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구멍난 아이, 간호사들의 비극을 아십니까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슬픔] 10년 동안 모두를 위한 싸움

그 사람을 지난 6월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를 안다는 시민단체 활동가, 법조인 등은 다들 비슷하게 말했다.

"그분 인터뷰 쉽지 않을 겁니다. 10년간 싸우다가 마음의 문을 닫았으니까요."

그 고생을 하고 왜? 더 만나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곧바로 연락도 못한 채 2주를 망설이다 겨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께서 언론사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략) 태아 산재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알린 선생님께서 다시 한 번 세상과 소통하신다면, 법안 개정에 힘이 실릴 수 있을 듯합니다. 재고를 꼭 부탁드립니다. "

몇 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려던 순간, 스마트폰에서 ‘띠링’ 소리가 울렸다. 문자를 보낸 지 꼬박 하루가 지난 때였다.

"제 얘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뭘 더 바라겠는가. 곧바로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태아 산재‘를 세상에 처음 알리고, 약 10년 소송 끝에 대법원 승소를 받아낸 사람. 제주의료원 간호사 출신 허자연 씨를 만나기 위해 7월 29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허 씨는 직장에 오후 반차를 내고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태아 산재 법안 개정까지 잘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한편으로는 나도 일상생활을 해야하는데 뉴스에 나오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양가의 감정이 들지만, 최초라는 그런 의무감 때문에 (인터뷰 자리에) 나왔어요."

허자연 씨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위해 10년간 싸웠다. 임신 중 업무상 재해로 아이가 아픈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엄마 허자연씨는 제주의료원 간호사였다. 2003년 23살 나이로 제주의료원에 입사했다. 허 씨의 첫 직장이었다. 그는 신경과 소속으로 치매 노인, 뇌출혈-뇌졸중 환자 등을 주로 돌봤다.

제주의료원은 공공병원 역할을 했다. 취약계층 진료, 만성 질환 관리 등 민간 병원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담당했다. 입원 환자의 절반 이상이 중증 고령 환자였다. 간호사 1명당 돌봐야하는 환자는 평균 50명~60명. 인력이 부족할 때는 간호사 한 명이 환자 100명까지 돌봤다.

약제를 가루로 만드는 작업도 허 씨 업무였다. 제주의료원에는 콧줄(튜브)로 영양물을 섭취하는 중증 환자가 많았다. 간호사들은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 환자 콧줄에 투입했다. 하루 세 번씩, 매회 알약 200정~300정을 빻았다.

허 씨는 둘째 최혁재(가명) 군을 임신한 2009년경에도 강도 높은 업무를 했다. 입원 환자 차트 정리, 환자 체온·맥박·혈압 측정, 콧줄·소변줄 확인 등이 모두 허 씨의 일이었다. 혼자 환자 100명을 담당했을 때, 여러 병실을 ‘ㄹ’자 동선으로 뛰어다녔다.

2010년 3월, 허 씨는 둘째 최 군을 낳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산부인과 의사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의심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허 씨를 대신 남편이 항공용 산소통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은 아이에게 선천적 ‘폐동맥판막폐쇄‘와 ‘심방중격결손‘을 진단했다. 쉽게 말해, 여닫이 역할을 하는 판막은 아예 막혔고, 막혀야 할 심방 벽에는 구멍이 뚫린 병이다. 심장이 고장난 채 태어난 아이는 산소가 부족했다.

▲ 제주의료원 간호사 출신 허자연 씨. ⓒ주용성

아이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막힌 판막을 뚫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아이는 2주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아빠는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면회 시간이 되면 아이를 보러 가는 일을 반복했다.

이 생활은 머지않아 엄마 허 씨에게 넘어갔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아이 곁을 허 씨가 지켰다. 당시 허 씨는 출산 후 회복 중이었다. 환자가 환자를 돌본 셈이다.

치료비도 상당했다. 출생 직후 응급 수술비로 약 600만 원이 들었다. 항공료, 숙박비 등을 뺀 금액이다. 아이 7살 때 심방 결손을 막는 수술에는 약 250만 원이 들었다. 출생 이후 약 6개월마다 받아온 정기 검진비로 약 20만 원씩 썼다.

놀랍게도 허 씨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제주의료원에서 근무 중 임신한 간호사는 총 15명. 이 중 허 씨를 포함한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다. 나머지 5명은 유산을 겪었다. 비장애 아동을 낳은 사람들이 절반도 안 됐다. 간호사들은 자연스럽게 업무 환경을 의심했다.

간호사들과 사측이 합의해 제3의 기관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2012년 2월경,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백도명)은 약 2년간의 역학 조사 끝에 결론을 냈다. 산학협력단은 아이의 선천성 질환과 엄마의 업무상 재해와의 연관성을 밝혀냈다. 이들은 간호사들이 직접 약제를 가루화한 작업에 주목했다.

"의약품 노출과 관련해 튜브(콧줄)를 통한 영양 공급을 받는 환자들을 위한 약물 분쇄과정에서 임산부에게 생식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의약품들에 (간호사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D등급 및 X등급 약품을 다룰 때는 매우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막자로 직접 약을 빻았다. 분쇄작업 중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주로 밀폐된 간호사실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분쇄된 약이 호흡기로 들어가기도 했다. 장갑이나 마스크 등 보호 장비는 사용하지 않았다. 허 씨는 약제 분쇄 업무를 임신 7개월까지 했다.

