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 바이러스가 유행이 정점으로 달려가는 가운데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다음 정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인수위 없이 시작한 현 정부가 어려움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출발의 조건은 더 낫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선거 기간 중 시작된 나쁜 정치를 바꾸는 일인바, 의지와 실력이 있는지 지금은 알기 어렵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내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많은 사람의 걱정을 불러일으켰고, 선거가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말을 얹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직제가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장은 사실상 없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것이 '나쁜' 정치라고 말해왔다.(☞ 관련 기사 : 2020년 7월 13일 자 '깜깜이 방역조직 논의,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1년 4월 12일 자 ''반기' 든 오세훈의 코로나19 방역은 다를까?')
한 부처의 운명이나 정책이 소수의 의견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왜 바꾸겠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여성가족부가 무능하거나 무력하다는 일부의 문제 제기를 인정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부지기수가 아닌가? 하지만, 이조차 사소한 문제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가 공약 전부였기 때문에, 이를 제안한 이들이 무엇을 문제로 삼고, 무엇을 바꾸고 싶어 하며, 그 결과 국민과 시민,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무엇이 달라지기를 바라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인수위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이해하기 어려운 논란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공약이니 지켜야 한다는 말, 그런 공약은 얼른 수정해야 한다는 말, 국회의 상황을 볼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 등이 어지럽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핵심을 벗어나는 주제다. 우리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더 '좋은'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여성가족부를 왜 폐지하려고 하는가?
선거 과정에서 SNS에 올린 일곱 글자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삭제하는 권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본디 수행하던 성평등과 가족 지원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해, 평가,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비슷한 불만이 있거나 특정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부처 폐지가 되어야 하는가? 징병제를 반대한다고 “국방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거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부처 폐지와 보통 사람들의 삶, 그 고통 사이에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기에도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고통의 핵심이 '경제'에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와는 다른 고용, 소득, 주거 불안정이 청년들이 겪는 주된 고통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런 시대적 고통과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포퓰리즘적 처방은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과 그들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여성가족부가 사라지면 해결되는가?
둘째, 여성가족부를 없애면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묻는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데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뚜렷할 리 없다. 얄팍하게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라면, 포퓰리즘적 정치로 얻은 지지가 개혁의 동력이 될 리도 만무하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성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 중에도 여성가족부에 문제가 있고 별도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도 대부분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밑도 끝도 없는 공약에 화를 내는 중이다. 부처 폐지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나쁜' 정치 때문이다.
많은 외신이 바로 이 공약에 주목하며 한국의 '안티-페미니즘' 선거에 관심을 기울였다.(☞ 관련 기사 : 온라인 매거진 <UnHerd> 3월 14일 자 'South Korea didn’t have an incel election', <워싱턴 포스트> 3월 12일 자 'Opinion: How South Korea’s ‘anti-feminist’ election fueled a gender war') 이들은 한국의 안티-페미니즘 정치가 스스로 취약하다 느끼는 남성들의 원초적 충동, 두려움, 편견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도 지금의 정치세력이 계급적·세대적 불리함을 겪는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음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과 성평등 의제를 내부의 적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진단을 공유한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월 22일 자 '"정치 전략이 된 반페미니즘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지금, 성평등과 여성 정책은 나쁜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다. 현실 정치의 실익도 없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인수위, 그리고 곧 출범할 새 정권 스스로 이 나쁜 정치를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현실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 정치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 무엇이든 정치적 퇴행을 한 번에 역전할 마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선거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지치지 않고 멀리 보면서 함께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더 정확하게 알고, 너르게 논의하며, 더 많은 이가 논의와 실천에 참여하도록 힘을 보탤 것도 다짐한다. 기필코 좋은 시민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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