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북핵을 과대평가하는 집단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자랑해온 북한 정권이다. 그러나 핵이 북한에게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김정은 정권은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핵 보유를 통해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이고 이를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의 향상에 쓸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국가 핵무력 완성"을 향한 질주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를 유발하면서 북한 경제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경제난을 자인할 정도로 말이다.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뤄 담판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이 역시도 아직까지는 희망사항에 머물러 있다.
또 하나는 북핵을 "게임 체인저"로 규정하는 국내외 일부 보수세력이다. 이들은 "이제 북핵의 노예로 사느냐, 죽느냐는 양자택일만 남았다"는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다. 최근에도 국민의힘의 홍준표 의원은 "이제 북핵은 마지막 단계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까지 갔다"며 "우리는 곧 북핵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북핵 노예론'을 듣노라면,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의 협상대표인 레득토가 미국 대표인 헨리 키신저에게 한 말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파리 평화협상 직전까지 미국은 엄청난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면서 북베트남이 양보하지 않으면 핵 공격을 가하겠다고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었다. 이를 두고 레득토는 "우리는 가끔 당신들이 우리에게 핵폭탄을 떨어뜨릴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며, "간명한 진리는 우리는 결코 항복해 노예로 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노예론'은 북한이 미국 본토에 핵 공격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는 적화통일을 추구할 것이라는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나 샌프란시스코의 희생을 감수하겠느냐"며 마치 대한민국의 종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 과도한 피해망상은 우리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안보 공약을 의심하지만, 이는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걱정이다. 미국은 자신을 절멸시킬 수 있는 소련(현재는 러시아)을 상대로도 동맹국들을 향해 핵우산을 넓게 펼쳐왔다.
그런데 미국이 한 줌밖에 안 되는 북한의 핵 위협이 두려워 한국을 향해 핵우산을 펼치길 주저할까? 오히려 북한이 핵 위협을 앞세워 남침을 시도할 경우 미국은 더욱 강력한 보복 의지를 과시하지 않을까?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비단 한미동맹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맹의 핵심은 신뢰이다. 그래서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굴복한다면 그 파장은 미국 동맹국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 세계 전략의 핵심인 동맹의 기초를 허무는 선택을 미국이 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또 남북한 사이의 엄청난 국력 격차와 국제적 위상의 차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한반도 전쟁 방지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남침을 감행할 것이라는 주장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이다. 무엇보다도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그 무기를 쓰는 순간 '자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북한이 적화통일 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을 공갈·협박의 수단으로 삼아 남한을 길들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른바 "북핵 인질론"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가짜 공포'에 불과하다. 북한이 대북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한국에 핵 협박을 할 것이라는 걱정이 유행해왔다.
그러나 이는 기우이다.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2019년에 주겠다던 5만 톤의 쌀도 거부했다. 또 올해 1월 김정은은 인도적 지원, 방역 지원, 개별 관광을 일컬어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북한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희망했지만,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핵 위협을 가한 사례 자체도 없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고 그 능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진 것도, "북핵의 노예"나 "게임 체인저"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상황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핵무기를 만든 것일까? 트럼프 행정부 때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맡았던 댄 코츠의 진단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실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 그는 2017년 7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김정은이 매우 특이한 타입이지만, 미친 것은 아니다. 그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북핵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식은 한국과 미국이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북한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비핵화 단계에 맞게 대북 제재를 풀어가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며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국민의힘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핵에는 핵'이라며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도 핵을 갖고 북한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토식 핵공유'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 주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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