이들이 분쇄작업을 실시한 약품들 중에는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임산부에게 사용을 중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

허 씨는 2012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그는 "태아의 선천성 심장 질환이 엄마의 업무상 유해약물 노출에 의한 것이므로 업무상 질병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재해만을 의미한다"며 같은 해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다. 아이가 아픈 건 업무상 재해가 아니란 의미다.

허 씨는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약 10년 소송 끝에, 대법원은 허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2020년 4월 판결했다.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허 씨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산재보험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엔 임신 중 업무상 재해로 인한 태아의 선천적 질병을 보상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산재보험급여(요양급여, 휴업급여 등) 중 어떤 걸 지급해야하는지, 지급 기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 승소 판결 나왔으니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태아 산재’ 법이 없으니까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변호사님이 ‘여기까지만 해도 일정 정도 산재보험급여가 나오긴 하는데, 법안 개정까지 더 싸워보겠느냐‘고 물으셨어요. ‘나 혼자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니까‘ 법안 개정까지만 다시 해보자‘고 결심했죠."

허 씨는 모두를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허 씨와 같은 사례가 보험급여를 보상받기 위해선 산재법 개정이 필요하다. 21대 국회에선 태아 산재 관련 개정안이 총 5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송옥주, 박주민, 국민의힘 이영,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태아 산재’ 관련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발의된 개정안 모두 법안의 취지와 필요성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태아가 엄마의 직업 환경으로 인해 선천적 건강 손상을 입었다면 산재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발의된 개정안들이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어, 법안 통과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소급적용 문제도 허 씨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강은미 의원안을 제외하고, 다른 안들의 경우 ‘특정 시점 이후 출생한 자녀들‘에게만 법을 적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법 개정 이전에 아팠던 아이들은 산재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허 씨의 경우 태아 산재 필요성을 세상에 처음 알렸고, 건강손상 자녀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약 10년을 싸웠지만, 법이 개정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최혁재 군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닌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졌는지 확인하는 검진을 1년에 한 번씩 받는다. 그때마다 엄마 허 씨 마음은 불안하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판막이 없으니까 언젠가는 인공 판막 수술을 해줘야 해요. 성장기에 따라 변수가 있어서 정확히 언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정해지진 않았어요. 다행히 아이가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수술을 받아야 해요."

허자연 씨의 아들 최혁재(가명, 당시 7세) 군이 2016년께 심방 결손을 막는 수술을 받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아이 옆에는 허 씨가 사온 레고가 놓여있다. ⓒ허자연 씨 제공

아이는 최근까지도 청색증을 앓았다. 청색증은 산소 부족으로 인해 입술, 손가락 끝, 귀 등이 파랗게 변하는 증상을 말한다. 최 군은 겨울만 되면 입술과 손톱 등의 피부가 파랗게 변하곤 했다. 또 계단이나 오르막을 오를 때도 쉽게 숨이 찬다.

심장 질환만 아이를 괴롭게 하는 게 아니다. 면역력도 약하다. 환절기나 건조한 날엔 토할 정도로 기침을 한다. 피부도 약해 흉터, 멍이 쉽게 생기고 잘 사라지지 않는다.

허 씨는 2012년 제주의료원을 그만뒀다. 지금은 아이가 아프면 달려갈 수 있는 직장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경력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 동기들과 비교하면, 급여는 절반 수준이다.

허 씨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녀 돌봄 휴업급여‘일지 모른다. 장철민 더민주 의원은 자녀 간병을 위한 부모의 휴업급여를 보장하는 산재법 개정안을 새롭게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허 씨는 덤덤히 대답했다.

"'자녀 돌봄 휴업급여’가 현실적으로 저한테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한 5년 뒤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저희 아이는 이미 고등학생이에요. 이미 아이는 클 대로 크고 아플 대로 다 아팠는데, 뒤늦게 산재 보험급여를 받는다고 해서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없는 판막이 (아이에게)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사회 보장 대신 개인의 희생만 강요하는 국가에서 약 10년을 싸운 엄마. 허 씨는 지금도 큰 벽 앞에 서 있다.

대법원 승소 이후에도 보장받지 못한 산재보험급여, 산재법 개정안 통과에도 발목 잡는 소급적용 문제, 아픔을 견디며 자라는 아이까지….

허 씨는 이 긴 싸움을 여전히 혼자서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허 씨와 제주 용두암 근처 해변을 찾았다. 해안 바람이 그를 향해 불었다. 허 씨는 바다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이나, 동료 간호사들이나 주변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여기까지 온 거같아요.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일인데, 저보다 다른 분들이 더 노력하고 싸워주신 듯해요."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위해 10년을 싸운 허 씨는 공을 외부로 돌렸다. 어쩌면, 그는 이런 겸손한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은 강인한 엄마, 모두를 위한 싸움에 뛰어든 단단한 여성. 그 덕에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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