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비극의 또 하나의 씨앗, MD를 주목해야 할 까닭

[정욱식 칼럼] 사드 논란 제대로 보자(하)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이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추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에 맞춰지고 있다.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나토 동진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진실과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게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의 필연적인 이유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긴 어렵다.

나토 동진은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 동유럽 배치와 궤를 같이 한다.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미국한테 또 속았다'는 불신과 더불어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나토와 러시아의 갈등과 분쟁으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추출하기 이해서는 이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드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도 유사한 갈등 구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MD를 둘러싼 미러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였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 테러 사건을 숙원 사업을 푸는데 이용했다. 1972년 소련과 체결했던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탈퇴의 구실로 삼았던 것이다. ABM 조약은 양측이 사실상 MD를 만들지 않기로 한 것으로 냉전 시대의 대표적인 군축 조약이자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었다.

당연히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적 파기에 반발했다. 이에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북한과 이란이었다. 미국이 ABM 조약에서 탈퇴해 MD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들 나라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 러시아나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 이후 미국의 약속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2007년 들어 미국이 나토 신규 회원국들인 폴란드와 체코에 MD 시스템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자신의 안보를 침해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로 간주했다.

그러자 미국은 유럽의 MD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러시아를 달래고 했다. 하지만 이를 믿을 수 없었던 러시아는 미국의 MD 배치 강행시 중거리 미사일 배치로 응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유럽 미사일 위기'가 고개를 들던 시점에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간 지 두 달 후인 2009년 3월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비밀 서한을 보냈다. 요지는 "러시아가 이란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걸 돕는다면, 미국은 동유럽에 MD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여 후인 2013년 하반기에 이란 핵협상에 중대한 돌파구가 열렸다. P5+1(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및 독일)과 이란 사이에 잠정적인 핵협정이 타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핵심 쟁점이었던 이란의 우라늄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 관여했다. 그리고 미국에게 약속대로 유럽 MD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약속을 또다시 어겼다. 오히려 유럽 MD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2월 MD 기능을 탑재한 이지스함을 스페인의 로타 해군기지에 배치한 것이다. 미국의 유럽 MD 강화는 2015년 7월 이란 핵협정이 공식 체결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지스 어쇼어'로 불리는 지상형 MD를 루마니아에 배치하고 작전 태세에 들어간 게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유럽 MD를 나토 동진 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해왔다. MD라는 방패를 씌우면서 나토를 러시아의 문 앞까지 전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러한 전략적 갈등이 증폭되는 와중에 터졌다. MD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더라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것이다.

한국에 배치된 사드 문제도 이와 비슷한 갈등 구조를 품고 있다. 한미동맹은 사드를 배치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북한을 빌미로 삼아 자신에 대한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나는 앞선 글에서 사드가 미국 주도의 '글로벌 MD'의 일환으로 이미 변질되었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한국은 지정학의 함정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 전쟁의 대리 전쟁터가 될 위험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약속을 지켜야 하고 또 우리는 미국에 이를 요구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주한미군 사령부는 성주 사드 레이더를 오로지 종말 모드로만 운용할 것이고 그 "유일한 임무"는 "북한의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이 약속을 지키려면 성주 레이더를 글로벌 MD의 '두뇌'에 해당하는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 본부와 연동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게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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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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