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우크라전 '잘못된 결합'…유럽 식량·에너지 위기 가중

가뭄·연료비 상승 겹쳐 노르웨이 전력 수출 중단할 수도…프랑스선 '겨자 품귀'

기후위기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복합적으로 얽히며 유럽의 에너지·식품 공급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유럽의 주요 전력 수출국인 노르웨이가 가뭄과 연료비 상승으로 전력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고 프랑스인들은 지난해 여름 폭염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민 향신료' 겨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편 스위스와 미국에서는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며 묻혀 있던 유해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을 보면 노르웨이 정부는 8일(현지시각) 수력발전소 수위가 계절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 전력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력 대부분을 수력발전으로 생산하는 노르웨이는 생산된 전력의 5분의 1을 수출해 '유럽의 배터리'라 불린다. 영국·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노르웨이가 수출을 제한할 경우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 전망이다.

노르웨이의 이번 결정에는 기후변화가 배후로 지목되는 유럽의 가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연료값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수자원 및 에너지 관리국은 많은 수출용 전력 케이블이 기반을 두고 있는 노르웨이 남부 저수지 수위가 1996년 이래 가장 낮은 49.3%만이 채워진 상황으로 계절 평균인 74.4%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남부의 전력 생산량도 18% 감소한 상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탓에 높은 연료비에 직면한 국민들의 불만이 겹쳤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는 이번 발표의 배경에 전기료 상승을 해외 수출 탓으로 돌리며 정부를 공격한 야당의 주장이 있다고 분석했다.

노르웨이가 수출을 제한할 경우 이미 높은 연료비에 직면하고 있는 유럽의 고통이 가중될 전망이다. 이미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재가동 중인 석탄 발전소 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화석연료 사용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에 기반을 둔 컨설팅 회사인 오로라에너지연구소 분석가들이 노르웨이가 수출을 중단할 경우 영국이 가동 중단 예정인 석탄 발전소를 다시 가동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합은 향신료 겨자(머스타드)의 세계 최대 소비국인 프랑스에서 겨자 품귀 현상을 낳기도 했다. 미국 방송 CNN은 프랑스인들이 겨자를 구하기 위해 상점 개점 시간에 맞춰 10~15명씩 줄을 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를 이어 겨자 판매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마크 데자르메니앙은 이 매체에 "배급표를 받았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후 시기에도 겨자는 있었다"며 겨자가 품절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겨자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은 소셜미디어(SNS)에 "상점이 가격을 부풀리기 위해 겨자를 빼돌리고 있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퍼뜨리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지만 품귀 현상의 실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겨자씨의 주 산지인 캐나다에 지난 여름 과학자들이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49.3도에 달하는 폭염과 가뭄이 덮치면서 생산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캐나다 농업부 대변인은 CNN에 "캐나다는 2021년에 프랑스로 157톤의 겨자씨를 수출했는데 이는 2020년에 비해 80% 감소한 것이고 최근 5년 평균에 비해 94.9%나 적은 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출량 감소가 겨자씨 재배 지역이 "2021년에 극심한 건조 기후를 경험해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며 "농부들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농업부는 다만 올해 작황은 좋을 것으로 보고 내년엔 수출량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더해 프랑스가 대체 수입처로 눈여겨 보고 있던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지면서 겨자 수급은 더 어려워졌다. 더구나 겨자씨의 주 재배지는 헤르손 등 러시아군이 점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다. CNN은우크라이나 농부들이 러시아군에게 작물을 강탈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 지역이 점령 상태에 있는 한 겨자씨 수출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제 프랑스인들은 겨자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적었다. CNN은 겨자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고추냉이(와사비) 등 다른 향신료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폭염·가뭄으로 빙하 녹고 호수 말라붙으며 '숨겨진 주검' 속속 발견

한편 스위스에선 치솟는 기온으로 인해 빙하가 녹으며 실종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8일 스위스 경찰이 두 명의 프랑스 등산가가 남부 발레 지역의 헤셴 빙하를 오르던 중 유해를 발견한 것을 확인했다고 9일 보도했다. 지난달 말 체르마트 리조트 근처 슈토키 빙하 주변에서 유골이 발견됐다. 약 300명의 실종자 명단을 관리하고 있는 알프스 지역 관할 경찰은 신원 식별에 며칠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교적 강설량이 적은 겨울을 지나 여름 폭염을 맞은 알프스 산지의 7월 기온은 1600m 고도 체르마트에서 거의 30도까지 올라갔다. 물이 얼어붙는 온도인 빙점(0도)의 고도는 지난달 5184미터(m)로 올라갔다. 이는 이전 기록인 1995년 7월20일(5117m)보다 거의 70m 더 높은 것이고 유럽 최고봉인 알프스 몽블랑 정상(4807m)보다도 높다. 평년 빙점은 3000~3500m 고도에서 형성된다.

미국에서도 가뭄으로 말라붙은 호수에서 유해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인근 미드 호수에서는 지난 5월부터 이달 6일까지 연이어 4차례 주검이 발견됐다.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경찰당국은 5월 첫번째로 발견된 주검은 총을 맞아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미드호의 수위는 193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며 용량의 27%밖에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5월 10일(현지시각)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미국 라스베이거스 인근 미드 호수에서 예전에 가라앉은 배가 발견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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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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