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부족'과 '전문가 무시'는 코로나 방역의 적

[안종주의 안전사회] 코로나 4차 대유행 긴급점검(3)

정부가 접종할 백신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데도 무턱대고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약을 받겠다고 했다가 예약 중단 사태가 빚어져 대상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세부지침을 두고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공평하지 못한 조치를 내놓아 불공정, 비과학적 지침이란 혹독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방역 행정에 대한 전면 재점검과 함께 재정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단계별 세부지침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땜질식 처방과 수술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민과 자영업자, 택시업계 등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4차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정부 방역 정책의 구멍은 단순 실수나 미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 때문은 결코 아니다. 접종 백신 부족과 대유행 가능성, 새로운 거리두기 4단계 발령과 그에 따른 세부지침으로 인한 혼란 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굳이 전문가를 들먹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사안이었다.

생활방역위원회 제구실 하는지 면밀히 살피고 정보 투명 공개해야

이는 한마디로 방역 정책 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지침을 결정하는 생활방역위원회의 운영 과정과 구성원의 적절성 등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또 위원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지, 전문가, 특히 감염병 전문가들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는지, 아니면 위원회가 정부 또는 청와대가 미리 결정한 것을 두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지 등을 성찰적 관점에서 묻고 따져야 한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 추진단(단장 정은경)은 55~59세 백신 예약 첫날인 12일 “오늘 오전 0시부터 진행한 55∼59세 연령층에 대한 사전예약을 일시 중단했다”며 “55∼59세의 예약은 백신 수급에 따라 확보된 예약분에 대해 진행됨에 따라 이달 26∼31일 접종분 예약은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오는 17일까지 예정된 예약기간 중에 예약만 하면 접종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대다수 50대 후반 연령 대상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를 믿고 천천히 예약하려던 사람들은 졸지에 사실상 선착순 예약으로 끝나버리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분노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 되어버렸다.

50대 접종 예약 대란 사태 예견 못했다면 무능

예약 시작 첫날부터 예약자들이 벌떼처럼 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4차 대유행으로 불안감이 이미 극도에 달한 50대 후반대 수십만 명이 밤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대기했다가 ‘땡’하자마자 인터넷 접속을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은 보통사람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백신 수요와 공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면 정부는 다른 방식의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든가, 아니면 예약 및 접종 대상을 55~59세가 아니라 58~59세 등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일치할 수 있는 연령대로 한정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정부의 백신 확보 부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도 매를 일찌감치 맞는 것이 뒤늦게 엄청난 후폭풍에 계속 시달리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코로나 유행 이후 우리 사회는 마스크 대란을 겪은 바 있다. 대통령까지 대국민사과를 한 사안이었다. 주요 외신들도 마스크 몇 장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몇 시간씩, 새벽부터 수백 미터 길이의 긴 장사진을 친 우리 사회의 진풍경을 보도한 바 있다. 두고두고 부끄럽게 여겨야 할 코로나 풍경이었다. 이때 얻었던 교훈을 참으로 가슴 깊이 새겼다면 이번 50대 접종 예약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합리적·비과학적 방역 지침, 과거에도 여러 차례 문제 돼

코로나 4단계 방역 세부지침을 두고도 혼란과 불만과 분노가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상인과 택시업계 등 사이에서 팽배하고 시민들마저 불평을 늘어놓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수 차례 있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 논란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세부지침 결정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일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업종 간 불공정한 방역 지침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 때문에 헬스클럽 운영자들은 추운 한 겨울에 웃통을 벗고 국회 앞에서 시위성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 너무나 세세하게 규제하고 간섭하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힘없는 이들의 반발은 코로나 방역이란 큰 명분 때문에 큰 폭발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4차 대유행을 맞아서는 그때와는 사뭇 다른 조짐이 보이고 있다.

‘택시는 2명까지만 함께 탈 수 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회자나 주례는 친인척과 달리 식사를 할 수 없다.’는 등 정말 누가 보아도 이상한 방역 지침을 내놓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50명에서 몇 명이 더 늘어난다고 해서 감염이 확산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야말로 비과학적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웃픈’ 방역 지침이다. 차라리 친인척 참석을 45명으로 제한하고 주례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싶다.

방역 정책, 청와대 등 몇몇 극소수가 좌우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 코로나 전쟁을 비교적 모범적으로 잘 치러온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였기에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드러난 정부 방역의 민낯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활방역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정부와 청와대 몇몇 사람들이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약에 극소수가 깊이 관여해 이런 결정이 비민주적·비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물어야 한다.

또한 50대 백신 접종 예약 대란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의 모든 정책이 오롯이 백신 확보 실패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긴 후유증이 아닌가싶다. 7~8월의 백신 가뭄은 오래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고 특별한 은총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 한 기정사실이다.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누가 이를 두고 공격을 하든, 비판·비난을 하든 그것은 숙명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 화살을 피하려 하거나 화살을 맞는 횟수를 줄이려고 무리수를 두면 큰 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역 정책을 펴면 이번처럼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언제 단순한 지침을 내려야 할지, 언제 세세한 지침을 내려야 할지 잘 모르면 유사한 혼란이 앞으로도 되풀이할 것임에 분명하다. 준비 부족, 약점 드러내지 않기 위한 방역 행정, 전문가 무시는 코로나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