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은 공존할 수 있나

[한반도 평화대전략] ⑨ 분단고착이 아닌 통일지향적 평화체제가 되려면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와 미중 간 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2022년 초부터 한반도와 국제정세의 유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외 정책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가운데 남한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한미 동맹, 일본과 군사 협력 등을 강조하며 한미일 협력 강화를 대외 정책의 기조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같은 접근만으로는 유동적인 국제 정세 속에 남한의 생존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 중 한쪽에 기울어 지거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 하에 양쪽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는 등의 기계적이고 즉자적인 방식으로는 남한의 생존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남한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보다 정밀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 지난 1월 세종연구소(소장 이상현)는 <한반도 평화대전략>(백학순 외)이라는 전략서를 내놨다. 이 책은 세종연구소장을 지낸 백학순 박사(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가 연구소장 재직 시, 한반도에서 2018년부터 시작된 평화대전환을 진전시켜 영구적 평화 정착을 이뤄내기 위해 전략적 지도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구상하고 진행됐다.

백학순 박사는 해당 저서에서 칼 폴라니이(Karl Polanyi)가 그의 고전적 명저 <대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와 경제의 기원>(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Political &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New York & Toronto: Farrar & Rinehart. 1944)에서 사용한 '대전환'의 개념과 의미를 차용하여 한반도에 적용하고 있다. 폴라니이는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 '시장'(market)이 등장하여 사회의 성격, 인간관계, 인간의 사상과 이익 및 정체성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법, 제도, 정부 정책 등 모든 분야에서 이를 중심으로 대변환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백 박사는 <한반도 평화대전략>에서 2018년부터 한반도에서 일어난 대전환을 '평화'(peace)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해당 저서의 머리말에서 한반도가 지난 76년 동안 악화되어 온 '적대와 전쟁'을 벗어나 '화해와 평화'로 대전환을 이룩할 수만 있다면, 우리사회의 중심 가치는 '전쟁'에서 '평화'로 전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주민들의 이념(사상), 가치, 이익, 목표도 그렇게 바뀜으로써 인간관계,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법, 제도, 정부정책도 모두 평화를 증진하는 방향성을 갖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사회는 평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저서에서는 우선 1부의 "왜 '한반도 평화대전략'인가?"라는 문제의식 하에 "왜 평화인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가?"(제1장), "한반도 평화 비전과 전략"(제2장)을 소개한다.

2부에는 한반도 평화대전략의 "실천전략"을 "평화를 성취하는 외교"(제3장), "평화를 담보하는 국방·안보"(제4장), "평화공존와 평화통일"(제5장), "평화와 함께하는 번영"(제6장)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 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상황과 관련한 "코로나19 팬데믹, 바이든정부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평화·번영"(제7장)을 설명한다.

마지막 3부에는 "핵심도전 해결 노력 1: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제8장), "핵심도전 해결 노력 2: 북미정상회담과 공동성명"(제9장)를 비롯해 "10대 핵심쟁점"(제10장)을 소개하면서 향후 남한이 어떠한 전략을 가져가야 할 것인지 제안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백학순 박사의 '10대 핵심쟁점'을 세종연구소의 허가를 받아 총 10차례에 걸쳐 전재한다. 이번 연재가 향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한의 외교 전략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

■ 10대 핵심쟁점

① 어느 나라가 한반도 평화대전환을 위한 주도권을 보유하고 행사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협력(포용과 설득)의 주도권을 만들어 낼 것인가?

② 북미관계에서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평화공존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가능한가?

③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과연 비핵화가 최우선 목표인가? 미국이 한미연합훈련과 대북제재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폐할 것인가? 북한은 과연 비핵화를 할 것인가?

④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한반도 비핵화, 또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은 병행적, 연계적 혹은 순차적으로,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가?

⑤ 어떻게 북한의 대남정책을 대미정책의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 만들 것인가?

⑥ 한반도 문제 해결과 대북정책 문제에서 한미양국 간에 '자주성(민족협력) 대 국제성(동맹협력)' 간의 대립과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⑦ 한미양국은 어떻게 '동맹의 비대칭성 대 동맹의 합리적 평등성'의 대립과 충돌을 해결하고, 동맹의 합리적 평등성을 제고할 것인가?

⑧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미국으로부터 어떤 지휘체계로 언제 환수해야 할 것인가?

⑨ 어떻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남북 평화공존)과 남북 평화통일 간의 긴장과 모순을 해결할 것인가?

⑩ 미중 패권경쟁과 신냉전구조 형성 속에서 한반도 평화대전환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평화대전환을 진전·지속시켜 나갈 것인가?

