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표심에 '되치기' 당한 이준석의 '젠더 갈라치기'

2030 여성들이 외면한 윤석열, 세대포위론 '허상'

이번 대선 최대 부동층으로 꼽히던 2030 여성들이 혐오전략을 앞세운 윤 당선인에 대한 비토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막판 지지를 몰아줬다. 여성들의 반격은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이 역대 대선 중 가장 근소한 0.73%포인트(24만 7000여 표) 차이로 진땀승을 거둔 배경으로 지목된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를 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여성은 이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58%가 이 후보를 선택했지만, 윤 당선인을 선택한 수치는 33.8%로 25%포인트 가량 차이가 났다. 20대 여성은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실제 선거에서 막판 결집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제20대 대선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 유튜브 갈무리

'세대포위론'을 위장한 이준석의 혐오정치

민주당의 우군이었던 20대 여성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치르게 된 4.7 재보궐 선거에서 복잡하게 분화된 양상을 보였다. 직전 선거인 21대 총선의 출구조사에선 63.6%가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서울시장 재보궐 출구조사에서는 44%를 기록하며 20% 포인트 가까이가 민주당을 외면했다. 그렇다고 그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간 것은 아니었다. 15.1%에 달하는 20대 여성들은 소수정당 후보를 선택하며 새로운 대안을 필요로 했다.

이 대표는 지난 재보궐 선거 결과부터, 여론조사에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지지성향을 토대로 민주당에 대한 여성 표심의 균열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틀전인 지난 7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며 "저는 그런 (여성들의 이재명 지지 성향 관련)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온라인에서는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본다"는 주장을 폈던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이 대표는 '세대포위론'을 위장한 젠더 갈라치기 전략을 폈다. 세대포위론은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 60대 이상의 전통적 지지층과 함께 민주당 지지의 핵심인 4050세대를 포위하자는 전략이지만, 여성과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양상으로 발현됐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윤 당선인도 이 대표가 짜놓은 혐오정치에 편승했다. 사실 그는 김한길, 김종인 그리고 90년생 페미니스트 신지예를 영입하며 중도 확장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남성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신지예를 자진사퇴 시켰다. 그리고는 안티페미를 향한 반성문을, 혐오정치에 올라탄 행보를 여러차례 했다. 지난 1월 4일 선대위 재편 계획을 밝히며 "실망을 줬던 행보를 깊이 반성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을 약속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3일 뒤 올렸던 페이스북의 일곱글자는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윤석열 당선인 페이스북 갈무리

'혐오정치' 레이스 함께 달렸던 민주당

문제는 민주당이 대선 초반, 국민의힘과 함께 혐오정치 레이스를 달렸다는 것이다. 그 중심엔 민주당 남성 의원들이 있었다. 김남국 의원은 선거대책위원회 온라인소통단장, 후보자 직속 '청년플랫폼' 위원 등 선대위 요직을 맡으며, 이 후보에게 2030 남성에 스킨십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인 <씨리얼>, <닷페이스>출연 무산 시도도 모두 김 의원의 작품이다.

이재명 후보도 '이대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이 흐름에 함께했다. 지난해 11월 '홍카단(홍준표 의원 지지자)이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디시인사이드 게시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한 것을 시작으로, 디시인사이드, 딴지일보, 보배드림, 에펨코리아, 클리앙 등에 글을 직접 게시하며 접촉면을 넓혀왔다.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홍카단의 편지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후보는 "제가 그 내용에 동의했다는게 아니라 한번 들어는 주자는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남초 커뮤니티 '출석'은 계속됐다.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와 <씨리얼> 출연을 연기, 번복하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 후보의 혐오정치는 정점을 달렸다. 이 후보가 사회적 소수자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온 채널에 출연하는 결정을 하자, 이 후보가 출석했던 남초 커뮤니티에서 반대가 들끓은 탓이다. 당시 김 의원은 의원들이 모여있는 단체 텔레그램 방에 "'닷페이스' 이런 곳 나가면 2030 여성표가 나오냐", 신지예씨를 영입했던 것을 언급하며 "저쪽이 실수해서 초토화된 것을 보고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 출연을 완강히 반대했다.

이준석 대표는 윤 당선인의 '여성 가족부폐지'와 이 후보의 '닷페이스 출연 결정'을 비교하며 여성 배제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후보가 복어 요리에 도전 중인듯 한데 무운을 빕니다"고 했다. '복어 요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독 품은 복어를 손질하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이 대표의 혐오정치에 민주당이 경쟁하듯 따라간 결과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광주 서구 치평동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에 앞서 김남국 대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혐오정치 제동 건 민주당 내 여성들 그리고 박지현

남성 의원들의 반대에도 이 후보는 <닷페이스>에 출연했다. 이 결정은 이 후보를 혐오정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당내 여성 의원들이 그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정춘숙,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후보와 직접 소통했다. 이 후보를 위한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당시 계획했던 시간보다 오랜 시간 질의를 주고받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됐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온상 'n번방'에 맞서온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이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외부자의 시선도 견지했던 그는 민주당에 반성을 요구했다. 그는 영입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당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과오 때문에 많은 여성분들이 등을 돌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반성하고 그 피해를 치유하는 게 민주당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4.7 재보궐에서 여성들을 외면하게 했던 권력형 성범죄를 민주당이 직시하도록 주문한 것이다.

박지현은 이 대표의 혐오정치에 정면으로 맞서며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대를 역행하는 행보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은, 윤석열은, 이준석은 틀렸다"고 일갈했다. 이어 "결국 갈등을 부추기고 여성을 혐오하는 일부 남성의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며 "이준석 대표는 공당의 당대표 자리에 앉아 젠더 갈라치기말고 뭘 했나"라고 반문했다. 마지막 선거유세에서 그는 "우리의 연대가 혐오를 이긴다는 것을 꼭 보여주자"고 외쳤다. '이대남'을 사수해야한다는 논리로 침묵했던 민주당을 대신해 그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이 8일 서울시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 광장무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마지막 유세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혐오에 맞선 연대

여성들의 움직임은 이 후보를 지지하는데 그친 게 아니라, 그를 변화시켰다. 혐오정치 대열에서 이 후보를 구제했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TV토론에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사죄의 절까지 올리며 부동산문제, 내로남불에 대해 반성하겠다고 했던 이 후보였지만, 권력형 성범죄를 직접 언급한 건 TV토론이 처음이었다. 나아가 이 후보는 페미니즘의 개념을 천명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혐오정치를 이끌었던 이준석 대표는 자신이 배제하려고 했던 여성들에게 배제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윤 당선인이 10%포인트 격차로 이길 것으로 전망하며, 야심차게 내놨던 세대포위론도 성과를 내지 못하며 리더십이 흔들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의 위기이자, 혐오정치에게 보내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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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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