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10월 31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주목할 만한 보도를 내놨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CICIR)는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형태로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는데, 중국으로서는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와중에 지정학적 이유로 한미동맹의 변화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국이자 약 2만 8000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또 경북 성주에서는 잠재적으로 중국 동북부의 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사드가 배치되어 있고, 제주해군기지도 유사시에 미 해군의 기항지로 이용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CICIR 보고서는 중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간에 충돌 발생시 주한미군이 동원되는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주한미군을 동원하려는 미국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보고서는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에 따라 한국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을 두고도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끌어들이고 중국을 봉쇄하는 데에 동맹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과 한국에게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며, 한미동맹에 대응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중국과 관련된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한미 양국에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에서 이러한 보고서를 낸 것은 그만큼 중국이 한미동맹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시에 대만 해협 등에서 미중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이 휘말릴 위험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최근 북한이 대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 23일에 나온 박명호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대표적이다.
박 부상은 "대만 정세는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무분별한 간섭은 조선반도의 위태로운 정세 긴장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조선 주둔 미군 병력과 군사기지들이 대중국 압박에 이용되고 있으며 대만 주변에 집결되고 있는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방대한 무력이 어느 때든지 우리를 겨냥한 군사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부상은 "우리는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조선반도 정세와의 연관 속에 각성을 가지고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사태 발생시 그 불똥이 한반도로 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실 대만 해협에서 미중간에 무력 충돌 위기가 고조되거나 실제로 발생시 한국의 연루 위험과 한반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제기되어왔다. 당시 미국은 대만 해협에서 사태 발생시 주한미군도 투입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했었다.
그 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표현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미국은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도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대만 해협 문제를 '바다 건너 불'로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강하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대만 해협에서 미중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충돌이 발생하면 그 때 가서 판단하면 될 것이다', '군사력을 강화하면 동맹국에 군사적 지원을 해줘도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등은 모두 희망 사항에 해당된다.
오히려 현실은 대만 해협의 위기는 높아지고 있고, 미중 사이의 안정적인 억제 관계는 흔들리고 있으며, 남북한이 미중 충돌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에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와 한미·북중 동맹의 강화가 맞물리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남북한 사이에도 군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우리 국민들의 중국 및 북한에 대한 반감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있고 북중 동맹에는 '자동 개입' 조항이 있다. 남북한이 동맹의 체인에 엮여 몽유병자처럼 전쟁에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전쟁이 미국과 중국에게는 '제한전'이 될 수 있지만, 한반도로 불똥이 튀면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전으로 비화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행운을 빕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그러나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다가오는 미래가 엄중하다. 미중 유사시 한국이 연루될 수도 있는 문제, 더 나아가 한반도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문제를 운에 맡겨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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