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가능해지는 세상"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2] ② 강원도 왕진의사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

지난여름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라는 이름으로 10편의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모아보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진행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누구도 차별당하면 안 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는 법안에 시민 대부분도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는 '성소수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연재는 15년째 반복되는 이 물음에서 더 나아가고자 한 시도였다. "성소수자는 어떤 차별을 당해요?"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가 '사회문제'라고 부르는 것들을 '차별'로 설명하고자 했다. 디지털 성범죄, 죽음과 장례, 직장 내 괴롭힘, 높은 부동산 가격과 주거권. 우리가 겪는 일들, 혹은 너무나 평범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일들. 그러나 각각 별개로 보이는 영역의 활동가, 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차별구조에 관해 사회가 고민할 것이고, 이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이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그리고 2022년 오늘날까지, 우리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차별금지 사유에 넣을 것이냐"에 묶여있다. 이걸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 선거를 앞둔 지금은 '민감한 이슈'라고 한다.

<프레시안>이 다시 차별의 평범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엔 누군가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이야기한다. 매 순간의 긴장, 중요한 순간에 주어지는 선택권의 제약. "누가 어떤 차별을 당하는가"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2> 다시보기

①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 씨 "미투 이후의 삶,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바로가기)

▲강원도 왕진의 양창모 센터장. ⓒ프레시안(최형락)

'당사자주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들이 우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 시골에 거주하는 노인들, 몸이 아픈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호호방문진료센터는 원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방문진료센터이다. 춘천시 소양호에 댐이 만들어지며 생긴 수몰지역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편집자

프레시안 : 의료와 차별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또 의료의 영역에서 어떤 차별을 발견하셨나요?

양창모 : "시스템의 기준이 있을 때 그것이 차별을 만들어냅니다. 하나의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다양하게 있는데요. 이 시스템이 어떤 사람을 기준으로 구성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의료는 그 기준이 '젊고 건강한 성인'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제가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진료를 보고 나서 검사실과 주사실에 다녀와야 했는데,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 대학병원은 저의 모교이고 제가 그곳에서 수련까지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진료실을 나와 검사실하고 주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제 부모님이 만약 저와 같이 오지 않고 혼자 오셨으면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이었습니다. 큰 병원이지만 과별로 검사실이 있는 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과에서 한 곳으로 검사실, 주사실을 가야 해요. 그런데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 없어요."

프레시안 : 병원 이용자 대부분이 노인이었는데 병원 구조는 노인에게 매우 불편하게 설계돼 있군요.

양창모 : "진료실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제가 함께 들어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2~3분 정도, 엄청 빠른 속도로 쉼 없이 말씀하셨어요. 저도 의사이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임에도 그 설명을 듣는데 이해가 안 되고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요. 저희 어머니는 난청까지 있으셨으니 그 얘기를 거의 못 알아들으셨죠. 근데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는 또 아닌 거예요. 의사가 너무 바빴으니까. 그때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그 기준이 젊고 건강한 성인에 맞춰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젊고 건강한 성인. 말하자면 시스템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럼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그 간격을 메꿔야 합니다. 그런 일이 제가 왕진가는 시골에서도 일어나요. 제가 왕진가면서 주로 뵙는 분들은 시골의 농사짓는 어르신들 이거든요. 대부분 70대를 넘어가시는, 주로 70~80대분들."

프레시안 : 그분들은 어떠셨나요?

양창모 : "병원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시골에서 산다고 했을 때 이분들의 상황을 병원에 대한 접근도로 이야기해보면 대략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 A는 건강하고 차가 있습니다. 이분은 병원 가는 데 15~20분이면 가요. 그런데 실제 이런 분들은 별로 만나지 못했어요. B는 건강하지만 차가 없어요. 이런 분들은 병원에 갈 때 대중교통, 주로 버스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그런 어르신들이 계신 시골은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요. 오전에 한두 번 그런 식. 그럼 그 버스를 타고 또 시내에 가서 병원에 바로 갈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갈아타야 해요. 그러면 이분은 병원까지 가는 데만 걸리는 시간이 1시간 반~2시간인 거죠. 가는 데에만. 그런데 이런 분도 사실 많지 않아요.

