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 여기에서 출발하라

[정욱식 칼럼] 대만 해협의 미래와 한반도의 운명 (하)

관계 회복과 개선의 동기는 다양하다. 지금까지 남북관계 발전의 동기와 목표는 '최선의 시나리오'에 맞춰져 왔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실현, 남북한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유라시아의 대륙으로의 진출, 교류협력의 확대와 평화적 통일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들 동기와 목표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이제 남북관계 회복과 개선의 동기를 다른 곳에서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미중 충돌에 남북한이 연루되어 공멸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이러한 위험 인식을 공유할 수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남북한 당국은 연루의 위험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을까? 기실 미중 충돌에 한국이 연루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과거보다 한국의 연루 위험은 더 커지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명시된 것이 대표적이다. 차기 정부에서 이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아직까진 '바다 건너 불'로 간주되는 분위기이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이 대만 문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상)편에서 다룬 것처럼, 10월 23일 박명호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우리는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조선반도 정세와의 연관 속에 각성을 가지고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도 주목할 만한 입장을 내놨었다. 그는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국제관계구도가 '신냉전'으로 변화"된 것이 "주요 특징"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을 강조했다.

또 10월 11일에는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등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며, "조선반도 지역에 굳건한 평화가 깃들도록 도모하기 위함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과도한 종속과 의존에 대한 경계심도 가져왔다. 하지만 한미일을 향한 '북한식 남방 외교'가 허망하게 끝났다고 판단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의 주권과 영토완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 움직임을 비난해왔다.

그러나 한미동맹 강화가 그러하듯이 북중관계 강화 역시 미중 충돌 발생시 북한도 연루될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 대만 해협에서 미중이 충돌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여기에 개입하면 북한으로서도 국가의 존망을 건 선택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대만 문제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남북관계 회복 의사를 밝힌 데에도 이러한 우려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이견과 갈등이 있지만,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는 최소한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또 2018년에 재개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9.19 군사 합의 등을 통해 우발적 충돌 및 전쟁 방지를 위해 커다란 진전을 이뤄낸 것도 사실이다. 북미간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

▲ 지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한반도 밖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 그리고 한반도 밖, 특히 대만 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한반도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끔직한 우려를 기우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모두 각성해야 한다. 자신의 정책과 전략이 전쟁 억제보다는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공멸의 두려움이 근거 있는 우려라면 그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양안간의 무력 충돌과 미국의 개입에 의한 확전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바이다. 동시에 서로가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불신을 키우면서 군비증강과 군사 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불신과 군비경쟁이 부정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전쟁의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또 전쟁이 터지면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 중국, 대만 등 핵심적인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공히 공유하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도 대만 문제를 '바다 건너 불'로 여길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사시 '도와달라'는 미국과 '끼어들지 말라'는 중국을 향해 분쟁 방지와 위기관리 대책부터 마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중국과 대만에게 평화협정 논의도 주문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주권적 통제 방안도 공론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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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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