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을 앞두고 '기후정의'를 외치는 이유

[함께 사는 길] 기후정의를 요구한다·② 기후변화 해법이 핵과 수소라고?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끝났다. 석탄이 살아남았다. 석유와 가스의 수명도 연장됐다. 그 결과, 2050 이전 탈탄소 체제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비극적인 현실 인식이 온 세계에 비등하다. 한국에서는, 이대로는 기후파국이란 공포를 지렛대 삼아 보수정치와 연대한 한국 산업계의 원전 재활론의 비판소리 드높다. 화석연료의 역할 유예를 통해 탈탄소 사회를 향한 진보의 속도를 늦추고 핵을 탈탄소의 수레로 둔갑시키는 모든 시도는 기후변화를 납치하는 짓이다.

2050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전환의 길로 달려갈 가장 확실한 전략이자 수단은 사회가 통째로 '정의로운 전환'에 돌입하는 것이다. 탈탄소 에너지 체제를 향한 전환의 길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불러올 기후행동의 기준율, 그것은 '전환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시민들은 기후정의를 세우기 위한 기후행동의 지구 전선에 서있다.

"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Let's Talk About Nuclear)"

"핵에너지는 생명을 구합니다(Nuclear Energy Saves Lives)"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이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 총회장에서 앞뒤에 이런 핵발전 찬동 문구가 적힌 파란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티셔츠의 문구처럼 이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핵에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도 있고 해서 나는 핵에너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미국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자신이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 시설을 껴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이렇게 안전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른 한편에선 하리보 같은 곰 모양의 젤리 크기의 우라늄 1개만 있으면, 전기차를 2만 마일(약 3만2천km)이나 달리게 할 수 있다며, 유리병에 젤리가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라고 한다.

매년 기후변화협약 행사장에서 핵산업계 인사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의 행사 부스는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있을 때마다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더 밝고 젊어졌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홍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찾아가 질문을 던지면서 핵에너지가 기후위기의 대안임을 얘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35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년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이 점차 흐릿해지자, 핵산업계는 새로운 무기를 앞장세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핵산업계가 기후변화의 대안이 핵발전이라고 주장하며 26차 기후변화협상 당사국총회의장에 홍보 부스를 차렸다. ⓒ이헌석

홍준표 후보의 H2O 논란

한편 지난 10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4차 TV 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공약에 질문하면서 "러시아 가스, 원자력 얘기하셨는데, 수소를 뭘로 만들 겁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홍준표 후보가 "수소 H2O인가 그거 아니에요"라고 답하자 원희룡 후보는 "H2O는 물이죠. 수소를 뭘로 만들 거냐고요. 물로 만드실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홍준표 후보는 다음 토론에는 수소를 어떻게 만들지 알아보고 오겠다고 답하면서 질의가 끝났다.

많은 언론은 이날 토론에 대해 홍준표 후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헤프닝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진짜 헤프닝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언론이다. 핵발전에 긍정적이고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을 가진 홍준표 후보는 울산을 원자력과 수소에너지 중심의 도시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등 핵과 수소를 중심으로 에너지정책을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 수소차나 수소 연료전지에 공급되는 수소는 모두 화석연료를 이용한 것이다. 천연가스를 직접 개질(reforming)하거나 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소를 그레이 수소라고 부른다. 석탄을 직접 이용한 수소(블랙 수소)보다는 온실가스가 덜 나오지만, 온실가스가 나온다는 점에서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에서 얻은 전기를 갖고 물 전기분해를 해서 얻는 수소를 그린 수소라고 부른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핵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하는 핑크 수소도 있다. 기존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이용하거나 아예 수소 생산을 위해 핵발전소를 별도로 건설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물을 전기분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H2O(물)를 이용해서 수소를 만들겠다.'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답변하는 홍준표 후보 본인도 자신이 없어서 이를 강하게 물고 늘어진 원희룡 후보의 질문에 무너진 것뿐이다.

우리나라 제1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 간의 TV 토론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권이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정책에 대해 무지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상황이라는 용어만 접수했을 뿐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기후정의'에 적절할 것인지에 대한 잣대가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신기술은 국민과 정치권을 현혹시키고 있다.