세 번째 C, 차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은 분들. 사실 이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건강하지 않다는 건 이동에 굉장히 제한이 있다는 거죠. 무릎 관절염이라든가, 허리 디스크 등으로 걷는 게 어려우신 분들. 이분들은 시간이 더 걸려요.

그리고 마지막 D는 준 와상 상태에 있는 분이에요. 이분들은 대중교통은 어렵고 콜밴을 부르거나 어떤 경우엔 119를 불러야 병원에 갈 수 있어요. 제가 만나 뵙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아무리 좋아도 B이고 C에 해당하는 분들이 많아요. 의료가 꼭 필요한 분들이죠. 그런데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누구를 기준으로 해서 이 구성됐느냐, 이 시골의 의료도 마찬가지예요. A, 그러니까 건강하고 차도 있는 분들."

프레시안 : 어르신 대부분이 병원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군요.

양창모 : "이런 일도 있어요. 보건진료소가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그 보건진료소에 가서 혈압약을 타는 어르신이 있었어요. 제가 왕진에서 만나 뵌 분인데, 이 어르신이 혈압약 부작용이 생긴 거예요. 어르신이 저에게 '손발이 붓는다'고 하셨는데 그 부종이 제가 진찰해보니까 혈압약 부작용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혈압약을 다른 혈압약으로 바꿀 것을 권해드리면서 진료의뢰서를 써드렸어요. 이분이 그걸 가지고 다니던 보건진료소에 갔는데, 거기에 다른 혈압약이 없는 거예요. 보건진료소에서 그분께 시내 병원에 가서 약을 타라고 했어요. 약이 없으니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사실 그 담당자가 시내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건강하고 차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 어르신은 그렇지 않았어요. 시내 병원에 가는 게 힘드신 분이었죠. 그분은 결국 시내에 나가는 걸 포기했어요. 시내에 나가려면 자제분들을 불러야 했거든요. 그런데 자제분들도 생업이 있으니까 부를 수 없는 거죠. 자제분들 대부분이 평일 낮에 부모님 댁에 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분은 부작용이 있어도 약 바꾸는 걸 접어버렸어요. 그런 상황들을 봅니다. 병원의 이용 기준이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어, B, C, D에 해당하는 분들은 병원 이용에 제한을 받고 이게 하나의 차별이 됩니다. 휠체어 탄 사람에게 계단 이용해서 병원 오라는 것과 같아요."

프레시안 : 거의 C, D에 해당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이미 아프신 분들입니다. 말씀해주신 분의 사례처럼요. 제때 치료나 관리를 받지 못하면 상태가 쉽게 더 나빠질 것 같은데요.

양창모 : "그런 분들이 많아요. 사실 우리가 늙는다는 것은 뭘까 생각해보면 A였던 사람이 B가 되었다가 결국 C, D로 이동해가는 거잖아요. 점점 거동이 어렵고 불편해지는 거죠. 점점 의료가 필요해지는 것이기도 해요. 그런데도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너무 A에 맞춰져 있어요. C나 D인 사람들이 가진 불편함을 해소해주지 못해요."

▲호호방문진료센터 의료팀이 왕진가는 길.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농촌 지역은 병원 수도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계신 강원도는 병원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많이 부족하다고요.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의 지난해 4분기 의원(개소) 수와 통계청의 지난해 12월 기준 인구수를 바탕으로 조사했을 때 인구 1000명 당 의원 수는 전국 평균 0.6762개소로 나타났다. 이 중 강원이 0.5082개소로, 경북 0.4869, 경남 0.5075 다음으로 낮았다.편집자

양창모 : "시골에 있는 공공의료기관은,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보건지소에는 (공중보건)의사가 있구요. 보건진료소에는 의사가 없고 간호사 선생님만 있기에 새로운 처방을 낼 수는 없습니다. 면사무소 소재지에 보건지소가 하나 있고 오지에 해당하는 곳에 보건진료소를 둡니다. 그런데 시골 면 단위는 지역이 굉장히 넓습니다. 가령 저희가 왕진가고 있는 면 중에 춘천 사북면이 있는데 그 크기가 여의도의 50배 정도 됩니다. 그 사북면에 공공의료기관이 몇 개 있냐면 보건지소 하나에 보건진료소 두 곳밖에 없어요. 여의도의 50배 크기인데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병원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 넓은 곳에 공공의료기관이 그렇게 있습니다. 이렇게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게 차별이 되죠. 시골에 계신 분들, 나이 많으신 분들, 몸 불편하신 분들에 대한 차별이요."

