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마초를 몰래 키우다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자주 보게 된다. 며칠 전에는 한 지상파방송사의 유명 오락 프로그램에서 그 ‘대마밭’과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
이렇듯 지금은 ‘대마’라고 불리며 마약의 대표 명사가 되었지만, 어릴 적 동네 앞 근처에 널린 게 그 삼밭이었다. 마중지봉(麻中之蓬),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곧게 자란다는 말이 있듯, 삼은 아주 곧게 자라난다. 2m도 넘게 크게 자라고, 더구나 아주 빽빽하고 촘촘하게 자라 삼밭은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숨는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한 삼은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항상 입던 삼베의 원료였다. 어릴 적 동네 할머니들께서 길쌈을 하고 삼베를 짜던 모습들은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다.
마당 넓은 집에 동네 할머니들이 함께 길쌈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삼이 2, 3m로 다 자라나면 그것을 잘라내 드럼통에 넣고 장작불을 때서 증기로 쪄낸다. 시꺼멓게 그을린 드럼통에 삼을 넣고 찌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쪄낸 삼의 껍질을 벗겨내 묶음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햇볕에 말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타레들은 마을 냇가 물에 담궈 놓았다 빨았다 하는 과정을 몇 차례 거친다.
그러고는 동네에서 마당이 넓은 집에 동네 아줌마와 할머니 몇 분이 함께 모여 길게 삼줄을 늘어놓고는 풀칠을 하면서 정리 작업을 했다. 내가 어린 나이였고 또 그 일을 직접 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삼줄을 일정한 굵기로 잇는 작업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대단히 고된 노동이었을 게다.
그 작업을 마친 뒤 드디어 그 삼베실을 집으로 들여가서 베틀로 삼을 짜는 마지막 작업을 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물레’도 출현하고 베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북’이라는 도구도 나온다. 큰어머님께서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시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우리 모두 이제껏 이 지구환경을 너무 파괴하며 살아왔다
불과 수십 년이 흘러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다. 풍요도 그냥 풍요가 아니라 너무 지나친 과잉의 풍요다. 사놓고도 입지 않는 옷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버려지는 옷 소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은 전 세계 선박과 항공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청바지 한 벌 만드는 데는 7000L의 물을 필요로 하며 3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의류산업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전체 산업용 폐수의 20%에 이른다. 이러한 환경파괴의 총화가 오늘 심각한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자연에 순응했고 자연 그 자체였던 그 유년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번 여름 퍽 무더웠지만, 나는 한 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살았다. 선풍기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론 더욱 심한 폭염이 올 것이 뻔하니 한번 최대한 견뎌보자는 심산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전력 생산은 이산화탄소 발생이 가장 많은 분야 중의 하나다. 집에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가 없다. 물론 공기청정기도 없다. 육식은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 어릴 적 정말 고기는 명절 때나 제사음식으로 구경할 정도였는데, 공장식 사육과 과잉 축산은 기후위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나는 운전 면허증이 없고 자동차는 물론 없다. 30분 거리 정도는 걸어 다니고 폭염과 혹한이 아니라면 한 시간 정도 걷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도 상당한 탄소를 발생시킨다. 나는 스마트폰도 없고 넷플릭스 같은 건 모르고 산다. 유튜브도 거의 보지 않는다. 양말과 속옷 같은 것은 기워 사용한다. 앞으로 옷은 사지 않을 작정이다. 물티슈를 비롯해 일회용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택배나 배달도 일체 없다. 그렇게 쓰레기 자체가 완전히 나오지 않도록 노력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하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모두가 예외 없이 이 지구환경을 지나치게 파괴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환경을 생각하고 자원을 아끼며 오염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의무다.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자연에는 아름다운 질서가 있으며, 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올바르고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삶을 모두 되돌려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터다. 그러나 기후위기, 아니 기후재난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그 정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러한 정신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 심각한 기후위기 극복도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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