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바둑을 보며 권력과 기후위기를 생각하다

[기고] 깨달아야 한다. 멈춰야 한다. 그리고 바꿔나가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들어 세상 소식을 구태여 알아보거나 듣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바둑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자주 보게 된다.

바둑은 그간 ‘도(道)’나 ‘예(藝)’의 세계로 지칭되어왔다. 특히 일본에서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세계 바둑계를 일본이 오랫동안 평정해왔기 때문에 바둑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일반화되었다.

‘천하의 묘수’가 AI 시대에는 엉터리 수로 판명된다

처음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AI가 대결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이 ‘고차원의’ 바둑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만’이 붕괴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간 “천하의 묘수”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수들이 최선의 수가 아니며 심지어 엉터리 수로 판명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명국(名局)’에 대한 적지 않은 그간의 해설과 평가들도 실은 오류라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바둑 격언들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중앙으로 한 칸 뜀에 악수 없다”라는 ‘엄숙한’ 바둑 격언이 있었는데, 이제 ‘중앙으로 한 칸 뛴’ 악수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두 점 머리를 맞지 말라”는 바둑 격언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또 “들여다보는데 잇지 않는 바보 없다”는 격언이 있었는데, 이제 이으면 정말 바보라고 판정되기도 한다.

실제 이제 어떠한 바둑 해설이라도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AI가 석권한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바둑을 전업으로 하는 프로 기사들도 포석부터 끝내기까지 전판에 걸쳐 내내 문제투성이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세계 최고 기사인 우리나라의 신진서나 중국의 커제도 이미 엄청난 고수가 된 AI에게 먼저 두 점을 두고 두는 두 점 치수로도 거의 이길 수 없다.

우리 주변에 AI가 바둑에 대한 흥미와 존중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적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AI 시대의 바둑은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분명한 증거라는 점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후위기,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이슬’처럼 위태롭다

겨우 손바닥만한 좁은 ‘지혜’와 미미하기 짝이 없는 작은 ‘힘’을 믿고 우쭐거려선 안 될 일이다. 우리네 인간이란 고작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다. 정치와 권력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영원할 듯 하지만, 오직 유한(有限)이며 찰나이다. 부디 겸허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도 바로 우리들의 눈앞에 닥쳐왔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또 깨닫는다 해도 아무 것도 고쳐나가지 않는다. 벌레와 같은 미물들도 닥쳐올 위기를 미리 인지하고 대처한다. 하지만 우리네 인간들은 너무도 둔감할 뿐이다.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아침이슬’의 운명처럼 너무나 위태롭기만 하다.

깨달아야 한다. 이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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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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