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제보사주' 뒤엉킨 소용돌이 대선

[최창렬 칼럼] 사생결단 갈등 속 진실은 어디에?

그레고리 헨더슨이 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정치는 중앙권력을 향해서 모든 요소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로 묘사된다.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이성적 성찰과 민주적 절차·의회주의, 합리적 토론은 무력화된다. 헨더슨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1공화국과 2공화국의 몰락, 5·16 군사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과정 등 한국현대사를 소용돌이로 비유했지만 소용돌이 정치는 일관되게 현단계에서도 블랙홀의 정치로 치환되고 있다.

대선과 관련한 검찰 고발 사주 사건이 정치권의 블랙홀로 등장했다. 검찰 중 누군가가 고발장을 작성하고 어떠한 경로가 됐건 이 고발장이 국민의힘에 전달됐으며 당에서 이를 작년 8월 실제 최강욱 고발장에 반영한 것이라는 가설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이를 박지원 국정원장과 상의해서 '고발 사주'를 역이용하려 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고, 있을 수 없는 사건의 본질 물타기라는 게 여당과 박 원장의 주장이다.

사건의 핵심은 검찰의 고발 사주와 야당이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지만, 비록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공작'한 것은 아니라하더라도 이를 역이용하려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사건의 본질 못지않은 사건이다. 두 가지 사안을 여당과 야당은 선택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2일 <뉴스버스> 보도 이후 정치권은 사생결단으로 상대 후보와 당을 회생 불가능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무리한 추정, 과도한 해석, 성급한 결론을 동원하며 막장 드라마를 연출해가고 있다. 이성과 논리와 냉철한 법적 판단이 사라진 공간을 진영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그마와 위선, 거짓, 과장이 대체했다.

재작년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과 조국 수호를 명분으로 대치했던 극단적 진영 대결의 기시감이 그대로 재현되는 양상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와 대검찰청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의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고발 사주'의 대척에 '제보 사주'가 똬리를 틀었다. 현직 국정원장이 8월에도 두 번이나 제보자를 만난 것도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직 국정원장과 제보자의 만남과 제보자의 발언은 검찰이 야당에게 여권 인사의 고발을 부추겼다는 사건의 '본질'만을 강조하기에 곁가지 치고는 휘발성이 강하다. 본질과 곁가지가 혼재되고, 무수한 추측과 예단들이 낳고 있는 일대 혼전은 진실보다 진영과 권력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채택되고 기각되곤 한다. 허공으로 갈라지는 줏대 없는 언어들은 진실 규명을 방해할 뿐이다.

진영 이해에 부합하는 발언으로 진영과 대선 캠프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치군상들의 말의 향연은 진실을 호도하고 어두운 구석을 감추기에 바쁘다. 비상식과 억지가 논리와 객관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투전판이 대선 쟁점과 합리적 토론을 가리고 있다. 대선에 어떠한 파급력을 미칠지, 어느 진영과 후보에게 더 유리하고 불리할지 예단키 어렵지만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인은 사안의 본질과 진실보다는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 사건의 개요를 몰아가고 있다.

두 진영 모두 공동선에 복무하는 태도를 유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객관적 진상 규명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정당들은 발언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도 권력을 의식하는 세기말적 구태를 버려야 한다.

보수 진보의 양대 진영에서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여당에서 이재명 지사가 앞서가지만 추석 이후 호남에서의 권리당원과 대의원, 일반당원과 국민의 표심의 향배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후보 사퇴가 여권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보수야당에서 윤석열, 홍준표 후보 중 누가 보수의 대표주자로 나설지도 미지수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박지원 국정원장의 선거 국면 소환 등이 다른 변수와 어떠한 함수관계를 맺어 가느냐에 따른 파급효과와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이 후보 간 유불리와 어떻게 결합하느냐도 국면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과도한 중앙으로의 권력 집중, 인사권을 갖는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 정권의 성격에 따라 지난 정권의 부조리에 대한 단죄의 향배가 결정되는 권력 시스템에서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정치'는 한국정치의 유효한 분석 틀이다. 그러나 정치구조의 개혁과 권력구조의 변화를 얘기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의혹을 둘러 싼 지루한 공방, 정치꾼들의 이해에 봉사하는 반정치가 지배적인 대선에서 차선은커녕 최악의 후보라도 걸러내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