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사용자 처벌" 외친 비정규직에 징역 5년6월 구형한 검찰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 정당한 목소리, 범죄로 취급 말라

지난 10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9호 법정에서 재판이 있었다. 17명이 법정에 섰다.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자동차판매 대리점 등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날 검사구형이 있었다. 검사는 17명에게 총 '징역 22년 6개월'을 구형했다. 기아차 화성 공장 비정규직 김수억은 '징역 5년 6개월'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중죄를 지었기에 검사는 '징역 22년 6개월'이나 구형했을까. 처음에 구형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7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11명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항의농성을 진행했다. 11명은 고용노동부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요구하며 노동청 농성에 들어갔다. 이 사건이 공동주거침입이고 특수건조물침입미수가 되었다. 그 과정에 항의서한 전달을 막는 경찰과 실랑이가 있었다. 경찰은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쳤다는 경찰관은 다음날 바로 집회 현장에서 멀쩡하게 근무를 섰다. 병원은 다니지 않았고, 약물복용도 하지 않았다. 경찰관은 이후 두 달간 단 하루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 되었다.

2018년 10월 현대기아차,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비정규직 6명은 대검찰청 로비에 들어갔다. 불법파견 범죄자 처벌하라는 요구였다. 검찰에서 어떤 답도 듣지 못하고 6명은 모두 끌려나왔다. 이 사건이 공동주거침입이 되었다. 2019년 1월 기아차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6명은 청와대 100미터 이내에서 작은 손자보를 펼치고 "불법파견 사용자처벌", "비정규직 이제그만"을 외쳤다. 이 사건이 집시법 위반이 되었다.

이런 사건들을 모아서 검찰은 징역 22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투쟁을 대표한 인물로 김수억을 콕 찍어 표적으로 삼았다.

2013년 한국지엠 릭 라일리 사장은 불법파견으로 벌금 700만 원을 받았다. 아사히글라스 일본 사장은 불법파견으로 검찰구형 징역 6개월을 받았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불법파견에 대해 10여 년간 기소조차 당하지 않았다. 검찰은 근래에 현대기아차를 기소했다. 노동자 누군가는 죽고, 수십 명이 구속돼야 불법을 자행하는 사용자 한 명 구속시킨다는 얘기가 딱 맞는 말이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 농성에 들어갔지만 고용노동부는 끝내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2019년 8월 김수억은 다시 47일간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단식으로 몸무게가 20kg 넘게 빠지면서 호흡곤란으로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불법파견에 대하여 제대로 처벌했다면 노동청 농성이나 단식농성은 없었다. 행정기관의 고의적인 직권남용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 2019년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에서 만난 현대차 화성 공장 비정규직 김수억 씨. 그는 당시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시정 명령을 요구하며 단식 중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검찰의 잣대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해결해주지 못하면서 도리어 두드려 패는데 팔을 걷어붙이는 게 검찰인가? 공공연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대기업은 처벌하지 못하면서 억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중 처벌한다. 검찰이 노동자를 처벌하듯 똑같은 잣대로 사용자를 처벌했다면 불법파견은 벌써 사라졌다. 오죽하면 비정규직들이 모여 검찰을 상대로 싸우겠는가.

검찰의 구형을 보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징역 5년 6개월'의 검찰구형은 노동자 모두를 겁주고 협박하는 것이다. 검찰의 칼날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수십 번의 불법파견 법원판결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는 사용자들에게 향해야 한다. 재판부에 바란다. 검찰과 동일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범죄로 취급하지 마라.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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