핵심쟁점 9. 어떻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남북 평화공존)과 남북 평화통일 간의 긴장과 모순을 해결할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은 상호 긴장과 모순의 관계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평화공존 혹은 평화통일의 양자 중에서 평화통일을 포기하고 그에 맞춰 전략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합당한 것 아닌가? 아니면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포용적이고 조화로운 평화공존을 거쳐 평화통일로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하게 되면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평화공존의 상황에 들어서게 된다. 원칙적으로, 통일은 그 방법이 아무리 평화적이라 하더라도 남북 공존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통일을 포기하고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서 평화공존하는 것(양국론)이 한반도 평화대전환의 진전과 향후 역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길인가?

오랫동안 하나된 민족으로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그것에 동의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상호 대립과 모순되는 관계로 보지 않고 평화공존과 연합과정을 통해 평화통일로 가는 상호 연결되는 과정(연합론)을 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길이 아닐까?

▲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우리가 나라와 민족이 분단된 지 76년, 정전체제 하에서 살아 온 지도 68년이나 됐다. 지도자들과 시민들도 분단 상황에 익숙해 있어서 통일의 필요성은 당위적 차원에서는 인정하지만, 통일보다는 평화, 즉 6.25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최우선적 목표로 생각하는 경향이 커졌다(평화관리 우선론).

그러나 우리 민족은 현재 일시적인 분단 상황에 놓여있을 뿐이고 궁극적으로 또 가능하면 조속히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염원 또한 상존하고 있다(통일 우선론).

더구나 정치지도자들에게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의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고, 헌법 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헌법을 준수하고…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노력"한다는 선서를 하며, 국회의원들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것을 선서한다.

우리민족은 1945년 미소양국에 의한 한반도 분할점령과 분단, 1948년 한반도에 두개의 분단정부의 수립, 1950~53년 6.25전쟁을 겪었다. 6.25전쟁은 남북한이 각각 '북진통일'과 '국토완정'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무력사용을 감행한 통일전쟁이었으며, 동시에 미국, 중국, 소련, 유엔 등 국제사회가 참전한 국제전이었다.

6.25전쟁은 우리에게 참혹한 동족상잔을 통해 막대한 인명 피해, 각종 제도와 인프라, 국토 파괴를 남긴 채 정전됐다. 이제 무력통일은 통일의 방법으로는 남북한 주민의 지지를 잃었고, 대신 평화통일이 통일의 방법으로 등장했다.

소련의 붕괴로 국제사회가 탈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1991년 9월 남북한이 두 개의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했고, 그해 12월에는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미 국제적으로 한반도에 2개 국가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코리아 양국론'(코리아 양국체제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통일을 포기하고 남북한이 주권국가로서 공식 수교하고 평화공존하는 1민족 2국가의 평화 공존체제였다.

그러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최초로 남북정상 간에 통일방안으로서 '연합제'(북측은 '낮은 단계의연방제'로 표현)가 나왔고, 이를 수용하여 과도기적 통일체제로서 '복합국가론'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되, 한반도 평화대전략 진전의 맥락 속에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이 상호 양립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일정 기간 평화공존을 거친 후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가 한반도에서 소극적 평화 → 적극적 평화 → 항구적 평화로 가는 데서 항구적 평화는 한반도 통일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이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전략적·정책적으로 평화체제 수립 시 '분단고착적' 평화체제가 아니라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수립함으로써 평화공존과 평화체제 사이의 긴장과 모순을 선제적으로 상당히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목표는 상호 긴장과 모순이 있는 관계지만, 그렇다고 이 양자 목표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한 가지 방법은 '낮은 단계 남북연합(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부터 시작하여 평화체재 수립을 통한 포용적이고 조화로운 평화공존을 거쳐 궁극적으로 평화통일로 가는 길인데, 이때 평화체제를 분단고착적이 아니라 통일지향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래의 '핵심쟁점 10'에서 보듯이, 미중양국이 본격적인 패권경쟁과 신냉전 형성의 양상을 보이면서 남북한과 각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국제정치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여러가지 문제점, 당위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을 모두 고려할 때,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관계는 향후 한반도 평화대전환의 진전과 지속에서 또 하나의 핵심쟁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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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미국 University of Georgia를 거쳐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Harvard University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김대중평화회의(The Kim Dae-jung Peace Forum)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종연구소장을 지냈고,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및 자체평가위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서울-워싱턴포럼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North Korea’s Foreign Palicy: The Kim Jong-un Regime in a Hostile World (공저, 근간), <박근혜정부의 대북·통일정책>(2018)을 포함하여 역대 남한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다룬 저서 5권, <김정은 시대의 북한정치 2012~2014>(2015), <제2기 오바마정부 시기의 북미관계 2013~2014>(2014),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정체성·구조>(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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