너도나도 수소선도 도시 선언

인터넷상에 '수소산업 선도도시'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인천, 울산, 충남 등이 나온다. 이들 도시는 이미 수소산업 선도도시를 선언했고, 석유화학산업과 연계한 수소경제 비전과 육성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탄소중립시대, 석유화학산업이 새로운 활로로 수소산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기에 기존 석유화학산업과 무관한 강원도나 전북도의 경우에는 각각 '액화수소산업 선도도시', '수소융·복합 산업 거점' 같은 용어를 쓰면서 전국 방방곡곡이 수소 선도도시가 되는 의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소는 우주 전체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물에도 수소가 있고, 모든 유기물에 수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수소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즉 수소를 얻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수소를 '에너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전달자'라고 표현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는 배터리처럼 전기 에너지를 잠시 보관하는 매체라는 뜻이다.

따라서 수소산업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어디에서인가 많은 양의 에너지를 구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천연가스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일 수도 있고,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핵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할 수도 있다. 수소산업을 선도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 에너지원을 수소로 바꾸기 위한 산업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에너지원에 대한 고민 없이 '신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수소산업을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더구나 각종 개발 공약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 너도나도 '선도도시'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무분별한 대기업 지원과 개발사업을 생각하면 이 결과는 너무나 참담할 것이다. 석유화학산업이 중심이 된 수소경제에 재생에너지 중심의 '그린 수소'가 들어올 틈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기존 설비와 화석연료 사용을 더 지속하고 싶은 산업 특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신에너지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뒤섞은 '신·재생에너지'란 묘한 말이 사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말로만 친환경'으로 포장된 그동안의 오류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크기만 작은 핵발전소 SMR

이와 비슷한 시도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30년까지 SMR을 개발하여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는 올해 6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SMR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SMR은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와 모듈형 원자로를 합한 말이다. 발전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핵발전소의 규모와 상관없이 관리하는 인력이나 핵연료와 핵폐기물을 관리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대용량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해야 경제성이 좋아진다. 이에 따라 핵산업계는 더 큰 발전소 건설에 기술개발 역량을 쏟아왔다. 하지만 최근 재생에너지가 확대됨에 따라 전력산업은 소규모-분산형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규모가 작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가 많이 설치된 가운데 규모가 큰 핵발전소가 갑자기 가동을 중단할 경우, 전력 계통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성을 포기하더라도 작은 핵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탄소중립 시대, 재생에너지 시대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SMR은 크기가 작을 뿐 핵발전소라는 점이다. 즉 사용후핵연료가 나오고, 각종 방사성 폐기물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발전소 규모가 작아 그 양이 작을 뿐 전체 핵발전소로 따져보면 기존의 대용량 핵발전소와 차이점이 없다. 사고 여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규모가 작아서 중대 사고가 일어날 경우, 피해를 입는 면적이 줄어들 뿐 피해의 정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발전소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더 많은 곳에 핵발전소를 설치하지 않으면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1~6호기 설비용량이 약 6GW 정도이니, 이 정도의 SMR을 지으려면 300MW짜리 SMR 20기를 지어야 한다. 즉 전국 20군데에 핵발전소를 지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가능한 일일지 또 온실가스는 나오지 않더라도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 속에 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냥 기후위기 극복이 아니라 '기후정의'가 필요하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를 잘 활용하면 당연히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기존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Not Climate Change, System Change)'를 외치는 전세계 활동가들의 외침은 단순히 위기를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계기로 생각하자는 외침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면 그냥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위기를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만 고려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본질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그린워싱'만 추진할 경우 위기는 더 심화될 뿐이다.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기후위기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끊임없이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극복과정에서 실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지, 지역·세대·빈부 등 다양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그들이 새로운 주체로 설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이윤을 고려하는 산업계의 기후위기 대응, 특히 그동안 온실가스와 핵폐기물을 계속 생산한 석유화학업계와 핵산업계의 주장은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새 기술, 새로운 용어에 현혹되기보다 어떤 것이 기후정의 실현에 더 도움이 될 것인지를 따지는 것.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에게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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