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작업자들은 모두 대피했는데, 왜 아무도 버스를 막아서지 않았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광주 철거 건물 붕괴 버스 참변은 세월호 참사를 닮았다

또 어이없는 참변이 벌어졌다. 도심을 달리던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이 날벼락을 맞아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9일 오후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졌던 이 참변은 안전하지 못한 공법으로 5층 대형건물을 철거한 것이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당시 공사 현장에 있던 철거 작업자들은 모두 사전 대피했다는 점에서 붕괴 조짐이 사건 발생 직전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점이 이 참변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는 희생자들에 대해 애통해 하고 사고를 일으킨 철거업체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참변이 발생했는가의 전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서 더는 유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은 건물 붕괴 원인을 조사하고 관련자들을 불러 철거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불법은 없었는지 샅샅이 들여다 볼 것이다.

이 참변 소식을 들으면서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3백 명이 넘는 엄청난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와 이번 광주 건물 붕괴로 인해 사망자 9명 등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버스 참변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럼에도 비교를 하는 것은 참변(참사)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도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장·선원 탈출하기 급급, 광주 건물 붕괴 참변 때도 같은 일이

우리 모두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세월호 참사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어린 학생 등 승객들에게 위급 상황을 알리고 구조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행태 때문에 국민은 더욱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났거나 일어날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 신속하게 소통하고 관련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안전 못지않게 자신들 때문에 위험에 높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그 교훈은 이번 참변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희생에서 얻은 교훈이 많은 공사 현장이나 작업장 등에서 여전히 무용지물이다. 광주 참변 조사·수사에서 이 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작업자들이 붕괴 징후를 어떤 식으로 느껴 황급히 대피했는지, 황급히 대피하면서 왜 건물이 붕괴될 경우 생길 수 있는 주변 통행자와 통행 차량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심문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0일 오전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 관련 기자회견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는 전날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사고 발생지인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의 시공사다. ⓒ연합뉴스

신호 작업자 대피하면서 도로 중앙으로 가 차 멈춰 세웠어야

또 철거 현장에는 철거 시 생길 수 있는 건축 자재 파편 낙하 등에 대비해 철거 건물 앞 도로를 지나는 행인을 두 작업자가 도로 양쪽에서 통제했다고 한다.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평소에는 이런 정도의 통제로도 어느 정도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이 일시에 붕괴될 때에는 대로 위를 달리는 버스나 자동차에 대한 통제가 즉각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하필이면 철거 공사장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교통 통제를 했어야 한다. 교통경찰에 연락하고 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신호 작업자들이 스스로 대피해 목숨을 건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분명 도로 앞으로 나가 차량들에 위험 신호만 보냈더라면 참변은 막을 수 있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10~20초면 충분하다. 이들은 자신만 멀리 대피하기 바빴지 건물에서 옆으로 10~20미터 더 간 뒤 도로 쪽으로 달려가 지나가는 차를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랬을까. 세월호 선장이나 일부 선원들이배 침몰이라는 대형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듯이 이들은 붕괴라는 대형 재난을 작업 중 전혀 생각하지도, 위기 대처에 관한 사전 교육도 받지 않고, 관련 매뉴얼 숙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은 교통 통제를 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철거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는 대형여객선 침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종종 일어난다. 철거하던 건물이 무너져 아래쪽에 있던 작업자가 깔려 숨지거나 지나가던 자동차를 덮쳐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숨진 사례가 발생해 뉴스를 통해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지자체나 노동당국의 현장 감독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수사해야

따라서 분명 건물 철거 현장에서는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행동 요령이 있어야 하고 또 있었을 터이다. 또 안전한 철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거 방법과 장비 사용 등을 사전에 정부 당국에 신고하고 노동 당국의 허가를 받은 뒤 철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경찰은 이번 참변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와 관련한 것도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자체나 노동당국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꼼꼼하게 파헤쳐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철거업체들에게 평소에 과거 철거 현장 사고와 붕괴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알리고 또 이들을 교육해왔는지도 묻고 따져야 한다. 노동부 근로감독관도 제 역할을 했는지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석면 해체·제거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언제 몇 명의 노동자를 투입해 석면 작업 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석면이 작업장 내부는 물론 주변에 흩날리지 않도록 매우 꼼꼼한 작업계획을 세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이 작업계획서를 노동관서가 사전 점검해 승인을 해주어야만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작업 중에도 근로감독관과 감리인 등이 안전 관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번 참변을 보면서 광주 건물 철거 현장에서는 안전감독관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또 엄청난 희생을 치른 세월호 참사에서 아직 우리 사회는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다. 정부는 이번 광주 참변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공간에 대해 항시적으로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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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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