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여전히 눈물을 타고 흐른다

[초록發光] 재생에너지는 도시에서 생산해야 한다

독일의 선거는 9월에 끝이 났으나 아직 새 정부는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의원내각제 독일에서 집권당이 되려먼 총선에서 과반의 의석을 확보해야 하지만, 다당 구도인 정치지형에서 하나의 정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각 당별로 득표한 의석수를 갖고 과반을 만들어서 내각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데 가장 많은 의석수를 확보한 사회민주당이 녹색당, 자유민주당과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대표적 공약이었던 사회민주당의 최저임금 12유로, 녹색당의 2030년 탈석탄, 자유민주당의 감세 공약 등이 조율된 협상 가안을 시작으로 3당은 본격 협상에 돌입했다. 각 정당의 상징색이 신호등 색의 조합과 같아서 (사회민주당-빨강, 녹색당-초록, 자유민주당-노랑) 신호등 연정에 합의를 이룰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녹색당의 연정 참여가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책임감과 탈석탄에 대한 속도감에 대한 기대는 고조된 것이 사실이다.

1980년 기성정치에 반대하며 반정당의 정당이란 기치로 등장한 녹색당. 초기에 그들이 내세웠던 녹색정치의 여러 가치들은 이후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집권당 경험(1998-2005)에서 퇴색되고 배반되는 행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비폭력 반전 평화가 주 슬로건 중 하나였던 녹색당이었으나 독일 군의 코소보 파병에 동의하면서 많은 당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었고, 반핵운동 단체들의 핵폐기물 운송 반대 시위를 막는 행정권 발동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집권당으로서 녹색당의 실용노선은 많은 내홍을 겪었지만 독일 환경 정책의 유의미한 부분은 녹색당에 힘입은 바 크다. 

물론 이는 지지자들, 때로는 보다 더 도전적이고 진보적인 시민과 단체들의 요구와 뒷심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탈핵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다. 내년이면 독일의 얼마 남지 않은 핵발전소가 모두 운전을 멈추고 문을 닫게 된다. 탈원전 뿐만 아니라 속도감 있는 탈석탄을 촉구해 온 녹색당. 그들의 연정 참여는 석탄발전 비중이 커서 유럽 내에서 기후위기의 주범국이라 비판받아 온 독일의 에너지정책에 진일보한 변화를 이끌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녹색당은 독일의 탈석탄 시점을 2038년이 아니라 2030년으로 앞당겨야 하며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공약해왔다. 연방을 이루는 각 주들이 토지의 2%를 풍력발전에 할당하도록 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풍력발전에 주민들의 참여를 조기에 보장하는 것, 그리고 풍력이 가능한 지역과 생물종 보전을 위해 배제되어야 하는 지역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적용이 필요하며, 이런 접근이 주거지와의 일괄적인 이격거리를 규정으로 두는 방식보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리라고 녹색당은 판단한다. 주목할 부분은 풍력발전 확대를 위해 매년 6기가와트(GW)의 풍력발전 증설이 필요한데, 이를 각 주별로 형평하게 개발하도록 하겠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분산전원 개발의 중요성과 의무를 간과하지 않고 있다고나 할까? 지난 15일 발표된 연정 가안에는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를 가로막는 여러 제약 요소들을 제거하고, 계획 및 허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며, 분산형 전원을 구축하고, 태양광을 위해 적절한 모든 지붕을 활용, 각 주별로 토지의 2%는 풍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2030년 탈석탄은 가능할 수 있다 정도로만 명기되었다.

재생에너지 설비는 확대되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수요를 줄이고, 탈 성장을 전제한다고 해도 현 전력 수요의 3%에 불과한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높이기 위해 설비는 확대되어야 한다. 전력뿐이 아니라 난방과 수송 등 에너지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면 대대적인 에너지 개발 사업은 불가피하다. 석탄과 핵발전을 빠르게 끄려면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확산, 대체되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그 빠름을 구현해 내느냐이다.

여태까지 태양광과 풍력이 산지를 중심으로 개발되어 왔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경제성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저렴하거나 바람이 좋아 발전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 중심으로 입지를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생태보전, 생물종다양성 확보와 상충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산지 규제가 강화되면서 농지 규제가 완화되자 재생에너지는 농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영농형태양광을 넘어서 대규모 태양광을 위해 농사가 잘 되던 농지가 염해농지로 바뀌기도 했다. 산지와 농지가 몸살과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작 변하지 않는 곳은 도시, 산업단지, 주 전력수요지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전력수요지인 도시와 산업단지에 재생에너지 설비가 구축되는 일이 없다면 농촌에서 그것을 책임져야 할 이유를 찾기도 설득하기도 어렵다. 기후위기를 자초한 곳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 산업단지이다. 원인자이자 책임을 져야 할 도시와 산단의 지붕이 텅 비어있는 가운데 절반은 임차인에 의해 경작되는 농지가 에너지와의 경합을 벌이게 되는데, 절대농지에 영농형태양광은 햇빛농사도 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무책임하고 관행적이기까지 하다.

주민수용성 향상을 위한 방안과 대책에 고심이지만 누가 수용성의 주민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에너지전환 방식, 재생에너지 사업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발전설비 수용성의 대상으로서 주민은 농산어촌의 주민이라기보다 수요지 도시민이어야 하나, 사업이 벌어지는 구체적인 공간은 도시에서 떨어진 농촌이라는 외곽, 수용성의 대상도 농촌 주민이다. 그렇게 외곽에서 생산된 전력이 송전선을 타고 수요지로 흘러가야 하는 형국이 재현된다면 과연 에너지전환의 명분은 무엇일까?

석탄발전과 핵발전을 제외하면 17개 광역시도 에너지자립과 분산전원, 재생에너지 비중이 턱없이 낮은 가운데 기초지자체 중 대부분 자치구(도시)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도 되지 않는 현실. 목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면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은 재수립되어야 한다. 에너지 자립 광역시도, 시군구, 분산형 전원 시스템을 전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송전은 결국 핵발전과 석탄발전이 흘려보냈던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에 다름 아니며 도시민들에게 전기는 그저 벽에서 나오는 값싼 요금의 지불 대상에 그칠 일 뿐, 기후위기의 책임을 깨닫고 나눠지는 일에서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라 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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