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2주 연장하기로 하면서 폭염 속에 사투를 벌이는 방역·의료 인력과 공무원들의 헌신과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지자체와 부처에서는 이들에게 휴식 시간과 공간을 적극 보장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임시방편으로 군인·경찰·공무원을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공공의료 인력을 확충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근본 대책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으로 공공의료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2018년 기준 전체의료기관의 5.7% (OECD 평균 53.6%)만이 공공의료기관이고, 공공병상은 전체 병상의 10%(OECD 평균 71.6%) 남짓이다. 이러한 공공의료자원의 절대적인 부족은 우리가 이미 경험해서 알듯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평상시 지역의 의료서비스공급과 건강 수준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현재 서울과 비교해서 기대수명이 10년 이상 짧은 지역이나, 입원사망비·뇌혈관질환 사망비 등의 사망비가 서울의 2배 이상인 지역도 많다. 이러한 치료 가능 사망률과 지역 건강 수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적정한 공공보건의료가 제공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그나마도 안정적인 의료인력 확보가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공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2021~2025)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대책이 없다. 지역의사제를 포함한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 단체와 논의해서 추진하고, 공중보건장학제도를 확대하며, 간호사의 경우는 예산 부처와 협의하여 2023년 간호대 정원부터 지역공공간호사제를 도입하고 2027년부터 매년 250여 명 내외의 지역간호사를 배출하겠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간호인력 확보 없이 국민 건강 수준 향상과 지역 건강 격차 해소는 불가능하다
간호사는 보건의료인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의료 최일선에서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잘 교육된 역량 있는 다수의 간호사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 보건의료 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필수적이다. 현재 의료기관과 지역보건 분야 모두에서 안정적으로 간호인력이 확보되지 않아 국민 건강 보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나의 예로, 현 정부의 주요공약사항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는 간호인력 부족문제로 정체되어있다. 이용환자의 환자만족도가 높고 욕창, 낙상, 감염, 재입원 확률이 의미 있게 낮아져서 국민적인 요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제도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간호인력 쏠림을 막기 위해 상급종합병원과 서울 소재 병원의 경우 기관당 4개 병동으로 운영을 제한하고 있지만, 지역의 경우는 간호인력을 확보하지 못하여 운영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은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전국의 간호대 입학 정원을 700명 증원하기로 했을 뿐이다. 교통 정체를 해결한다면서 병목이 되는 곳을 해결하지 않고 다른 도로를 확장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작년에 정부가 시민사회와의 논의가 부족한 채로 성급하게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계획은 의사들의 강력한 파업에 막혀 보류되었다. 하지만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종합 대책은 단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다.
지역공공간호사제도는 지금도 장기적으로도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지역의 의사 부족과 간호인력 부족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
의사와 간호사는 의료법상 권한과 책임이 다르고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이 다르다. 특히 지역의료기관의 의사와 간호사의 임금 수준은 대조적이다. 의사의 경우 지역으로 갈수록 임금이 높아지고 있으나 간호사의 경우 더욱 낮아진다. 지역 중소병원 간호사의 임금은 서울의 70~80% 수준에 불과하다. 지역의료기관은 부족한 의사를 채용하기 위해 수도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의사의 임금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간호사의 임금과 처우는 더욱 열악하게 되어 간호사들이 남아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역 의사 부족 문제는 임금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대한 대책이 더 중요할 수 있지만, 간호사들이 지역공공의료기관을 떠나는 이유와 해결책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돌보는 과중한 노동, 낮은 임금과 처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집중하여 어렵더라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간호사가 의료기관에 오래 재직하는 데에는 충분한 인력 확보, 임금 및 복지 정책 등 기관의 지원이 중요한 요인인 것은 이미 상당수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시급한 간호인력 문제와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지역공공간호사제도가 마치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발표하였다.
