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

[기고] 우크라이나 상황이 한반도에 일어난다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두 달 남짓 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러시아 전쟁으로 이어지고 나토-러시아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세 멈출 것 같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전쟁의 일환인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선전선동 (propaganda)에 따라 언론의 편향왜곡이 넘친다.

첫째, 전쟁의 명칭에 관해. 혼란스럽다. 대부분 언론이 쓰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내전을 가리키기 쉽다. 또한 이 명칭엔 전쟁터만 드러나고 전쟁 주체들이 빠져 있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과 마찬가지다. 침략국을 비롯한 전쟁 당사국을 모두 열거하기 어렵다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War in Ukraine)'이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지 않을까.

둘째, 전쟁의 원인에 관해. 이 전쟁 보도에 '왜'는 없고 '어떻게'만 나온다. 개인 간에든 집단 간에든 싸움이나 사건이 일어나면 맨 먼저 원인과 배경을 따지기 마련이다. 러시아 견제를 위한 나토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이라는 미국의 호전적 대외정책에 관한 보도는 거의 없다. 러시아의 침공과 처참한 민간인 학살만 부각된다.

1990년 소련은 동유럽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독일 통일을 지지하며, 독일의 나토 가입을 승인했다. 미국과 독일은 나토 군사력이 동유럽 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소련 국경 가까이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공언하고 확인했다.

1946-47년 소련봉쇄 정책을 입안하며 냉전을 설계했던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 (George Kennan)조차 나토 확장을 반대했다. 나토는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1949년 들어선 것이라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없어지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은 소련의 동맹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코소보에서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의 우방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2002년엔 미사일방어망 (Missile Defense)을 개발하기 위해 소련과의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 (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 조약은 쉽게 말해 서로 미사일방어망을 만들지 말자는 약속인데, 미국은 이를 파기해 나중에 동유럽엔 러시아 겨냥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고, 한국 포함 동아시아엔 중국 겨냥 미사일방어망 (THAAD)을 구축했다.

2004년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7개국을 추가로 나토에 받아들였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주저했지만 미국이 밀어붙였다. 나아가 2007년엔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까지 추진했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 전쟁에 개입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과거 레닌부터 현재 푸틴까지 러시아와 한 민족 형제 국가로 간주한다. 러시아 군사·경제 안보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과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여기를 거쳐 러시아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완충지대 (buffer zone)이고 금지선 (red line)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 반대하고 러시아는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2014년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를 부추기고 지원했다. 친러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이 들어서도록. 우크라이나 내전이 일어나고,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한 배경이다. 또한 미국은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했다. 미국의 부추김에 우크라이나는 2019년 나토 가입을 헌법에까지 명시하며 러시아를 더욱 자극했다.

2021년, 우크라이나 쿠데타 및 정권교체에 아들을 통해 연루된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쿠데타 주모자 빅토리아 눌랜드 (Victoria Nuland)는 국무부차관으로, 동조자 제이크 설리반 (Jake Sullivan)은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이들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첨단무기를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다시 나토 편입을 서둘렀다. 러시아 턱밑 흑해에서 나토군 대규모 해상연합훈련도 실시했다.

러시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역에 군사력을 배치하고 2021년 12월 미국과 나토에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하지 말고, 동유럽에 무기와 병력 배치를 중단하며, 러시아 인근에서 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미국은 거부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중립화를 추진했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반대했다. 러시아는 아마 중국을 고려한 듯,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22년 2월 20일 끝나자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셋째, 러시아에 대한 비난, 규탄, 제재에 관해. 무슨 이유로든 전쟁 일으키는 건 천인공노하고 천벌 받을 짓이다. 전쟁을 시작한 나라에 대한 비난 못지않게 전쟁을 부추긴 나라도 비난받아야 한다. 개인 싸움에서든 국가 싸움에서든 먼저 때린 쪽이 나쁘다. 처벌받아야한다. 끊임없이 시비 걸며 자극하는 것도 죄악이다. 역시 처벌받아야 하지 않을까.

전쟁 관련 보도에 '원인'은 없고 '과정'만 나오듯,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비난하고 규탄하며 제재하는데, 전쟁을 부추겨온 미국은 약자를 도와주는 착한 정의의 사도처럼 간주된다. 미국의 위선과 선전선동이 빚어내는 결과다.

내가 즐겨 써왔듯,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해본 나라 없고, 좋아하는 나라 없으며, 잘 하는 나라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 세우고 영토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 되고 세계패권 유지한다. 미국이 독립한 1776년부터 지금까지 딱 16년 빼고 무려 230년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을 지낸 카터도 강조한 말이다.

미국은 요즘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도 협상·중재를 통한 휴전·종전보다 불판에 기름 붓듯 확전을 부추긴다.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제대로 보도하는 기사라도 있을까. 바이든이 푸틴을 단죄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 (ICC)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잔혹행위를 일삼는 해외주둔 미군들이 기소당하는 것을 피하고, 미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법정에 미국인이 피고로 서는 걸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1990년대부터 ICC 설립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협약 자체에서 탈퇴했다. ICC가 미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ICC에 대한 자금이나 물품 지원을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런 내용까지 보도한 언론이 있는가.

