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과 신촌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는 반복된다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 잔혹사] ② 되풀이되는 노조파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2011년 5월 18일. 그날은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유성기업에서 노조파괴가 시작된 날이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유성기업지회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파괴하는 심야노동을 금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이미 합의를 마친 때였다. 그런데 회사는 2011년 도입하기로 했던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해 돌연 노사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단체협약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쟁의행위에 나선 유성기업지회를 상대로 회사는 그날로 곧장 공장 문을 닫아걸었다.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것이다. 이윽고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한 끔찍한 물리적 폭력이 벌어졌다.

유성기업 노조파괴는 그날 하룻밤 악몽으로 그치지 않았다. 유성기업은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준비해 둔 상황이었다. 그날의 악몽은 회사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무려 10년 가까이 유성기업 노조파괴 공작은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건강권을 파괴하는 심야노동을 멈추자고 외쳤는데, 회사는 노동자의 건강권뿐만 아니라 노동3권의 근간인 노동조합마저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도모하고 있었다.

노조파괴의 대명사,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

노조파괴는 사용자가 악의적으로 기획한 부당노동행위다. 동시에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파괴하는 반노동․반인권적 범죄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10년은 기업이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했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위축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우리 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용자는 이 과정에서 법망을 회피할 방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무법인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다. 유성기업의 경우 노조파괴를 도모할 환상의 짝꿍으로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을 선택했다. 이때가 2011년 4월 무렵이었다.

노조파괴 전문집단 가운데 법무법인 쪽에서는 '김앤장'이 자리하고 있듯이, 노무법인 쪽에서는 '창조컨설팅'이 오랫동안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범죄에 관여한 죄목으로 창조컨설팅은 2012년 10월 19일 법인인가가 취소됐다.) 한때 회원사가 168곳에 달할 정도로 창조컨설팅의 '실력'은 노조 없는 일터를 꿈꾸는 사용자들에게 주목받았다.

창조컨설팅의 개입 이후 민주노조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사업장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수두룩하다.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보쉬전장, 영남대의료원, 골든브릿지투자증권, KT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노사관계 안정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유성기업을 비롯한 회사에 자문을 제공한다. 경영진과 사전회의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가동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대체로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창조컨설팅식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단계별 추진계획에 따라 실행된다.

먼저 민주노조 조합원에게 징계·해고 등의 불이익을 준다거나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대적인 노사 갈등상황을 유발한다(적대적 노사관계 도발). 곧이어 민주노조가 쟁의행위에 돌입할 경우 이를 구실 삼아 직장폐쇄를 단행한 후 쟁의행위 중인 조합원들을 사업장에서 몰아낸다(파업 유도를 통한 공격적 직장폐쇄). 그리고 직장폐쇄 이후에는 무더기 고소·고발과 임금 및 처우 등에서의 각종 차별행위 및 일터괴롭힘을 수반하여 민주노조를 흔든다(대량 징계․고소고발, 차별적 처우). 그와 동시에 강성노조 비판 여론을 현장에 조성하고 회사에 우호적인 세력의 민주노조 이탈과 제2노조 설립을 지원한다(어용노조의 설립).

고객사의 노사관계 안정화, 선진화를 컨설팅한다는 명목으로 민주노조 탄압과 어용노조 지원을 위한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쳐 온 것이다.

▲2020년 5월 19일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의 부당노동행위 관련 선고를 앞둔 천안지원 앞에 내건 유성기업지회의 엄벌 촉구 피켓 모습. ⓒ충남노동자뉴스 길 백승호

단죄 피할 수 없음을 보여 준 유성기업 노조파괴 10년

현대 자동차라는 재벌 대기업의 지시했고 부품사 유성기업,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공모로 이루어진 '유성기업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겨냥한 바는 분명했다. 자본이 이윤과 생산 중심으로 설계한 작업장 규칙을 '심야노동 철폐',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 등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중심으로 재구성하자는 민주노조의 목소리를 흔적 없이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민주노조만 없앨 수 있다면, 회사의 억압적인 조직 질서나 열악한 작업 환경은 더 이상 도전받지 않아도 될 터였다. 창대한 계획이 있었던 만큼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이 노조파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매우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대한 현대차의 개입 정황은 2016년에 이르러서야 관련 문건이 세간에 공개되면서 뚜렷해졌다. 현대차-유성기업-창조컨설팅 3주체가 10년에 걸쳐 기획, 집행한 유성기업 노조파괴의 결말은 과연 어땠을까.

직장폐쇄와 제2노조 설립 등 노조파괴를 주도한 자들은 잇달아 유죄 판결받았다.

유성기업 유시영 전 대표이사는 2017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2019년에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회삿돈을 유용한 혐의로 1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두 번째 옥살이를 하게 됐다. 유성기업에 노조파괴 전략을 컨설팅해 준 창조컨설팅의 심종두 전 대표와 김주목 전 전무도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1년 2개월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됐다. 노조파괴를 지시 및 주도한 '원청' 현대자동차 임직원 4명 역시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받았다.

그렇다면 노조파괴 범죄자들이 기존 노조의 탈퇴를 종용하면서 조직 확대를 지원했던 어용노조는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지난해 2월 대법원은 "회사 주도로 설립된 어용노조는 자주성이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갖추지 못해 설립 자체를 무효로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10년간 자본이 자행한 노조파괴가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었으나, 헌법을 유린한 노조파괴 범죄는 결국 처벌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물론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끈기 있는 투쟁, 그리고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항의와 연대가 있었기에 유성기업 노조파괴는 10년 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창조컨설팅이 남긴 노조파괴 수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이 창조컨설팅의 해산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남겼다.

과거 창조컨설팅이 고객사에 조언했던 노조파괴 수법을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이 판박이처럼 베껴 활용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특히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한 감시와 회유, 각종 차별과 불이익 조치를 통해 회사에 친화적인 노조로의 가입을 유도하는 일련의 불법 행위는 유성기업 사례와 소름 끼칠 정도로 빼닮았다.

자본이 이 같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적극 도입하는 배경에는 민주노조 활동의 위축과 그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어용노조의 번성을 성공적으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노노갈등'으로 손쉽게 치부할 수 있다는 점은 자본에 덤이다. 노조 혐오 정서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수법은 많은 기업이 공유하는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미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이 '민주노총 탈퇴 전략'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정황은 관련 녹취 기록과 문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를 사실상 묵인 또는 방조해 왔다. 유성기업에서도 노조파괴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관계기관의 묵인과 방조가 장기간 이어졌지만, 민주노조의 집요한 문제제기와 항의 끝에 진상규명과 원상회복, 책임자 처벌을 이뤄낼 수 있었다.

불행히도 세브란스병원의 노조파괴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10년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실패를 반복하고 반드시 후회하기 마련이다.

▲2011년 5월 25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파업 현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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