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은 기자 | 2021-12-07 15:35:45 | 2021-12-08 09: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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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이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피해자를 해고한 것도 모자라, 복직 판결에도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지방노동위원회부터 중앙노동위원회, 이번 행정소송까지 '해고가 부당하다'는 세 번째 판단이지만 해당 기관에서는 여전히 복직 결정을 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 괴롭히기식 소송 남발'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칼럼 바로가기)
7일 <프레시안>의 취재를 종합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문광연)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정인영 씨 부당해고 판단 및 복직 결정 취소 행정소송에서 지난달 26일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는 지난달 26일 문광연이 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심판정취소 소송에서 "문광연과 정인영 씨와의 근로계약이 합의해지로 인해 종료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기계약직인 정 씨와의 근로관계 종료가 정당한 해고사유나 적법한 해고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다"면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재직 중 직장 내 성추행, 업무상 발생한 사고 등으로 정신적 괴로움을 겪고 있는 와중 갑작스럽게 진행된 해고는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중노위의 복직 판결과 같은 논리다.
앞서 지난달 3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재판장 박보미)은 성추행 및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문광연 전 책임연구원 조 모 씨에 대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의 실형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가해자 조 씨는 법정구속됐다.
조 씨는 지난 2017년 문광연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계약직 연구원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해오다 피해자 정인영 씨로부터 내부고발을 당했다. 문광연에서는 별다른 조처가 없었고 정 씨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안 조 씨는 정 씨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가했다. 정 씨 이전까지 내부 성고충처리위원회에 신고한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는 퇴사자까지 총 3명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들의 고용을 좌우하는 업무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일반적인 추행 사건에 비해 죄질이 좋지 않고 조 씨의 지위, 피해자들과의 관계, 범행내용, 반복성,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의 정도 등을 모두 고려할 때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단했다. 이어 "문광연의 미진한 초기 대처로 인해 피해자들이 적절한 구제조치를 받지 못하고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연대해온 류민희 플랫폼C 활동가는 "문체부 산하 국가기관인 문광연이 이 명백한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아 노동위원회 결정들을 불복하고 진행한 행정소송"이라며 "이번 행정소송은 세 번째 부당해고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노위 판결 바로 다음날인 지난해 11월18일, 문광연은 사과가 아니라 위로금을 받고 복직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게 보냈다"면서 "문광연은 지금이라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서둘러 복직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 활동가는 "문광연이 피해자 보호조치도 없이, 사건 해결을 위한 공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점도 큰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뒤늦게 언론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문광연은 진상조사와 함께 징계절차를 거쳐 가해자를 파면했다"며 "공공기관으로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부당해고한 문광연에도 분명 책임이 있다. 이 사건은 특히 공공기관 내 성폭력 예방과 해결을 위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아래 피해자와의 전화 인터뷰
프레시안 : 사내 성추행을 신고하고 거의 2년 반만의 결과다. 어떻게 지켜봤나.
정인영 : 예상했던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끝없이 시간만 막연히 흘러 마음고생 했는데 결론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 예상은 했지만 기다리던 그 심정이 힘들었다.
그동안 정말 힘들게 지냈다. 2017년 공익제보 후에 수년간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20년 해고되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해고 직후엔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나가지도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나마 좀 추스르고 나서 이번 소송결과까지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저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프레시안 : 문광연에서는 여전히 복직을 반대하고 있다.
정인영 : 그렇다.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면서까지 내 복직을 미루는 상태다. 이미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복직 명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문광연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도 부당해고 인정 판결을 받았다.
프레시안 :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했나.
정인영 : 일단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했고 이후에는 대출받아서 생활했다.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다.
프레시안 : 어느 정도 어려움을 예상했을 것 같다. 그래도 소송까지 결심한 이유가 있나.
정인영 : 처음엔 문광연의 잘못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제가 퇴직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 회사를 나오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계약해지였지만 저는 무기계약직이었다. 2017년에 있었던 위력에 의한 성추행사건이었다. 저 역시 그 건이 해고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공공기관이 이런 위력에 의한 성추행사건을 묻고 되레 피해자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덮고 조직을 지키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그때 당시에는 갈때까지 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문광연은 지금도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판결문에도 나왔듯, 문광연의 부적절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
프레시안 : 이전의 다른 피해자들이 더 있었다.
정인영 : 다른 피해자인 옛 동료에게 제 사건을 얘기했다. 저는 한달 단위 계약에서 무기계약으로 전환됐지만 이전의 피해 동료들은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으로 계약을 갱신해왔다.
그들도 피해사실을 내부 성고충위원회에 알린 후엔 계약만료 형태로 나왔다. 나라도 끝까지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프레시안 : 성추행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건가.
정인영 : 회사에서 굳이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런데 내부에 성고충상담위원이 있다. 그에게 제가 그런 피해 사실이 있다고 알리고서 그가 피해자 한명한명 불러서 이야기 들었다. 그런데도 아무 조처가 없었다. 그리고 계약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다른 피해자는 신고 후에 계약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했다. 저도 그랬지만, 가해자와 분리조치 전혀 없고 아무 조치가 없어 피해자가 결국 더이상 계약하지 않겠다 말하게 만들기도 했다.
프레시안 : 내부고발 후에 문광연에서 어떻게 대처했나.
정인영 : 제가 처음 신고했을 땐 아무 조처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마시켰다. 답변도 없었다. 사건을 명확하게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계속 가해자와 해고 직전까지 한 공간에서 같이 일했다. 내부에 처음 신고한게 2017년 9월이고 2020년 2월 말에 해고됐으니 거의 2년 반을 그렇게 지낸 셈이다.