프레시안 : 수도권 대도시가 아니면 병원 수가 부족하고, 교통이 불편한 데다 노인분들은 거동도 불편하니 더 아플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양창모 : "더 큰 문제는 어떤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차별이 다른 차별을 만들어내는 거죠. 무슨 말이냐면 이 의료접근성에 대한 차별이 노인 당사자분에게 끝나지 않고 그 가족에게 번져요. 제가 뵌 한 어르신은 따님이 전북에 살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 어르신이 춘천에 혼자 사셨는데 치매가 시작된 거죠. 따님은 전북에 직장이 있고 결혼해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따님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런 따님이 어머니를 모실 수가 있나요. 어렵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라고 강요합니다. 모시지 않으면 답이 없게 만들어졌으니까요. 그 따님은 결국 남편 눈치를 보면서 어머니를 전북으로 모시고 갔어요. 직장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국가에서 지원금이 30만 원 나옵니다. 그걸 받으면서 집에서 엄마를 돌보는 거죠. 본인의 이전의 삶을 포기한 것이기도 해요.

이 얘기에는 모든 차별이 대부분 들어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아픈 사람에 대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어르신이 치매에 걸린 것 자체는 차별이 아니겠죠. 그런데 이 문제를 방치하면 또 다른 차별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프레시안 :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그동안 누적된 사회문제가 곪아 터졌다고 얘기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차별의 문제도 그렇고요. 공공의료의 영역에서는 어땠나요?

양창모 : "제가 왕진을 하면서 겪어보니까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감염위험도가 높은 곳에 꼭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사망위험도가 높은 분들이 노인, 장애인분들이죠. 이분들이 제가 주로 왕진가서 만나는 분들이고요. 그리고 또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아마 병원일 겁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병원에 갈 일이 없죠. 하지만 노인, 장애인분들은 다릅니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찰받아야 하고 또 약도 타야 해요. 그러다 보니 감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감염위험도가 높은 병원에 꼭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떤 어르신들은 감염 확산이 심할 때 자제분들이나 요양보호사에게 약을 부탁하기도 했어요.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노인, 장애인분들이 가장 위험도가 높은 분들이라면 이분들에게 백신 접종이 우선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학력·고령층의 코로나 사망률이 2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정부의 통계라는 게 참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부 대책 관련자가 한 번이라도 시골에 왔다면 진작 이런 것을 체감했을 테니까요."

<한겨레>의 지난해 11월 3일 자 보도(☞바로가기)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사망자 950명 중 60세 이상 고령자가 95.3%(905명)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이하 저학력 노인은 45.3%(401)에 달했다. 전체 인구집단에서 저학력 노인 비율(30.9%)과 비교했을 때 1.5배 높은 수치다. 학업 수준이 파악되지 않은 고령 사망자는 6.7%(52명)로 나타났다.편집자

프레시안 : 국가에서도 이런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관심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드러났네요.

