋째, 기후정치의 주체되기. 압도적이고 위력적인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말을 상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기후정의를 기치로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는 뜻으로 '9월 기후정의행동'을 조직하고, '9.24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기후 지키기' 아니라 '기업 지키기' 바쁜 尹정부…기후정의를 요구한다)

기후재난을 통해 드러난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을 현실 정치가 풀어야 할 가장 긴요한 과제로 만들기 위한 기후정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기후 정치는 재난 복구에 한정되지 않는, 대안적 사회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근본적 사회 변혁 프로젝트이다. 시민들이 기후정치의 주체가 되고 결집하여 국가가 움직이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재난 복구 정책의 차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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