프레시안 : 사건 무마나, 먼저 퇴사하라는 식의 압박을 가하진 않았나.
정인영 : 굳이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괴롭힘은 있었다. 우선 다른 피해자들은 계약기간이 종료되면서 나가는 형태로 해고했지만 저는 때마침 무기계약직 시험에 합격했다. 무기계약직은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계약이 계속 지속되는 형태다.
그런데 저는 가해자와 일하면서 상사인 가해자로부터 업무에서 배제됐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임에도 업무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거나, 그 사업 관련해서 한 500명 정도 있는 단톡방에 초대되지 않는 식이었다. 제가 담당자인 일인데 제가 내용을 몰랐다. 현장탐방 같은 일에도 저만 제외하는 식의 배제가 있었다. 사고 후에는 더 노골적이었다.
프레시안 : 어떤 사고였나.
정인영 : 2019년에 충남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언론보도도 이루어졌었다. 문광연 등 4개 기관이 함께 주최한 행사였는데, 난방을 위해 사용한 등유 난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저까지 포함해 40명 넘는 사람이 피부와 각막이 벗겨지는 피해를 입었다. 저도 눈을 다쳐 컴퓨터 화면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피해 처리 과정을 모두 맡았다. 대체인력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오히려 제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했다.
심지어 사고 관련 처리를 하면서도 제가 과거에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이력이 적힌 파일을, 제가 담당한 사업 관계자 수십 명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유포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저도 모르게 문체부를 통해 제가 맡은 사업을 취소했다. 그런 방식으로 해고됐다. 문체부에서 제 해고를 승인한 셈이다. 문광연은 문체부 산하의 유일한 연구기관이고 문체부 안에 문광연 운영 관련 부서가 따로 있다. 제가 해고되는 모든 과정이 문체부 승인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게 압박인 것 같다. 다른 구성원들은 어땠나.
정인영 : 다른 구성원들이 나서서 저를 괴롭힌 건 아니다. 가해자가 유독 저를 괴롭혔다. 다른 동료들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가해자가 책임연구원이고, 상사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인사권을 가진 상사가 특정인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따돌린다면 조직엔 그런 분위기가 퍼진다. 다른 동료들이 아니라, 그 책임자가 사건을 방임한 것이라 생각한다.
해고 이후에도, 제가 내부에서 가해자와의 사건을 얘기했던 사람들 한사람한사람에게 "자기는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다"는 식의 진술서 같은 걸 법원에 내게 했다. 회사는 고용을 책임지고 있고 다른 직원들이 보기에도 저같은 무기계약직도 해고하는데 순순히 자기가 들은 걸 그대로 얘기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가해자와 회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그런 점이 어려웠다.
프레시안 : 가해자가 어떤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나.
정인영 : 예를 들면. 제가 사고를 당한 날이었다. 그날 사고가 나서 119에 실려 간 사람도 있었다. 저는 행사 담당자였기 때문에 피해자임에도 다른 피해자가 모두 병원에 간 다음에 현장을 수습하고 마지막으로 갔다.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이라, 주최 측에서 셔틀버스 세 대를 마련해줬다. 마지막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가해자가 저에게 전화로 고함을 질렀다. 쓰레기 정리가 안 됐다면서 와서 정리하고 가라는 것이다. 저는 눈도 다쳐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그 차를 안 타면 병원도, 집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고함을 치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평소같으면 시키는 대로 돌아갔을 텐데 그땐 도저히 갈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가는 길에도 사고 피해자 40여 명의 상태를 계속 연락받고 항의를 받고 있었다. 결국 한계라 생각해서 연구원의 다른 상사에게, 제가 예전에 내부고발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가해자가 이렇게 윽박지르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니, 그가 '그러니까 나에게 가해자에게 전화를 하란 거냐, 알아서 못 하겠다는 거냐'라며 전화를 끊었다.
사고 피해자 관련 처리까지 제가 해야 했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컴퓨터도 제대로 못 보는 상태에서 무리하다가 주말엔 응급실에 갔다. 그런데도 가해자나 다른 책임 박사 누구도 아무 말 없었다. 한달정도 그렇게 지내며 업무 처리하다가 12월 말에 휴가를 냈는데 첫날 바로 복귀하라는 연락이 왔다. 계속 업무지시가 오고 파일들이 왔다. 결국 복귀했다. 그날 또 응급실에 갔다.
프레시안 : 가해자가 법정구속됐다. 가해자와 문광연에서 사과나 다른 이야기는 없었나.
정인영 : 가해자는 법정구속되면서도 사과 전혀 없었다. 합의 의사도 없다고 했다. 계속 그런 가해를 한 사실 없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제가 회사를 나오면서 없는 피해 사실을 만들어서 소송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앞으로도 그 주장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문광연도 마찬가지다. 복직도 안 된다고 한다. 저는 복직만 된다면 다 괜찮다고 했는데 문광연은 되레 중노위 재심할 때 저의 성격을 얘기하면서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문광연 내부에서도 조사를 했다는데 저는 그 자료를 볼 수도 없었다. 그 조사조차도 언론에 보도가 나간 후에 어쩔 수 없이 한 조사였다.
문광연에서는 지금까지 계속 사건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제가 2017년 내부고발했음에도 자기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는 식이다.
저는 처음 소송을 결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공공기관이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생각한다. 또 언론보도 후에 문광연에서 자체조사했을 때 내부에서 성희롱이 있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이 있었다. 제가 연구원을 나온 후였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조처했다면 이랬겠나 싶다.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 사건을 명확하게 결론짓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피해자를 내모는 방식이 계속되는 걸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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