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를 살릴 재판은 없지만, 죽음을 막을 재판은 있습니다"

[김용균 재판 의견서 ④]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넷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만든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 2인 1조 지침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전부터 제기됐던 하청 노동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안전 설비 개선 요구도 여러 번 묵살됐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법인을 비롯 이 사고의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 달 10일로 예정돼있다. 이를 앞두고 시민 1만여 명이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썼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 한국사회에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가 없도록 해달라는 마음을 재판부에 전하기 위해서다.

김용균재단이 모은 김용균 재판 의견서 중 일곱 편을 싣는다. 앞의 네 편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부인 오은주 씨,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건설노동자 고 정순규 아들 정석채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재유족이 쓴 것이다. 뒤의 세 편은 이들의 곁을 지켜온 노동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의견서로 예정돼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사건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주시하고 더 나아가 그 사건이 미래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역사의 한 기록으로만 남길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억의 의미를 정의로운 재판으로 항상 고민하시고 힘써주시는 재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2016년 10월. 방송계의 열악한 현실과 카메라 뒤의 수많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장시간 노동 등을 고발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입니다. 드라마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청년 아들을 보내고 아들이 살아가고 싶어했던, 아니 이 사회의 청년들이 꿈꿨던 앞날을 아버지로서 이어가겠다고 약속하며 아들 한빛을 기억하며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청년은 이 사회의 미래인데 또 한 명의 청년이 2018년 12월 10일 늦은 밤 목숨을 잃었습니다. 청년노동자인 김용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음에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본인 부주의로 사고를 당했다고 회사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장합니다. 청년을 두 번 죽이는 짐승만도 못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정의는 살아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의 죽음에 슬퍼했고 그런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일치했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일하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더 안전한 사회, 더 평등한 일터를 만들어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매일 퇴근하지 못하는 7~8명의 노동자들 소식을 듣습니다. 가족의 부재를 느끼고 몸서리치는 유족들은 이 고통이 자신으로만 그쳤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재 예방 운동과 생명 존중 운동을 하고 있고 유가족이 단식을 하면서까지 법을 제정했음에도 기업과 사업주는 여전히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고 재판은 죄를 가리고 벌을 내리는 기능에 더해 원인을 드러내고 다 함께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재판은 없지만 죽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막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우선 밝혀져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조사와 진술, 증언, 자료 들을 통해 방지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한 기업이 문제임이 드러났습니다. 원하청 업체는 이미 2019년 당정 협의 발표 이후 김용균시민대책위와 합의를 할 때 김용균 노동자의 잘못은 없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젊은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성찰은커녕 진상조사 결과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려진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범죄혐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고 김용균의 사망 이후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실제로 산업안전법 전면 개정에도 불구하고 석탄 발전소 등의 도급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2021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기업의 대표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3~2017년 산재 상해·사망사건의 형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연인 피고인 2932명 중 징역 및 금고형은 86명(2.93%)에 불과했고 대부분 집행유예(981명, 33.46%)나 벌금형(1679명, 57.26%)에 그쳤습니다. 징역 및 금고형의 경우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비중이 높았고, 벌금 평균 금액은 자연인이 420만 원, 법인은 448만 원이었습니다.

5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벌금을 내고 난 후 사업주들이 반성하고 일터의 현실이 바뀌었을까요? 위 통계자료와 같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하여 과실범죄라며 매우 낮은 수준의 양형으로 처벌하였고, 그 결과는 하루 평균 6명이 일터에서 사망하는 것입니다. N번방의 책임이 법원에 있다고 하는 것처럼 산업재해사망의 책임도 법원에 있는 것입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반드시 엄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권한을 가진 자는 그 권한만큼의 책임을 지는 것은 상식입니다. 권한과 책임에 대해 분명하고 엄정하게 처벌이 내려져야 그 권한과 책임이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뒤틀려지고 오염된 상식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도외시하거나 생명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재판장님의 판결을 통해 이 땅에 건강한 기업가 정신과 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 노동자의 사망 등 중대 산업재해가 일어났음에도 개선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과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더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상식과 강력한 법적 원칙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다른 무엇보다 생명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인간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이 재판이 큰 역할을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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