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막내 한국, 백신 공평 배분 선도 국가 될 수 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文대통령의 백신 공평 배분, 문제는 실천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의 개회 세션에 참석해 “우리는 포용과 상생의 마음을 지금 즉시 함께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평한 접근과 배분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G7 정상회의에서 코백스(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에 2억 불 공여를 약속했다. (한국은) 글로벌 백신 허브의 한 축으로서 백신 보급과 지원을 늘리는 노력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포용적 미래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은 코로나로 인해 지체되었지만 코로나는 역설적으로 그 목표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단지 위기 극복을 넘어서서 '보다 나은 회복과 재건'을 이루어야 한다. 서로 연결된 공동의 실천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분명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탈 백신 국가주의는 문 정부의 혁신적 포용국가와 맥이 같아

문재인 정부의 국정 비전 가운데 하나인 ‘포용적 복지 국가’ 내지 ‘혁신적 포용국가’와 맥이 맞닿아 있는 발언이었다. 탈 백신 국가주의, 즉 백신 박애주의는 포용과 상생에 잘 어울리는 지향이다. 선진국으로 막 도약한 국가로서, 또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로서 팬데믹에 대처하는 인간의 태도와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는 백신이 승패를 좌우할 가장 강력한 무기여서 그 확보를 놓고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한다. 우리의 이성은 백신 박애주의, 백신 형평성을 말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이성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나부터, 우리 국민부터가 먼저다.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우선주의가 우선한다. 흔히들 이를 백신 민족주의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실은 백신 국가주의하고 하는 것이 적확하다. 미국 민족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코로나 백신을 무상 공급하겠다고 발언했다가 야당 등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대다수 국민이 아직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지도 않았는데 북한에 백신을 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그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야 북한 등 다른 국가에 백신 지원 가능한 여건 눈앞에

하지만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추석 연휴가 지난 지금은 1차 접종자가 전체 국민의 70%를 넘어섰고 2차 접종완료율도 10월 말께는 70% 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에도 조만간 백신을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이 아니라 베트남에 코로나 백신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와 교역이 활발하고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에 먼저 1백만 회분 이상, 즉 50만 명 이상에게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10월 중 지원하겠다고 직접 밝혔다.

2020년 12월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선보였지만 탈 백신 국가주의를 기치로 내건 ‘코백스 퍼실리티’는 강대국과 선진국들 사이에서 별 호응을 얻지 못해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일부 후진국들이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대다수 자국민에게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조기 확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도 이러한 절망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국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 포용과 상생, 그리고 국제사회의 공평한 백신 접근과 배분 주장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강대국과 선진국 지도자들도 이에 반대하거나 딴말을 하기는 어렵다. 인류애와 세계는 하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나라 밖 일 잘 하려면 나라 안 일부터 먼저 잘해야

하지만 이런 주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지금까지 세계가 지향해야 할 이런 비전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힘 있고 잘 사는 나라들이 애쓰지 않았느냐는 점을 톺아보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내 코가 석자, 즉 자국민에게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이 때문에 자국민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일, 즉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보내는 일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 백신은 두 차례 접종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다. 백신 개발회사와 백신 전문가, 그리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앞 다퉈 코로나 고위험군을 포함해 전 국민에게 3차 접종, 즉 부스터샷을 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이 추가 접종을 하는 나라가 많을수록 많은 후진국들이 제때 2차 접종을 끝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선진국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이 추가접종을 자제하고 후진국에 여유가 있는 백신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쓰자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공평한 백신 접근과 배분과 관련해 세계에서 이루어져온 일들을 복기해보면 이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선진국 막내인 한국, 백신 공평 배분 선도 국가 될 수 있어

문제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선진국 선배들이 하지 않거나 소극적이었던 일에 선진국 막내인 대한민국이 적극 나서서 물꼬를 튼다면 이는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의 문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코로나 백신의 공평한 접근과 배분을 이끄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헛꿈이 아니다.

오는 10월 말까지 백신 접종 완료율을 전 국민의 70%로 끌어올리고 11월에는 이를 80% 수준으로 상향한다면 우리 사회는 모범적 ‘코로나 공존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대한민국은 지구촌 모든 나라에 백신이 공평하게 돌아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소리를 더 세게 낼 수 있다.

물론 어떻게 하면 힘 있고 잘 사는 나라들이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여기에 동참하게 만드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우리는 그 준비와 효과적 전략을 세우는데 집중하자. 그리하여 코로나 2주년을 맞는 오는 12월에는 공평한 백신 접근과 배분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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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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