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이 법을 기다리던 800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죽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또 한 명의 20대 청년이 죽었다. 지난달 27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A(29)씨가 건물 유리창 청소를 진행하던 중, 앉아서 작업을 하던 '달비계(작업용 줄에 매달린 간이의자)'의 밧줄이 끊어지면서 4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내막을 살펴보니 건물 외벽 등 고층에서 작업을 할 경우 달비계와 별도로 구명용 보조 밧줄을 착용해야 하는데, 이 보조 밧줄이 미지급된 채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사흘 전, 해당 아파트 관리소로부터 유리창 청소 작업 신고를 접수 받은 안전보건공단 인천광역본부가 현장 안전 점검을 시행했고, 청소 작업을 담당하는 업체가 노동자들의 보조 밧줄을 갖추지 않아 이에 대해 시정을 지시했던 사실까지 밝혀졌다. 사건 당일, 청소업체는 노동자들의 보조 밧줄을 갖추라는 본부의 시정 요구를 무시하고 그대로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예견된 죽음

한 마디로 그의 죽음은, '예견된 죽음'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책임은 업체에 있다. 명백하게 안전 관리 의무를 방기했고, 안전보건공단의 시정 조치를 불이행했다. 둘째, 시정 조치를 내렸던 주체가 고용노동부가 아닌 안전보건공단이다. 적발된 사업장에 대해 위험 요인이 사라질 때까지 점검 감독 행정 및 사법 조치를 실시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와는 달리 안전보건공단은 행정적 권한이 없어, 공단이 내린 시정 조치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외벽 작업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된 조항 또한 완벽하지 않다. 산업안전보건 규칙 제63조 10항은 노동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달비계에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어 구명줄 설치 의무 조항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리저리 따질 필요 없이,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그저 해당 청소업체가 본부의 시정 지시에 따라 보조 밧줄을 '정상적'으로 지급하여 착용하게 한 후 작업 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실상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또한 노동자들의 목숨 줄이 결국에는 사업주들의 안전 관리 의무 이행 여하에 달려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기업들의 안전 관리 책임을 명시하고, 재해 발생 시 사용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생명'을 담보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

필자도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면서 생활비가 모자라 한동안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을 나간 적이 있었다. 평생 사무실에서 일해 본 경험밖에 없었던 터라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출근한 건설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했고, 일은 하루하루가 고됐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안고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가끔씩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아찔한 순간 속에는 수많은 위험 상황들이 있었다. 이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하게 하루 일과를 마치기 위해 요구되는 '조심성'이나 '긴장감'과 같은 조언들의 수준을 아득히 상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규모가 작은 현장일수록 안전 불감증은 더욱 심각했다. 사전 안전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현장이 태반이다. 앞서 사망한 20대 청년의 사례처럼, 추락 방지용 난간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고층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구명용 안전벨트 지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현장도 있었다.

'생명을 담보로 일한다는 것'은 그러한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과 '부당함'의 반복이었다. 안전하고 쾌적한 근무 환경에서 충분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각자의 사연과 필요에 따라 향한 건설 현장에서는 아직도 거의 매일 한 명씩, 다양한 이유로 사망한다. 건설 현장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수많은 생업의 현장이 있다. 추락, 끼임, 깔림, 질식, 중독, 과로 등 직업성 질병과 사망의 원인도 현장과 업종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의 향방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공무원 처벌 규정 삭제, 경영책임자 처벌 수위 축소 등 입법에서부터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며 '반쪽짜리 법안'이 되었다. 인천 청년 노동자 A씨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 그보다도 더욱 후퇴한 수준의 시행령이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사회적 책임 앞에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과잉 처벌'과 '경영 부담'만을 주워섬기는 기업들의 비겁함은 차치하자. 이를 방치하고 동조해 온 정부와 국회는 과연 수많은 이들의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가?

중대재해처벌법, 논의의 지점은 아직도 답보 상태

지난달 2일, 여야 주요 대선 후보들은 각 캠프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 방향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는데, 후보들의 출신(여야)에 따라 뚜렷한 온도 차를 확인할 수 있다.

▲ 여야 대선주자 중대재해법 관련 입장.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법안이 과도하다며 경영진의 부담, 기업 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시행령 정비 및 입법 취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법안 입법 단계에서의 보완을 언급한 것은 이재명과 지난달 13일 경선 후보에서 사퇴한 정세균, 두 후보 정도였다.

한 명의 노동자로서, 이들의 논의 지점은 여전히 답답할 뿐이다.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소식이 매일 같이 전해지는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격차만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여당 후보들의 의견 또한 본격적인 선거 전 캠프의 입장과 의견을 조회한 것일 뿐이다. 애당초 현재처럼 최초 법안이 후퇴한 것도 여당이 180석을 가진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든 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취지에 맞게 더욱 보완되리라는 확실한 보장도, 근거도 없다.

기업의 신화 속에 '도구'가 되어버린 사람들

"이 법의 발효를 기다리는 지난 1년 동안에도 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생업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지켜보며 소회를 전했던 김훈 작가의 말처럼,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논의는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대립의 문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문제"다. 기업이 온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헛된 인식은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사회에 공고한 신화로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생명'이 생산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위에 노동자들의 죽음은 켜켜이 쌓여갔다.

생업의 현장에는 일하다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출근하는 이들이 있다. '경영상의 효율'만을 추구하고, 사소한 안전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노동 현장에서 중대 재해는 예방될 수 없다. 명확한 책임과 역할을 기업과 사용자에게 지울 수 있는 더욱 강력한 법과 시행령이 필요하다. 수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를 위해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목숨'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자영업을 하시다 코로나로 인해 얼마 전 가게를 닫았다는 사장님, 원래도 위험한 잠수사 일을 하시지만 일감이 뜸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나오던 아저씨, 아직 때 묻지 않은 얼굴로 방학 동안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던 대학생, 장가는 들었냐 내가 너 나이 때 애가 셋이었다며 힘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던 노년의 할아버지. 이들 모두에게는 제품번호가 아닌 각자의 이름과 인생이,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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