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지부 소속 노조원들이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에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12월 28일부터 45일 동안 이어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총파업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에는 택배 노동자를 분류 작업에서 배제하기 위한 분류 전담 노동 투입, 주 60시간 이내로 작업 시간 하향 노력, 택배비 인상분을 통한 노동자 처우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CJ대한통운은 일부 작업장에 분류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택배비 인상분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반영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양호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이행현황의 신뢰성과 충분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노조는 수차례 재협상과 사회적 합의 이행 현황에 대한 재검증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응답하지 않았고, 이러한 상황이 10일 점거 농성으로까지 이어졌다.
각 계의 '노조 압박'이 즉각 이어졌다. 10일 황규환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은 논평을 내 점거농성을 "떼법과 몽니"라 비판했다. CJ대한통운은 "명분이 약해진 파업이 결국 불법행위로 이어졌다"며 11일 택배노조를 재물손괴, 업무방해,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같은 날 <뉴스1>에선 "점거농성 조합원이 코로나 증상에 후송됐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점거 과정에서 허리를 다친 것"이란 노조의 해명으로 현재 해당 기사는 정정된 상황이지만, 점거농성을 둘러싼 정치권, 사측, 언론 등의 압박이 동시적으로 가해지는 모양새다.
'명분 없는 파업'이란 사측의 논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점거 현장 내 노조원들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 측이 무시해온 합리적인 대화 요청"과 "실제 노동현장의 개선되지 않은 조건들"을 고려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명분 없는 파업? 점거 현장 노동자 "명분은 현장에 있다"
지난 24일 국토교통부는 "사업장에 대한 CJ대한통운의 사회적 합의 이행 상황은 양호하다"는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사측은 "노조 파업의 명분이 약해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 본사 안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 A 씨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실제 노동 현장은 양호할 정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 양호"라는 사측과 국토교통부의 판단 뒤에, 더 나아져야 하는 노동 현장의 어려움이 가려져 버렸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당일배송', '주 6일제'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대책?)
A 씨는 특히 "전체 사업장 대비 30%가 채 안 되는 '분류 전담 인력' 투입률"을 문제 삼았다. 분류인력 투입은 국토부의 핵심 점검 사항이었다. 6개월 유예기간을 거친 '전체 사업장 대비 28% 사업장에 분류 인력 완전 투입, 48%의 사업장엔 일부 투입' 수준의 합의이행을 국토부는 "양호하다"고 봤지만 실제 현장의 노동자 A 씨의 생각은 달랐다.
A 씨는 "내가 일하던 터미널만 해도 55명의 노동자 중 40% 정도만 분류작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결국 나머지 60%는 똑같이 과로 환경을 감수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택배 물품 분류 작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화제가 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임 부분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현장을 봐온 사람으로서 (분류 인력이 완전 투입되는) 28%라는 수치 자체도 믿기 어렵지만, 그 수치가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수치인지 국토부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며 "그걸 같이 판단하자고, 더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대화를 요구한 것이 지난해 파업의 시작"이라 말했다. 노조는 지난 10일에도 "1월 설 택배대란을 막기 위해 거듭 대화를 제안했다. '공개 검증을 약속하면 파업철회를 위한 찬반투표를 진행하겠다'는 파격적인 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사측은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동자들은 '택배요금 인상분은 140원이고, 인상분의 절반 이상이 택배노동자에게 반영된다'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현장에선 그렇게 받은 사람이 없다"고 반박했다. A 씨는 "애초에 요금인상분은 (노동자에게) 전부 반영돼도 간선차, 택배, (택배를) 발송한 쪽 등 여러 곳에 알아서 나눠서 가진다"며 "요금을 170원 올려서 전부 다 노동자를 위해 쓰겠다는 처음의 약속도 온 데 간 데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합의 사항 중 ‘택배비 인상분을 통한 노동자 처우 개선’ 부분은 파업 국면에서 특히 치열한 쟁점이었다. 노조는 사측이 계산한 택배비 인상분이 140원(원안 170원)인 점을 신뢰할 수 없으며, 140원의 절반 이상이 노동자 처우 개선에 반영된다는 사측의 주장 또한 믿을 수 없다며 노조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노조는 '택배비 인상분은 242원', '그 중 처우개선 반영분은 40원'이란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한선범 전국택배노동조합 정책국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사측은) 140원 인상분 중 70원을 택배기사에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노조 자체조사로는 242원 중 40원이 반영되고 있다"며 "줬다는 걸 받은 사람이 없다는데, 사측은 노조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측, 대화 요청은 거부하면서 '갈라치기' 전략으로 일관"
10일 CJ대한통운 본사 점거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며 "얼굴 좀 보자, 대화 좀 하자, 그것도 안 되면 국토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노사주장의 검증을 맡기고 노조는 파업을 풀겠다"고 말했다. 노조의 파업 및 농성을 가리켜 "극단" "폭력" 혹은 "떼법과 몽니" 등의 표현이 쇄도하는 상황이지만, 노동자들은 "우리가 원한 건 대화"였다고 강조한다.
A 씨도 "대화 요청은 거부하고, 갈라치기에 힘을 쏟고 있다"며 사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분류인력 투입과 같은 사측의 사회적 합의 이행 방식이, 이른바 '노노 갈등'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는 감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분류인력이 전혀 투입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면 비노조와 노조 간의 격차가 생기지 않겠느냐, 이게 다시 불만요소가 되고 갈등요소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비노조 노동자와 노조 소속 노동자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평이 많지만, 애초에 비노조와 노조의 구분 없이 모든 이들을 위한 처우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택배대란으로 초래되는 고객 불편 사항에 대해서도 "(파업 전에도)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사회적 합의 사항에 맞추기 위해 퇴근을 하면, 사측은 남은 작업량을 두고 '노조 때문에 택배대란이 생겼다'고 말했다"며 "이제 우리가 싸우고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라 말했다.
노조는 '계약상 아무 상관이 없는 본사를 점거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입장을 전했다. "대리점과의 계약조건이라는 쟁점 자체가 본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김인봉 전국택배노동조합 사무처장은 "(파업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 합의 이행에 따라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부분이 CJ대한통운의 기업 이윤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라며 "택배 노동자들이 만든 인상분은 노동자에게 돌아가야지 않겠느냐고, 돌아가고 있다면 검증을 하자고도 했는데 본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점거농성은 45일 동안 한계에 다다른 파업 국면에서 노동자들이 감행한 마지막 선택이기도 하다. A 씨는 "사실 (파업은) 단지 대화를 하자는 것이고, 협상을 다시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며 점거농성 전 노동자들의 상황을 "단기 아르바이트나 대출로 버티며 서로 미안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을 오히려 걱정하는 상황, 농성에 돌입하기 전 A 씨는 가족들에게 "놀러간다"고 말하며 집을 나왔다. 가족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는 그는 "술 적당히 마시라"는 가족의 핀잔을 뒤로 하고 농성장을 찾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가 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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