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말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이고, 법정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에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와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노동 분야 현황과 과제' 토론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와 국정과제 이행계획에 제시된 노동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한 노동시간 유연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완화 시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 부재 등을 문제로 꼽으며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조목조목 따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최저임금의 차등적용 필요성과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한 노동시간 유연화를 언급해왔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시사한 바 있다.
"주 64시간까지 노동하는 특별연장근로... '예외적' 제도가 '통상적' 제도화 될 것"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52시간 노동 시간 상한제가 있지만,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확대함에 따라 주 52시간제가 무력화하리라고 전망했다. 특별연장근로는 근로기준법 53조에 의거해 특별한 사정이 발생해 법정 연장 노동 시간인 52시간을 초과해 1주 64시간까지 노동을 가능하게 한 제도다. 즉, 사실상 주 64시간 노동제가 굳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이 '특별한 사정'을 대폭 확대해 근로기준법 무력화를 시작했다. 2020년 1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인가 사유를 기존 '재해·재난 수습'에서 ① 재해·재난 수습·예방 ② 인명보호·안전확보 ③ 돌발상황 수습 ④ 업무량 폭증 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으로 확대했다.
이 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2020년 300인 이상 사업장 1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인가 사유를 대폭 확대하였다. 특히 '업무량 폭증'도 사유에 포함되면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2017년 15건, 2018년 204건, 2019년 908건이던 것이, 인가 사유가 확대되면서 2020년 4204건, 2021년 6477건 등으로 증가했다. 특히 업무량 증가 사유로 인한 인가 건수는 처음 시행된 2020년 1091건에서 2021년 3865건으로 거의 4배 폭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스타트업을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포함시키는 과제를 제시했다. 그렇지않아도 이미 남용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제도가 더욱 확산되고, 1주 최장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무력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외적'인 제도가 '통상적'인 제도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도 "정부는 '노사 자율적인 근로시간 선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려 한다"며 "과로사회라는 결과를 바꾸려면 개별 노동자와 사용자의 필요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일자리 나누기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노동시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이를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적정한 노동시간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동시간법제가 해외와 비교했을 때 그리 '경직'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은 해외법제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법제가 경직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프랑스의 경우 주 기준근로시간은 35시간과 함께 1일 최장 10시간(기업협약에 의해 최장 12시간), 1주 최장 48시간, 12주 평균 주 최장 44시간(기업협약이나 행정관청 승인에 의해 최장 46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노동시간 규율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의 경우에도 1일 8시간을 기준근로시간으로 하고, 1일 최장 근로시간은 1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6개월 또는 24주의 단위기간 평균 1일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1주 최장 60시간까지 허용되나 이는 1일 10시간의 최장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며 "세계적인 과로사회 한국에서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들기 시작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우려 역시 나왔다. 경영계는 올해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막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이 과도하다고 반발하며 시행령으로 '대표이사'를 처벌에서 면제하는 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정부도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제 완화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출입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산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일종의 규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며 "국제적인 기준을 맞추는 것이 우리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타당하지 않겠냐"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한 규제라는 산업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며 법 개정을 시사했다.
한 총리는 "산업 안전 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 다 동의하고 목적에 아무런 논쟁이 있을 수 없지만 그 방법론이 적절한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우리나라 CEO와 외국 CEO가 책임이나 이런 면에서 너무 다른 것 아닌가 하는 것을 봐야 한다. 가능한 우리로서는 국제적인 기준을 맞춰가는 게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타당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를 시작했다"며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당장의 법개정이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지침·매뉴얼 같은 행정작용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보건의무의 범위를 축소해석하여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전략"이라고 짚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관리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산업재해 취약부문에는 안전장치나 설비 등 기업이 해야 할 인프라 지원을 정부가 하겠다면서 정작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기업의 처벌이나 규제를 줄이겠다는 태도"가 현 정부에 보인다며 "산업안전정책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기업의 경영 보호에 맞춰진 정책방향"이라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감축과 차별해소를 위한 정책이 부재하다고 박 부원장은 꼬집었다. 박 부원장은 "새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어떠한 정책적 과제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고용형태의 비정상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도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2000년대 들어 역대 거의 모든 정부는 노동시장정책에서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관련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는 이 과제들이 사라졌다"며 "윤석열 정부가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사항은 국정과제 이행계획 중 '취약계층을 위한 노동권 보호 강화' 부분에 '상식에 기반한 기업의 인력운용 지원 등을 통한 비정규직 남용 방지'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남용 방지를 위해서는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 등 입법적 조치와 행정적 노력이 필요한데, 기업의 '상식'에 맡기겠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비판했다.
박 부원장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보면, 보편적 노동권의 문제는 그저 취약계층 보호로, 이러한 취약계층을 위해 필요한 보편적 노동권의 내용은 임금체불만 해결해주면 되는, '고용상 애로사항을 개선'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며 "노동권 보장의 필요성과 보편적 권리로서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극히 지협적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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