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14일은 한국이 미국에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넘겨준 지 71년째가 되는 날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에게 서한을 보내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일체의 지휘권을 이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는 바"라고 밝혔다.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국 스스로 북한을 방어·격퇴할 힘이 없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주도의 통합사령부 구성 결의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의 온전한 환수는 꼬일 대로 꼬이고 말았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지휘권 이양의 조건은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이었다. 그런데 이 조건은 1953년 7월 27일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정전협정 체결을 통해 교전상태를 "중지"키로 한 것이다.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위기와 교전도 있었지만 정전체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권 이양의 원초적 조건은 사라지고 전시작전권 환수에 여러 가지 조건이 덕지덕지 붙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 "조건에 기반을 둔 전작권 전환"을 제안했고 이에 한미 양국은 2014년에 세 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구비,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필수 대응능력 구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를 바로 잡았어야 할 문재인 정부도 이를 계승하고 말았다. 2017년 6월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에서도, 그 후임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2021년 5월 정상회담에서도 "조건"을 재확인해주고 만 것이다.
이 사이에 전작권은 미국에게 '꽃놀이패'가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때 합의되었던 전작권 환수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연거푸 미국에 연기를 요청하자, 미국은 '그럼 미사일방어체제(MD)를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추진하자'고 청구서를 내밀어 상당 부분 관철시켰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흡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의 국방비 및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국 무기와 장비 구매 등을 '노골적으로' 요구해 상당 부분 관철했다. 뒤이어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때 위기에 처한 동맹을 복원·강화하자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더 많은 비용과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점잖게' 요구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대한 속내도 감추지 않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전환 조건을 충족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고,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은 한국이 모든 조건을 달성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억제·전투·승리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능력을 갖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건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심사이다. 한국군의 능력 증강은 미국산 무기와 장비의 지속적인 추가 구매와 떼어놓을 수 없다. 또 이를 위해 국방비를 늘리면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도 더 많이 받게 된다. 2025년까지 방위비 분담금 인상률을 전년도 국방비와 연동시키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은 조건의 핵심으로 한미연합훈련을 강조한다. 이 역시 다각도로 볼 수 있지만, 미국에게 있어선 한반도가 최적의 전지훈련장이라는 군사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전작권의 흑역사가 비춰주는 미래의 모습도 결코 밝지 않다. 조건이 계속 움직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남한이 전작권 환수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계속 실시하고 대규모 군비증강도 계속하면 북한도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북한도 억제력 강화를 명분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또 조건을 붙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러한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가 지속되면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안보 환경도 멀어지고 만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미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그동안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된 만큼, 이제는 '시기'를 정해야 한다.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전작권 환수를 통보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작권 전환의 최적의 환경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이승만이 말한 "현 작전상태"의 평화적이고도 완전한 종결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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