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64명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해결을 위해 정부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그리고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55.7%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국회의원 64명은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호소는 단순하다. 임금 정상화,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라며 "무조건 버티고 앉아 있는 대우조선해양도 문제지만 무책임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문제가 더 크다"고 밝혔다.
특히 하청업체 노사간 '당사자 간 대화'를 강조한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이들은 "힘없는 하청 회사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며 "현장의 파국을 방치하는 것이 노사 자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책임 있고 균형 잡힌 자세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산업 현장의 평화도 지킬 수 있고, 노사 자율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이들 입장이다.
그러면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들은 "권한 있고, 책임 있는 주체들이 나서야 한다"며 "도급단가를 통해 사실상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원청기업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책임 있게 문제 해결에 나서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계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국책기관"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서 저임금과 인권 파괴적 상황을 방치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극한투쟁에 나서기 전에 산업은행이 상생 경영에 앞장섰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노조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을 원상 회복해달라"
전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3명이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은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금속노조는 산업은행과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실소유주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산업은행과 정부의 수수방관은 거제의 끝장투쟁 7명에 이어 또다시 3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도록 내몰았다"고 밝혔다.
조선업계가 수주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루어진 조선업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지난달 2일부터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30% 인상)과 노조 전임자 인정 등을 위해 파업에 들어갔다. 2년여간 이어져 온 교섭에 이렇다할 진전이 없자 결국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끝장 투쟁'에 나섰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지난달 22일부터 가로·세로·높이가 각 1m인 쇠창살에 스스로 자신을 가뒀다. 6명의 하청 노동자도 같은 사업장에서 20미터 높이의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측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했다는 여론전으로 맞불을 놓았다. 대우조선해양(대표이사 박두선)은 지난 6일 CEO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도크 무단 점거로 전후 공정의 생산량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는 등 회사의 존폐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며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비판했다. 대우조선해양 직장·반장들로 구성된 현장책임자연합회와 사내협력사대표들도 지난 4일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2만여 명의 생존권이 불법 시설물 점거자와 일부 강성 추종자 몇십 명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며 경남경찰청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촉구안을 제출했다.
여기에 원청업체인 대우조선 노조가 하청업체와 함께 소속된 금속노조 탈퇴를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갈등은 두 노조간 갈등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지회는 지난 13일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형 노조로 전환하자는 조직 형태 변경 총회 소집 요구 건을 조합원들로부터 접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뒷짐 진 정부 "일단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정부는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중단을 요구했다.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55.7%를 소유하고 있는 국책은행 산업은행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대화 당사자는 법적으로 하청업체 노사"라며 "일단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한다"고 발을 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 브리핑에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조의 점거행위는 일부 조합원들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점거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비조합원들의 피해를 당연시 여기는 노동운동은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만,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는 하청업체 노사간 대화를 강조하며 정부의 역할과 책임에선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정식 장관은 "노동3권은 합법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고 노사갈등은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당사자 간 대화'를 강조했다.
이 장관은 "문제해결 당사자는 원하청 노사"라고 대우조선해양도 당사자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기자회견 중 실무자와 대화한 뒤 "법적으로 당사자는 하청의 노사"라고 정정하며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을 '당사자'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노조는 원청인 대우조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향해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다. 협력업체가 대우조선으로부터 기성금(원청에서 공사가 진행된 만큼 계산해 하청에 지급하는 대가)을 받아 운영되기 때문에 원청인 대우조선이 기성금을 올려줘야 임금 인상, 노조 활동 인정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이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노동부가 중심이 돼 4자 간에 적극적인 대화를 주선해 보라고 해서 저희가 그것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도 지금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각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창양 산자부는 장관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대화에 나서는 데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산업은행과 기획재정부, 산업부 등 노사 주변의 기관들이 노사관계가 원활하게 타결되도록 협조하고 지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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