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장관도 정리하지 못한 혼선, 여러 가지 비핵화와 비핵지대

[정욱식 칼럼]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핵 위협 없는 한반도'의 딜레마

북한 비핵화, 한반도 비핵화, 조선반도 비핵화, 한반도 비핵지대, 조선반도 비핵지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면서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최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은 이러한 혼선을 수습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참모가 4년이 지나도록 기본 문제도 정립하지 못한 것은 분명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언론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부터 정리해보자.

첫째, 북한은 1991년 말에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한 이후 '조선반도 비핵지대'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사용한다.

일각에선 북한이 외무성 영문 홈페이지에 소개된 4.27 판문점선언 영문 버전에서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turning the Korean peninsula into a nuclear-free zone'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바꾸는 것'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면서 북한이 여전히 '조선반도 비핵지대'를 고수하는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과잉 해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20년 10월 22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한반도는 비핵지대가 되어야 한다(The Korean Peninsula should be a nuclear-free zone)"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지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북한 외무성 영문 번역과 바이든의 발언은 '핵 없는 지대'라는 일반론적 의미를 띤 것이지, 국제조약인 '비핵무기지대(nuclear-weapon-free zone)'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참고로 비핵무기지대를 줄여서 부르는 비핵지대의 공식적인 영어 용어는 'nuclear-free zone'이 아니라 'nuclear-weapon-free zone'이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은 적어도 당분간은 유효하지 않다. 우선 북한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이 표현에 합의한 적 자체가 없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하고선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은 한반도 비핵화이며 이는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를 하기로 합의는 했지만, 이게 뭔지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를 두고 북한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였던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줄곧 강조했던 바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정의용 장관도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선언은 반쪽짜리이다. 남북한 사이의 합의여서 한반도 핵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미국의 대북 핵 불사용과 불위협, 한국 내 핵무기 재배치 금지와 같은 의무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존 볼턴과 같은 강경파들의 핵심 논리이기도 했다. 비핵화의 대상과 주체는 남북한으로 한정되는 것이지 미국의 의무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와 핵 위협 없는 한반도

기실 어떻게 표현하든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 기조는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에 담겨 있다.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한 남북 정상의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간단치 않다.

1991년 이래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했다는 근거는 없고 한국도 비핵화를 준수하고 있기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실현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의 대상에 핵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생물무기,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도 포함시켰다. 다행인 것은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집중하는 기류가 읽힌다는 점이다.

그래도 핵심적인 문제는 남는다. '핵 위협 없는 한반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어도 핵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핵 삼축체계는 전략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데, 이들 무기는 한반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는 북핵 해결 못지않게 미국의 대북 핵 위협 해소 방안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미국의 대북 핵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약 50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미국도 모두 폐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장 비현실적인 방법이다. 미국을 포함한 모든 핵보유국들의 핵폐기도 언젠가는 달성되어야 할 목표이지만 말이다.

기실 이 딜레마를 푸는 게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핵 위협이 없는 한반도'에 다가서지 못하면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 창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방안은 북핵 해결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핵보유국들의 핵 위협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기에 현실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이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한이 '비핵지대 안'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대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비핵지대 밖' 당사자들로 이 조약의 의정서를 체결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기본적인 내용은 남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생산·보유·실험·접수를 하지 않고,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복잡한 것이 많지만, 이러한 내용이 기본 골격에 해당된다. 다른 지역의 비핵지대들도 이러한 내용을 공통점으로 삼고 있고, 유엔 군축 위원회가 1999년에 만든 '비핵지대 가이드라인'도 이러한 내용을 권장하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미국뿐만이 아니라 북한과 친한 중국과 러시아의 의무도 포함하고 있고 북한의 의무에도 법적 구속력이 부여된다.

나는 이를 두고 '다자적이고 법적 구속력을 갖춘 비핵화(MLBD, Multilateral Legally Binding Denuclearization)'라고 부른다. 즉, 한반도 비핵지대는 비핵화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의 방법론을 일컫는 것이다.

협상이 재개되면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협상 초기에 있을 수도 있고 중간에 있을 수도 있고 막판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리고 당분간 협상 재개가 어렵다면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는 것을 검토하고 공론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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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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