양창모 : "저 같은 경우엔,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처음 고령자들 접종 신청하라고 했을 때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골에 글을 못 읽는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걸요. 통계적으로 글을 못 읽으시는 분들이 전체 인구의 7~8%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시골에서 실제로 만난 어르신들은 체감상 열에 두 분 정도 됐어요. 어떤 분은 저희가 혈압측정 하시라고 혈압기를 드렸는데, 혈압기에 나온 숫자를 못 읽으시니까 그걸 그려놓으셨어요. 숫자 그대로. 그럴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에 어르신들에게 코로나 백신 접종 신청하라고 공지가 왔어요. 그때 제가 왕진을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접종신청을 했는지 물어봤습니다. 한 세분 중 두 분이 안 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너무 의아해서 춘천시에 통계자료를 부탁해 받아봤습니다. 보니까 그때 당시 춘천시 전체 접종신청률이 60% 후반대였어요. 그런데 제가 만나는 어르신들, 대부분 저학력에 저소득, 형편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 이분들은 세 분 중 두 분 가까이가 신청을 안 하셨어요. 그만큼 백신에 대한 접근도도 떨어지는 거죠. 백신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코로나에 걸렸을 때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3월부터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정부에서는 거의 8개월 지난 시점에 그 통계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프레시안 : 실제로 취약계층, 감염위험도가 높은 고령자·장애인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양창모 : "정말 높아요. 그때 그런 어르신들의 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 공공의료 현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제가 봤을 땐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어르신들에게 여쭤보면 본인 스스로 접종하지 않겠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럼 공공의료기관에서는 그분들의 서명을 받습니다. '본인 의지로 접종하지 않겠다'는 서류에요. 제가 뵌 분은 이장님이 서류를 들고 오셔서 사인하라고 하셨대요. 근데 백신 접종을 신청하지 않은 어르신이 있다면 유선상으로라도 연락을 해서 접종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권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이 부족했고요. 보건의료 현장이 워낙 바빴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런 부분이 아쉬웠던 건 사실이에요. 장애인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계신 장애인, 재가장애인분들 중 외출이 어려우신 분들이 있어요. 접종 장소까지 나오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분들을 찾아가 백신 접종하는 서비스가 안 됐어요. 공공의료가 가장 취약한 분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료 중인 양창모 센터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노인분들, 특히 시골에 거주하시는 노인분들께는 왕진, 방문진료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또 원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이런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양창모 : "병원의 주인은 대부분 의사 개인이거나 법인체입니다. 병원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느냐면 병원의 주인인 의사의 이익을 위해 작동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똑같은 병원이지만 병원의 주인이 시민이에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병원을 만들고 거기에 의사가 취직된 형태예요. 이렇게 설립된 병원은 병원의 주인인 시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될 수밖에 없어요. 그 단적인 예가 왕진입니다.

지금 '왕진 수가 시범사업'이라고 해서 동네 의원에서 왕진을 가게 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왕진이 돈이 안 됩니다. 경제적 수입의 측면으로는 매력이 없어요. 왕진을 한 번 가면 한 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한 곳 가는데요. 갔다 오는데 한 시간, 거기서 진료하고 돌아오는 데 아무리 짧아도 한 시간이에요. 어디에 가든. 그렇게 한 시간 다녀오면 수익이 11만 원 조금 넘어요. 이 한 시간 동안 의사가 병원 진료실 안에서 들어오는 환자분들을 만났을 때 벌 수 있는 금액과 차이가 비교가 안 되죠. 그러니 일반 동네 의사들에게 왕진은 매력 없는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은 왕진을 많이 갑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왕진을 가장 많이 가는 의사일 거예요. 그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의사에게 왕진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아도 아픈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생기거든요. 그렇기에 왕진을 갈 수 있어요. 이 부분과 차별이 매우 맞닿아있다고 봐요.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다수의 이익보다 무거운 사회가 되지 않으면 차별은 계속 존재할 거라고요. 다수의 이익보다 한 사람의 삶의 무게를 무겁게 느껴야 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죠. 하지만 그 이상을 지금 이곳에서 실현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의료사협에 있는 의사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왕진을 가는 거고요."

프레시안 : 왕진이랑 방문진료는 다른 건가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양창모 : "요즘은 사실 왕진과 방문진료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쓰고 있어요.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동네 의원이 하는 건 '왕진', 보건소와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하는 건 '방문진료' 이렇게 구분했으면 합니다. 왕진은 의사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자신이 여건이 될 때 비정기적으로 환자의 집에 찾아간다는 의미가 크죠. 그런 왕진도 필요합니다만 지금은 방문진료가 훨씬 더 필요합니다. 공공의료기관이 체계적, 정기적으로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거죠. 방문진료는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와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노인이 되고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어디에서 그 죽음을 맞이하고 싶나요?"

