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6명의 국회의원이 목숨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김용균 재판 의견서 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저자 은유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넷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만든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2인 1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전부터 제기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안전 설비 개선 요구도 여러 번 묵살됐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법인을 비롯 이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 달 10일로 예정돼있다. 이를 앞두고 시민 1만여 명이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썼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한국사회에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마음을 재판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김용균재단이 모은 김용균 재판 의견서 중 일곱 편을 싣는다. 앞의 네 편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건설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재유족이 쓴 것이었다. 뒤의 세 편은 은유 작가,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 의견서다.

저는 CJ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열아홉의 나이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세상을 등진 고 김동준 군을 비롯해 특성화고 학생의 노동 현실을 담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2019, 돌베개)이란 책을 쓴 작가 은유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폭력과 존엄 사이>(2016,오월의봄) 등의 책을 쓰면서 한국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란 책도 쓰게 되었습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동준 군이 나이가 어린 청소년 노동자라서 죽은 것이 아니라 어른 노동자도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일터에는 폭력이 만연하고 위험이 지뢰처럼 깔려있습니다. 요즘도 연일 보도되는 뉴스가 증명하듯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산업재해사망률 1위를 20년 넘게 해오고 있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일년에 2400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하니 하루에 6명씩 일터로 출근해서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참담한 숫자에는 스물세 살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2018년 한국서부발전에서 일하던 김용균 씨는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고, 그 죽음이 너무도 처참했고, 처참한 죽음이 드러낸 일터의 환경이 너무도 열악했습니다. 제대로 된 렌턴 하나 없어서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혼자 일해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한국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꿈 많고 순수한 한 청년의 몸을 절단내고 삶을 잡아먹은 기업이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최고의 발전회사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어가는 현실이 반복되는가?

이제 사람들은 압니다. 사람이 죽어도 공장은 또 버젓이 돌아간다는 사실을요.

노동자의 목숨값은 기업이 거둬들이는 이윤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기업들은 위험한 일은 하청으로 돌리며 죽음을 외주화하며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아무도 그럼 기업의 행태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낼 곳은 사법부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김용균 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의 가해자는 명백합니다. 그러나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본인들의 잘못을 고인에게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김용균 씨는 죽어서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비웃고,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피맺힌 아픔과 원한을 비웃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한번씩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하루에 6명씩 국회의원이 목숨을 잃는다면

만약에 하루에 6명씩 대학교수가 목숨을 잃는다면

만약에 하루에 6명씩 예술가가 목숨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고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루에 6명씩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일하다가 죽지 않는 나라가 진짜 선진국입니다. 노동자의 죽음을 연료로 몸집을 불린다면 어떻게 일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부디, 이번 재판에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꼭 밝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해자에게 엄벌이 내려져야만 이런 야만의 노동 환경이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김용균 씨가 살고자 했으나 살지 못했던 삶을 다른 청년 노동자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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