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들이 직접 돈 내고 가짜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이유

매일 '숙제 검사' 받는 대리기사들…할당량 강요하는 대리업체

"숙제 했냐?"

거리두기 완화로 정상등교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늦은 새벽 수도권 지역 대리기사들이 서로에게 인사처럼 하는 말이다. 국내 최대 대리운전 배차 프로그램 업체가 대리기사들에게 매일 '영업 할당량'을 제시하며 이른바 '숙제'를 내는 등 부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5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서울 강남구 바나플(대리운전 프로그램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영업제한이 풀리기가 무섭게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로지연합이 숙제를 부활시켜 대리운전노동자들을 다시 옥죄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대리운전 콜의 70% 이상을 점유고 있는 로지연합은 지난 2016년 7월부터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숙제'라고 불리는 의무 콜을 강요해 왔다. 평일(월~목요일) 피크타임인 밤 10시부터 새벽 1시에 4만 원 이상이 나오는 거리를 운행하거나 콜 두 개를 수행해야만 새벽 1시 이후에 '우선 배차'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금요일에는 기준이 더 높아져 5만 원 이상 혹은 콜 세개를 수행해야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대리운전 기사들에게는 불이익을 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이 업체가 낸 '숙제'를 위해 자신이 직접 돈을 내고 가짜 대리운전까지 부르기도 한다. '우선 배차'를 받지 못하면 배차를 제한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숙제'를 하지 않은 기사가 콜이 발생한 지역에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그보다 멀리 있는 '숙제'를 한 기사에게 '우선 배차'가 되는 식이다. 

이들은 "로지연합이 정한 콜 수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치 않는 목적지의 콜과 터무니없는 가격의 콜을 억지로 수행하고, 이 기회마저 얻지 못한 기사들은 운행하지도 않은 가상 콜을 올려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목표를 채우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숙제를 못해 새벽거리에서 대기만 하다가 한 콜도 못 타고 퇴근하는 버스안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대리운전기사들의 처참한 현실이 있다"고 한탄했다.

업체는 왜 이런 숙제를 낼까. '콜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카카오, 티맵대리 등 대리운전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사들이 피크 시간에 '숙제'를 처리하는 동안 다른 업체와 일할 수 없게 단속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들은 "로지연합의 숙제 강요는 대리운전노동자들의 콜 선택권을 박탈하고 자신들의 콜을 우선해 타라고 강요하는 명백한 갑질횡포이며 불공정 행위"라며 "정부는 플랫폼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인하기 위하여서라도 로지연합의 담합에 의한 독점적 횡포에 즉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리운전 기사가 어플을 3개나 쓰는 이유

같은 콜을 공급하는 어플만 다르게 해 대리기사운전들에게 어플 사용료를 중복으로 취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로지연합은 대리운전 프로그램사와 6개 얼라이언스(협력업체의 연합)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리운전 이용자가 전화하는 수도권의 수많은 대리 운전 업체의 콜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연합체, 그리고 대리운전 기사에게 차량을 배정하는 프로그램사의 연합 조직이다.

이들은 6개 얼라이언스의 콜을 분산해 3개의 어플에 나눠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콜을 배차하고 있다. 3개의 어플로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회사라 보아도 무방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로지연합은 대리운전 기사에게 콜을 배차하는 어플을 3개로 나눠 로지D1, 로지D2, 로지D3로 독립해 운영하고 있다. 한 개의 어플당 대리운전기사는 한 달 1만5000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굳이 왜 어플을 3개로 나눴을까. 대리운전기사들로 하여금 3개의 어플에 모두 가입하게해 4만5000원의 사용료를 받게 하기 위함이다. 3개로 나뉜 로지앱에는 시차만 있을 뿐 결국 같은 콜이 올라온다.

특정지역에서 부족한 콜을 두고 배차 경쟁을 해야 하는 대리운전기사들의 입장에서 시차는 결정적인 요소다. 그 때문에 대리운전기사는 배차 확률을 높이기 위해 3개의 프로그램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교육국장은 "어플에서 배차를 2회 이상 취소하면 30분, 3회 이상 취소하면 1시간 동안 배차를 제한한다"며 "로지앱을 3개 사용을 해야만 2개의 어플에 시간락(시간 제한)이 걸려도 나머지 1개의 어플로 배차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3개의 어플을 모두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결국 "로지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하여 대리운전기사들은 매달 4만5000원을 내야하는 셈"이라며 "이러한 담합의 이면에서 기사들에게 걷어 들인 수익을 업체들과 나눠 먹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대리기사도 노동자…최저임금 1.5배 실소득 보장해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영국 대법원이 우버(Uber)와 우버 기사들에게 내린 판결을 예로 들며 "영국 대법원은 '우버 기사들은 앱에 접속하여 우버의 권한 행사 범위에서 일하고, 운송 배당을 기꺼이 수용해야 하는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이어 "이런 판결은 영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에서, 독일에서, 호주에서, 최근에는 프랑스에서도 나왔다"며 "각 국의 노동법과 제도는 모두 다르지만 대리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근거 중 몇 차례 콜을 거부하면 배차 제한과 계정 정지를 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해, 대리기사가 실제로 플랫폼이 요구하는 일감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은 공통적이었다"고 짚었다.

오 실장은 "모든 대리기사가 노동시간으로 선택하는 바로 그 시간대에 콜 2~3회 이상 4~5만 원의 콜을 수행하지 못하면 도착지 우선 배차가 불가능하다. 이건 말이 불가능이지 사실상 일감을 못 받게 만드는 짓"이라며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대리기사들에게는 목구멍이 아니라 '숙제'가 포도청"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리운전 플랫폼이 대리기사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이니 이들에게 심야시간 할증을 적용해 최저임금의 1.5배 이상 실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토록 독점을 갈구한다면 기사들의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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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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