넷째,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관해. 우방이라도 침략국을 두둔하거나 지원하는 건 나쁘다. 따라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중국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침략국이 될 때마다 한국은 비판은커녕 동참하며 지원했다는 사실도 기억하는 게 좋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이 140여개국 찬성으로 통과됐다. 북한 등 5개국이 반대했다며 "반대표 던진 북한 외교적 고립 심화할 것"이란 제목의 기사가 떠올랐다. 생뚱맞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35개국이 반대처럼 기권한 것도 보도했어야 한다.

유엔안보리 결의안은 당연히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됐다. 러시아의 거부권 남용에 문제가 많다고 보도됐다. 참고로, 중국이 러시아나 북한 관련해 유엔에서 거부권 행사하면 비판 기사가 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수없이 학살해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제재하려할 때마다 미국이 거부권 행사하는 건 보도되지 않는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일인데도. 또한 남한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 비판 결의안에 기권하면 언론이 난리를 떨지만,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비판 결의안에 미국 따라 기권하는 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엔 중국과 인도는 물론 터키와 이스라엘까지 응하지 않는다. 인도는 미국이 중국 견제·봉쇄 위해 만든 쿼드 (Quad)의 하나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해마다 수십억 달러 군사원조를 공짜로 제공하는 미국의 분신 같은 동맹이다. 한국은 제재에 동참한다.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보다 중요한 건 없는데 왜 무엇 때문이겠는가.

다섯째,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관해.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독일 등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늘리자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지원 및 러시아 제재가 지속·증폭돼 러시아가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터뜨릴지 모른다. 핵무기 사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일한 사례인 1945년 8월 일본에서 미국 핵무기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이나 군인들 아닌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 학살했다.

지난 3월 말 바이든 정부가 <핵 태세 검토 (2022 Nuclear Posture Review)>를 공개했다. 4년마다 만드는 미국의 핵심 국방.안보전략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미국이나 동맹국과 우방국들의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 상황에서는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겠다 (consider the use of nuclear weapons in extreme circumstances to defend the vital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or its allies and partners)"고 했다.

대부분 남한 언론은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2001년 부시 정부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이라크, 수단, 리비아 등 7개국에 대해 테러 징후가 보이면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발표했을 때는 환호하다시피 했다.

이에 맞서 북한이 4월 25일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핵무력 사용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모든 남한 언론이 경악하며 비난했다.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미국의 핵무기사용 조건은 비슷하다. 남한 언론보도에 천지 차이가 날 뿐이다. 사상 최초로 핵무기 사용한 나라도 미국이고, 비핵국가 상대로 핵무기 선제공격을 가장 먼저 공언한 나라도 미국이지만, 미국 핵무기 사용에 대해선 애써 눈감는 것이다.

여섯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관해. 그를 영웅시하는 건 잘못이다. 침공한 쪽보다 침략당한 쪽을 동정하고, 강자보다 약자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과 수도를 지키겠다며 직접 총잡고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그가, 전쟁에 대한 준비 없이 허풍떨다 전쟁이 터지자 국민과 수도를 팽개치고 잽싸게 도망친 이승만보다는 훌륭하다.

그러나 외교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전쟁을 불러 수많은 국민을 죽음으로 이끄는 그가 진짜 영웅일까. 병 주고 약 주는 것보다 병을 예방하는 게 백 번 낫고 훨씬 훌륭하다.

일곱째,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관해. 종교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이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성금 모으고 있다. 아름다운 일이다. 바람직하다. 현대 전쟁에서는 군인들보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너댓 배 많이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와 함께 되돌아볼 일도 적지 않다.

지난날 베트남,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국이 침공한 수많은 나라들의 전쟁난민에 대해서도 이렇게 관심 갖고 지원했는지. 특히 베트남에서는 미군 못지않게 한국군대가 양민학살을 많이 저질렀는데 이들 유가족들을 지원하기는커녕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여덟째, 전쟁의 교훈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미국의 러시아 견제·봉쇄 정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는데,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 정책에 따라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지 모른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과 중립 외교를 펼쳤다면 전쟁터가 되었을까.

2000년대부터 우크라이나 중립화가 논의됐다. 이번 러시아 침공 직전엔 앞에서도 밝혔듯, 독일과 프랑스가 중립화를 추진했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반대했다. 요즘 휴전·종전 협상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중립화다.

참고로, 중립이란 다른 나라들이 전쟁할 때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편들지 않는 외교정책이다. 일시 중립도 있고 영세 중립도 있으며 무장 중립도 있고 비무장 중립도 있으니, 한국도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 정책이 날로 심화할텐데, 한미 군사동맹 때문에 우리까지 중국을 적대시하며 대만해협에서의 무력충돌에까지 끌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불행히도 한국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와 비슷할 것 같다. 미국이 6월의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고 했다.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채택하겠다고 예고한 터다. 윤석열은 미국의 초청에 영광이라 생각하며 주저 없이 동참할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쿼드에 끼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다. 중국이 보복하면 대국이 속 좁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한국이 중국의 보복을 부르며 혹시 일어날지 모를 미국과 중국의 무력 충돌에 자동 개입되는 건 꼭 피해야 한다. 윤석열은 젤렌스키처럼 까짓것 한 판 붙으면 될 것 아니냐고 용감하게 나설지 모르지만, 무고한 수많은 국민의 피해와 희생은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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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이재봉 교수는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년 현재 '남이랑북이랑'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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