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유사점과 차이점

[정욱식 칼럼] 이분법적 세계관을 경계하며

아마도 후대의 역사가는 이라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21세기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2003년 3월에 미국과 영국의 침공으로 시작되어 10여 년간 지속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돼 현재까지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두 전쟁 모두 불법적이고도 반인도적인 침공에 해당된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예방 전쟁'이라는 속성을 품고 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며 후세인이 그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며 침공을 강행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땅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마음속에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위협을 미리 제거하겠다는 야심에 따른 것이다. 즉,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마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기 전에 무력행사를 통해 이를 저지하는 것을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가시화된 것도 아닐뿐더러 전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이다. 나토 확장에 따른 푸틴의 피해의식이 전쟁으로 더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으로 귀결된 셈이다.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전쟁 사이에는 큰 차이점도 있다. 바로 상당수 국가들의 반응이다. 불법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영국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 주도하고 상당수 국가들이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가혹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한국의 태도도 성찰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면서 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이는 충분하고도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에는 침공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침공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파병도 단행했다.

동맹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항변도 있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여러 미국의 동맹국들은 "낡은 유럽"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전쟁에 반대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여러 협박까지 받았던 캐나다와 멕시코도 반전 대열에 합류했다.

필자가 이를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미국 주도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너무 쉽게 동조하고 있다고 여기는 데에 있다.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선언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사회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집을 호소·압박해왔다.

이 와중에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이분법적이고 대결적인 세계관을 강화시키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권위주의 국가들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는 평화를 사랑하고 권위주의 국가는 호전적이다'라는 식의 이분법은 근거도 부족할뿐더러 매우 위험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라크 침공의 당사자들은 선진 민주주국가로 불리던 미국과 영국이었다. 한국의 비롯한 상당수 민주국가들도 이 전쟁을 도왔다. 이외에도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숱한 전쟁을 벌였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러시아의 우방국이자 거대한 나라들인 중국과 인도를 대하는 국제사회의 태도 역시 짚어볼 부분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중립을 지키고 있는 중국은 러시아와 거의 동급 취급을 당하고 있을 정도로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마찬가지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인도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의 입장에 있다. 중국은 '전략적 경쟁자'로, 인도는 '전략적 동반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같은 중립'을 지키고 있는 두 나라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이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배경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질서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사이의 신냉전이고 우리는 민주주의 편에 서야 한다'는 인식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제질서의 근본은 체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체제의 차이를 넘어 평화공존을 도모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의 입장에선 이러한 관점이 국익을 위해서라도 더욱 절실하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관점을 쉽게 수용하면, 인접한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고, 이것이 초래할 안보적·경제적·외교적 위험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결코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권위주의를 옹호하려는 취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결정적인 이유는 권위주의라는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확산과 민주국가 내부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양극화에 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이 거세게 일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분법적 세계관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증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의 문제를 감추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자원 분배의 왜곡도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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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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