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에서 제가 만든 행복한 빵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그곳에 잘 있나요? : 파리바게뜨 노동자와 청년들의 릴레이 편지 ①] 단식에 나선 파리바게뜨 노동자 최유경에게

하루 한 시간, 한 달에 6일도 쉬지 못하는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노동착취와 노동탄압을 멈추라고 청년들이 나섰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대부분이 2030청년노동자로 알려지자, 또래 청년제빵노동자의 눈물이 담긴 빵을 먹지 않겠다고 불매에 동참했다.

파리바게뜨는 오늘날 노동문제의 종합백화점이다. 본사노동자와 파견업체 노동자의 임금차별과 승진차별, 하루 한 시간도 쉬지 못하고 휴가와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쉼 없는 일터, 심지어 ‘민주노총 제로’가 회사의 목표인 반노동기업이 바로 파리바게뜨와 SPC그룹이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논리 아래 차별과 착취가 정당화되는 시대. 정직한 땀의 대가를 부당하게 빼앗겨본 경험이 어떤 청년인들 없을까. 이미 빼앗김이 일상이 된 청년과 파리바게뜨 노동자가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안부를 보낸다. 7월 4일부터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이 집단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시민들은 SPC제품 불매로 연대한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바라며, 매주 편지와 답장을 함께 실어 전한다.

-보낸이 : 정지원(중앙대학교 제 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 활동가)

-답장 : 최유경 파리바게뜨지회 수석부지회장(단식 17일차)

○ 페미니스트이자 동료 시민 지원이 단식에 나선 파리바게뜨 노동자 최유경에게

안녕하세요, 최유경 수석부지회장님! 저는 지원이라고 해요.

실제로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께 편지를 쓰려고 하니,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게 어색할까 봐 혹은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단식농성이 10일 차를 넘어가는 시점에 건강은 괜찮으신지, 점점 더워지는 여름 열기에 지치지는 않으신지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고요. 그래도 '안녕하세요'라는 다섯 글자를 적고 보니 마음을 한 글자씩 꼭꼭 눌러 담을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납니다.

저는 선생님과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고,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이자, 노동자입니다. 가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셨던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저도 끊임없이 계속 노동하며 서울을 살아내고 있답니다. 노동하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밤늦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이고 있을 때 저는 처음으로 SPC가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날은 한 끼도 안 먹고 일한 뒤 배고파 죽겠다, 싶은 마음으로 허겁지겁 입에 뭐라도 밀어 넣고 눈으로는 SNS를 둘러보던 참이었습니다. 하루 첫 끼인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올렸을 때, 임종린 지회장님의 단식 일기를 보게 된 거죠.

ⓒ프레시안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연차휴가, 보건휴가를 사용하기는커녕 점심시간 1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월경대조차 갈지 못하는 상태로 뜨거운 오븐 앞에 서서 빵을 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프면 쉬게 해달라고, 가족이 상을 당하면 장례식에 가게 해달라고, 일한 만큼 연장수당을 지급해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SPC의 노동 착취와 노동자 탄압에 맞서 배고파 죽을 각오를 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도요.

저는 월세, 교재비, 생활비, 교통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 식비를 줄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정말 배고플 때 먹었던 빵이 바로 삼립의 단팥빵이었어요. 누군가 노동을 마치고 살기 위해 먹었던 달콤한 빵이, 누군가의 노동 착취로 만들어진 빵이었다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SPC가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실행할 때까지 SPC 제품을 불매하고 파리바게뜨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SPC 기업의 노동착취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같아요. 2030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삶과 투쟁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노동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이기에 SPC그룹의 만행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임종린 지회장님의 53일간 단식 이후에도 SPC와 파리바게뜨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다시 단식에 돌입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건강 꼭 챙기시고 맛있는 밥 드시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드리기를 참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밥 한번 먹자가 인사인 나라에서 밥 먹기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분들께 연대와 지지로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이 편지를 받게 되실 최유경 수석부지회장님, 그리고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분들, 안녕하세요. 편지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함께 단식투쟁을 시작하신 노동자분들께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하루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쭈어보며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최유경 수석부지회장님을 포함하여 현재 집단 단식에 돌입하신 노동자분들의 일상, 임종린 지회장님의 53일간의 단식투쟁 이후에 다시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마음들, 안녕이 궁금해요.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파리바게뜨 노동자분들께서 안녕하신지 궁금해하며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함께 분노하며 관심을 갖고 연대하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꼭!

2022. 7. 14.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 노동자 지원이 애정을 담아 편지를 드립니다.


○ 단식17일차 파리바게뜨 노동자 최유경이 지원에게

지원님 안녕하세요.

저는 파리바게뜨 제빵노동자이자 파리바게뜨지회 수석부지회장인 최유경입니다.

우리의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신 편지에 너무 감동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단식자들은 하루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저희 사실 매일 먹방보면서, SNS 맛집 검색하면서 대부분을 보내고 있어요. 저희보다 먼저 단식했던 임종린지회장이 매일 먹방 영상을 보길래 저걸 보는 게 도움이 될까? 했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맛집을 서로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정말 세상에 맛있는 게 어찌나 많은지 새삼 느끼면서 단식이 끝나면 맛집 투어 결의도 했답니다.

오늘은 단식 17일차 인데요. 어제는 김예린 대전분회장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을 했어요. 몸이 안 좋은 상태에도 버티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까지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휴식권을 보장해달라' 약속을 지키라며 회사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 너무 화가 나고 눈물이 났습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이 4일 SPC(파리바게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단식 돌입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가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누구를 위해 하는 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점이 생기는데요. 사실 어떠한 답을 내리기 참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근데 요즘은 그 답을 조금씩은 찾아가는 거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SPC를 향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오늘도 점심밥을 못 먹고, 더위와 싸우면서 일하고 퇴근 시간을 맞추려 그 비좁은 주방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했을 제빵, 카페 기사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고, 우리의 투쟁을 응원을 해주시고 연대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제가 그리고 우리가 잘못된 싸움을 하고 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저희를 보면 불매를 하겠다. 난 파리바게뜨 빵을 사 먹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파리바게뜨 빵 사드세요"라고 선뜻 꺼내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납니다. 많은 분이 "우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니 다른 사람들 눈에도 저희 제빵·카페 기사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다는 거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감사했어요. 그 감사한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투쟁에서 이기려 합니다. 그때 제가 만든 행복한 빵을 지원님과 연대해 주시는 모든 분과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건강 꼭 챙기시고 맛있는 빵 드시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원님의 응원과 연대 감사드려요.

2022.7.20.

휴식권을 보장하라!! 점심시간 보장하라!!를 외치며 단식 17일차인 파리바게뜨 제빵노동자 최유경드림.

해당 기고는 <참세상>과 <오마이뉴스>에 동시 기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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