프레시안 :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제 침대 위에서 가족들과 다 인사를 나누고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양창모 : "그렇죠. 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제가 왕진가서 만나는 어르신들 대부분도 여쭤보면 집에서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십니다. 물론 가끔 요양원에 가겠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도 실은 요양원에 정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본인이 치매에 걸린다면 자식에게 폐가 될 테니까요. 그러니 나는 요양원에 가겠다 하시는 거죠. 내가 평생 살아온 집, 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이 크세요. 제가 뵌 어떤 분은 아흔이 넘으신 분인데 침대에서 못 나오세요. 침대에서 하루종일 지내시는 거죠. 가족도 없고 혼자서. 그런데도 요양원에 안 가세요. 대소변 보는 것도 다 침대에서 스스로 해결하세요. 요양보호사가 있으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요양보호사 없는 시간에는 본인이 기저귀 갈아입고 물티슈로 닦아서 옆에 큰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다음에 요양보호사분이 오셔서 그걸 밖에 내놓으시고요. 냄새도 나고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그런데도 안 가세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또 걱정되시는 거죠. 지금은 정신이 맑고 또렷하시니 그게 가능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요양원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 거예요.

실제로 한국에서 돌아가시는 노인분들 중에, 열에 아홉 분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물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필요하죠. 제가 실제로 왕진가서 만나 뵙는 어르신 중엔 집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당장에라도 요양원에 모시고 가고 싶은 분도 계세요. 하지만 어르신들 대부분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선택권이 없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왕진갔을 때 가장 크게 느낀 부분입니다."

프레시안 :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네요. 어떻게보면 당연하게 여겨진 일이기도 하고요. 또 매우 오래된 사회현상이자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문제로 잘 다뤄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양창모 : "의료라는 게 굉장히 독특한 영역입니다. 저는 장애인차별에 반대합니다. 그 이유가 제가 지금은 장애인이 아니지만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만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설사 제가 장애를 갖게 되는 상황, 즉 당사자가 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일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여성차별, 성소수자차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의료의 영역은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늙는 존재니까요. 늙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아픈 노인에 대한 차별은 우리 자신에 대한 차별이기도 해요. 당사자에게 연대하는 것 이상의 의미죠. 노년이란 상황은 우리 생의 주기에서 될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되는 존재예요. 운 좋으면 피할 수 있는 차별이 아니라 내게 다가올 게 분명한 차별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 이 이슈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차별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이 차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 가늠하는 아주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제가 시골에 왕진을 시작하고 만나 뵀던 분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 중에서 집에서 돌아가신 분은 한 분도 없어요."

프레시안 : 집에서 거의 평생을 사신 분들일 텐데요. 어디로 가신 건가요?

양창모 : "모두 요양원에 가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분들뿐 아니라 평균적으로 한국의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707일 있다 돌아가십니다. 2년 좀 안 되는 기간이죠. 선택권이 없는 거예요. 이런 한국 사회에서 우리 역시 노인이 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죠. 다른 예시를 들어볼게요. 우리는 밥을 먹고 이를 닦습니다. 왜 일까요? 충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죠.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도 받습니다. 나중에 큰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요. 그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노인 문제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는 거죠. 지금의 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요? 어떤 현실에 처해 있나요? 현재의 노인들이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 노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나요? 한 번 쯤은 꼭 되돌아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 태도를 어디에서 주로 느끼나요? 노인 문제에서 발견한 다른 사회문제가 있나요?

양창모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어떤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차별을 양산합니다. 지금의 노인분들, 제가 왕진가서 만나 뵙는 어르신들의 문제도 결국엔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거죠. '노인 문제'라고 이름 붙였지만 하나의 문제가 아니란 거죠. 정당정치를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대선에 접어들었잖아요. 그리고 지금 이 사회는 노인 돌봄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 돌봄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아요. 이야기하는 정당도 안 보이고요. 한국의 노인은 지지하는 정당은 있어도 자신의 정당은 없는 겁니다. 저도 그랬지만 제가 왕진가며 보게 되는 아픈 노인분들의 현실. 이건 제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하물며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시민은 어떨까요. 누구에게나 다가올 미래인데 현실로 느끼지 못하죠. 결국 이슈화되지 못하고요. 그럼 노인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방문진료하는 의료진, 공공의료 영역이 커져야 하죠. 여성이 대부분 담당하는 돌봄 노동에 대한 대가도 정상화돼야 하고요. 돌봄이 필요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선 또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가 다 연결된 거죠."

