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에 나온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의 짤막한 담화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이에 앞서 김정은 총비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흥미로운 신호"라도 논평한 바 있다. 그러자 김여정은 "꿈보다 해몽"이라며 김정은의 발언을 오독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은 아마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쪽으로 해몽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정은이 대화와 대결을 거론한 것은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지 북한이 북미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착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의 기존 원칙은 김정은이 올해 1월 당대회에서 밝힌 것으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6월 당 전원회의에서 밝힌 "대화와 대결"은 표현을 달리 했을 뿐, 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게 김여정 담화에 담긴 행간이다.
쉽게 말해 북한은 '대화를 위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화를 미국의 시간끌기로 간주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너무나도 닮은꼴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일 때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골자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식의 전략적 인내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가 가시화될 때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했다는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와 대화의 필요성은 강조하면서도 대북 제재 및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한 억제 분야에 있어서는 어떠한 의미 있는 변화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 역시 매우 경직되어 있고 또 비생산적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하나둘씩 이뤄가야 할 목표를 대화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직되어 있다.
또 북한은 미국이 대화를 원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꼭 그렇지도 않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화를 하면 좋지만, 굳이 대화를 위해 먼저 양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미가 한반도 위기 예방 및 대화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조속히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북한도 분명 바뀌어야 한다. 장외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만나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실 북미대화가 열리면 북한이 미국에 따져 물을 수 있는 것들은 수두룩하다. '미국 대통령이 한 작은 약속(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을 의미함)도 지키지 못하면서 미국의 선의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경제제재를 그토록 강화하면서 인권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 '당신들은 군사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나한테는 핵을 내려놓으라는 게 공정한 거냐?' 등등.
김정은이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능동적이고 주동적인 역할'은 북한이 가끔 담화를 내놓고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핵무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발휘될 수 없다. 2018년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황망하게 끝날 위기에 처한 원인을 북한 자신에게도 찾으면서도 대화와 협상에 적극 나설 때에만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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