현재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발의한 지역공공간호사법안에는 지역공공간호사의 역할이나 처우 보장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 이 법안에서 말하는 지역공공간호사란 단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간호사가 된 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는 간호사를 지칭할 뿐이다. 법안에는 이들 간호사를 공공기능을 일부 담당할 지역 민간병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5년 이내에 이른바 '먹튀'를 한다면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협박 이외의 다른 내용은 사실상 없다(원금 상환과 높은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면 차라리 말이 된다). 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를 얼마간의 돈으로 유인하여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겠다는 것으로 간호사의 인권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법안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신뢰와 간호인력 확보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실효성 없는 법안이다. 얄팍한 돈의 논리를 근간으로 한지역공공간호사제도가 마치 해결방안인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손실과 국민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당장 1000명 이상의 규모로 신분과 처우가 보장되는 지역공공간호사를 육성하여 지역공공의료기관에서 훌륭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 또 모르겠다. 그럴 수 없다면 현재 지역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숙련된 인력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역 공공의료기관 간호사의 배치 수준을 정하고 임금과 처우에 대한 기준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표준임금제와 간호사 배치 수준(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가 시급히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와 달리 독립적으로 개원을 할 수 없고 의료기관에 고용되어야만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은 간호사에 대해 우월적 지위(독점적 수요자)를 가지게 된다. 이를 활용하여 의료기관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간호사의 임금이나 근무 조건을 가능한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그 결과로 동일 경력의 간호사가 같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의료기관의 종별과 병상 규모, 지역, 노동조합 유무 등에 따라 상당한 임금 격차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간호사의 임금 격차로 인해 중소병원, 특히 지역의 중소병원은 안정적 인력 확보가 어렵게 된다. 단적인 예로 200병상 미만의 병원간호사의 임금은 2000병상 이상 병원간호사 임금의 50% 수준이다. 또한 공공의료기관의 초임 연봉은 민간의료기관보다 낮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에는 이 두 가지 상황이 겹친다. 이러한 의료기관 조건에 따른 간호사의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전국적으로 간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수익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 개별 의료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영국, 호주, 독일 등은 간호사 표준임금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보건서비스(NHS)에 의해 의료가 제공되고 대부분이 공공병원으로 간호사의 경력, 전문성, 보직 등을 고려한 표준 임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어 일반 간호사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또한 의료취약지 간호사의 임금 수준이 대도시보다 높다. 호주는 주별로 독자적인 간호사 표준 임금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산별노조가 발달한 독일의 경우는 전국적으로 병원 경영자와 산별노조와의 협약에 의해 결정된 표준 임금을 바탕으로 하여 기관과 경력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며, 경력이나 지역에 따른 임금 차이는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역시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간호사 인건비에 해당되는 영역이다. 임금을 높이면서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돌보게 한다면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표준임금제와 연동하여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시행 중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배치기준을 활용하여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의료법시행규칙 제38조에는 의료기관 간호사의 정원을 제시하고 있지만 수 십 년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개선 노력으로 1999년부터 간호인력 수준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건강보험수가에 반영하는 간호관리료 차등제가 시행되었다. 상위등급의 의료기관은 일부 간호인력 확보 수준이 개선되기도 하였으나 의료법 기준에 미달하는 4등급 이하나 미신고 기관이 많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간 의료기관의 눈치를 보며 사실상 방치해왔다. 2020년에 와서야 복지부는 간호관리료 차등제 산정현황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대한 등급외 등급을 신설하여 미제출 기관의 입원료 감산을 10%로 강화하였다. 그 이후 상당수 의료기관이 신고를 하거나 간호인력을 충원하여 등급이 상향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는 법적 기준을 지키지 않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고, 정부가 정책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간호인력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역공공의료기관부터 표준임금제를 도입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배치 기준 및 간호 수가와 간호사의 임금 체계를 연동한다면 표준 임금 체계 도입이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저임금과 간호인력 부족이 심각한 지역 공공의료기관부터 우선적으로 표준 임금제와 배치 기준을 적용한다면 간호인력 확보와 간호서비스 개선에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0년 35개 지방의료원의 미충원 간호사 인력은 760명에 달한다. 지금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몇 년 뒤 몇 명의 간호대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몇 년간 의무 복무를 강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역에 필수 의료서비스의 공백이 없이 충분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많이 늦었다. 문제가 어렵다고 땜질 처방만 한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와 유관기관이 체계적으로 공조하여 1974년부터 간호인력수급계획과 수십 년에 걸친 보상 체계의 개편,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른 차등 보상 등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야간 근무 시간(월 72시간)의 준수, 근무당 최소 배치 간호사 수 설정,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 사항을 신고하게 하고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수십 년 만에 간호 정책과가 만들어진 것은 간호인력 문제가 단기적 처방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했다는 의미로 보이기에 긍정적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다수 병원들이 법적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방치하며 간호인력 운영과 처우 개선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그런 무책임한 행정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책임감을 갖고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국민의 한 사람이자 의료인으로서 간호사들이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갖고 헌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조건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숙련된 간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체계에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중요한 핵심 요소이다.
* 참고자료
- 전국 병원간호사의 임금구조와 임금수준 결정요인 분석-김진현 외, 2019
- 일반간호사의 임금격차 현황과 표준임금가이드라인 개발 –김진현 외, 2020
- 간호관리료 차등제 개정과 야간간호료 신설의 정책효과- 조성현 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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