프레시안 : 사람들이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고 또 모든 자원이 도시에 집중한다는 점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골'의 모습이 어떤지 잘 모르고요. 시골에 거주하는 분들은 거의 노인인데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인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어요.

양창모 : "제가 농촌 시골 마을에 왕진을 가면서, 그전까지 '시골은 어떨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실제 시골은 많이 달랐습니다. 도시가 그런 것처럼 농촌사회도 가족관계가 많이 해체됐고요. 가족을 대신할 무언가가 없는 상황입니다. 고립, 단절, 외로움의 문제죠. 대부분 1인 가구입니다. 혼자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아주 운 좋으면 부부가 같이 살고 계시죠. 자제분들과 같이 사는 경우는 거의 못 봤어요. 외로울 수밖에 없죠. 특히 몸이 아플 때 더 그렇고요. 제가 만났던 어르신 한 분은 심장이 많이 안 좋아서 마루에서 안방 다녀오는 것도 숨차하셨던 분이었는데 이 어르신이 주로 하시는 말씀이 '아프다', '힘들다'가 아니라 '외롭다'였어요. 시골에서 혼자 살지만 건강할 때는 본인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몸이 아파지고 숨이 차니까 어딜 갈 수가 없잖아요. 사회적 관계가 다 끊어졌죠. 거기서 오는 외로움이 커요. 집에 찾아오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데 사실 누군가 찾아오는 일이 드문 분들도 있거든요. 저희가 왕진가면 엄청 반겨주세요. 표정도 너무 밝아지시고요. 조금 더 머물다 가길 바라시기도 하고요. 어떨 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그때 마실 걸 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사회와 맺는 그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분들의 끈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가 왕진가면서 공공의료에 방문진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까 싶긴 해요. 하지만 그런 한 사람, 꼭 의료진이 아니더라도 그 분들의 외로움과 생활의 불편을 덜어드릴 수 있는데 필요한 한 사람을 만드는 건 가까운 미래에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창모 센터장. 진료를 하며 만나는 어르신들의 안부를 챙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비단 의료의 영역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이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많은 차별이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또 이미 존재하는 차별이 이를 통해 더 문제를 만들어내고요. 이런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창모 : "'정상성'이라고 부르는 그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지금 당장은 건강한 성인이고 소득과 자산이 많다 한들 노년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지금이 몇 시든, 아무리 햇빛 찬란한 정오라 한들 저녁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죠. 노인의 삶과 죽음에 둔감하다는 건 우리들의 삶과 죽음에 둔감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희 노인이 아닌 분들이 꼭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당사자주의'라고도 하죠. 어떤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문제의 피해자, 당사자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 문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려워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양로원에 있는 노인분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분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고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그러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저학력, 저소득의 노인분들은 이런 현실을 사회적 의제화하기도 어렵고요. 노인의 삶, 또 돌봄의 문제는 당사자주의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젊은 분들, 노인이 아직 아닌 분들, 거꾸로 이야기하면 먼 미래에 당사자가 될 분들, 이분들이 지금 현재 당사자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할지 선택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프레시안 : 의료의 영역, 노인 문제를 시작으로 여러 사회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나요?

양창모 : "전에 왕진 갔을 때 집안에 문턱이 사라진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는데 하반신 마비가 있는 어르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엉덩이와 하체를 끌면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문턱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서 문턱을 일일이 깎아 놓으셨어요. 어찌어찌해서 집안의 문턱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집 밖의 문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깎인 문턱을 보면서 몸도 불편하신 분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문턱을 하나하나 칼로, 대패로 깎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안의 깎인 문턱은, 차별금지법이 없는 세상에서 차별받는 개인들이 어떤 악전고투를 겪고 있는지를 내게 느끼게 해주었어요. 차별금지법이 생긴다는 것은 이동에 제약이 없는 나 혹은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그 어르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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