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는 사건이 아닌 일상이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중대재해기업을 처벌한다는 것의 의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보름을 앞두고,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장 외벽이 붕괴됐다. 30층 가까운 높이에서 창문을 달다가, 미장을 하다가, 소방설비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터진 사건이라 법 적용이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뒤 양주 석재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되어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삼표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기업이 될 거라고 한다. 법 시행과 함께 작업장의 안전조치가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잠잠하지만, 누가 이 법의 첫 번째 대상이 될지에 대한 관심은 요란하다.

중대재해, 자본주의체제의 숱한 일상

광주 아파트 붕괴 이후,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재건축 현장에서는 아이파크라는 글자가 가려지거나 지워졌다. 현대산업개발이 입찰 경쟁에 참여하는 한 재건축 단지에는 "현대산업개발 퇴출!"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러나 결국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하는 파격적인 사업조건을 내건 현대산업개발이 시공권을 따냈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매개로 퇴출의 기로에 선 기업의 회생 소식은 중대재해가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든 숱한 '일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업주가 요구하는 노동량과 속도를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산재는 더 자주 발생하고, 원청과 하청이라는 힘의 관계 속에서 위험한 일은 더 힘이 약한 곳으로 흐른다. 중대재해는 특별히 더 나쁜 기업에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비용을 줄여 더 많은 이윤을 내려는 기업들은 책임도 가볍고 더 적은 비용이 드는 중대재해를 기꺼이 감수해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은 중대재해의 책임을 기업에 제대로 물어 더 이상 기업이 이윤과 노동자의 안전을 저울질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것이었다.

법이 시행된 첫날인 1월 27일, 규모 있는 웬만한 건설사의 건설현장마다 공사를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건설현장의 '공사기간 줄이기'가 중대재해의 원인으로 늘상 지목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법이 지금 당장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본다. 경제지와 보수신문들은 기업들이 갖는 긴장감을 대리 보도하듯, 과도한 징벌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을 염려했다. 국내 대형 로펌들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부처에서 근무한 고위 전관들을 영입하며 경영자 책임을 면하게 할 전담팀을 꾸리고 나섰다. 정치 권력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씨는 기업인들과 만나 국내외 투자를 우려하며 법률 재검토 의지를 보였다. 또 다른 대선후보인 안철수 씨는 해당 법이 중소기업인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제정은 시기상조라 했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노라 공약한 해이지만, 1월 이미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수가 작년 같은 시기와 비등하다. 중대재해의 책임을 '진짜 사장'에게 묻고자 어렵사리 마련한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사회 권력집단은 기업만을 적극 비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대재해 기업에 책임을 제대로 묻는 힘을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한다는 것의 의미

입법의 핵심은 중대재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을 규정해 사전에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에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과 보건 확보의무를 부여하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 보호될 수 있는 경영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운영관리하는 대표가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한 환경, 위험한 요인을 파악하고 제거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법이 규정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광주 아이파크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4-5일 만에 아파트 한 개 층이 뚝딱 만들어졌다고 했다. 최장 18일 이상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뒀다는 현대산업개발의 주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붕괴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지대 철거 작업에 대한 말도 다르다. 노동자들은 원청이나 감리의 승인 없이 하청업체가 해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은 해당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하고 있다. 원청이 유독 공사기한을 쪼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선분양 후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는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원청인 시공사가 공사기한을 맞출 것을 요구하면 후반부 공정은 무조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실질적인 고용관계를 내세워 원청은 산재의 책임을 하청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현장의 관리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왔다. 원청은 사고의 원인을 모른다고 하거나, 그건 하청의 책임일 뿐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몰랐다는 말로 중대재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책임을 묻는 행위로서 처벌은 형벌이라는 결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을 몰랐는지, 왜 몰랐는지, 어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혹은 얼마나 부족한 조치였는지 등 그동안 따져 묻지 않아 은폐할 수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이고, 그런 과정을 담보할 때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중대재해 예방 및 재발방지 대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처벌은 나쁜 기업을 도려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안전한 일터로 바꾸어갈 조건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노동자 스스로 안전할 수 있는 방안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원청이 공사를 맞추라고 종용해도, 지금 당장 지지대 철거를 지시해도, 현장의 노동자가 안전을 이유로 해당 지시를 거부할 수 있었다면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은 '이 정도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혹은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의 안전이 '이 정도'라는 잣대에 머물 수 없다는 사회적 의미를 세워가는 것이다.

노동자가 더 잘 싸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

법 시행 이후 잇따른 중대재해 사고들에 대해 지난한 법정 공방이 일어날 것이다. 경영책임자는 노동자의 안전 확보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검사는 기업이 그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는 사건의 소재로 소비되거나 공방 과정을 지켜보며 결과를 기다리는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진실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이 중대재해라는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의 사회적 정의를 회복하는 수단의 전부일 수 없다.

지난 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의 요지는 '직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청이 발전소 안전을 위해 할 만큼 했다는 인정과 함께 고 김용균 노동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회사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석탄가루가 온 시야를 가릴 정도로 컴컴한 곳, 핸드폰 불빛 하나에 의지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죽은 현장을 물로 씻어내 지우려 했던 원청이다.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책임자에 대한 사법정의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 또다시 새로운 싸움의 국면이 열렸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고 진실을 은폐한 기업이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제대로 된 처벌을 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법정 밖에서 투쟁해나가야 할 것이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일하다가 중대재해를 입었는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법의 한계에 좌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김병숙 대표가 감옥에 가는 장면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가지길 원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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