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타고 '산재왕국' 달려왔다

[손호철의 발자국] 37. 충북 추풍령 : 고속도로는 여러 실정에도 박정희가 '잘한 일' 중 하나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그립구나 추풍령 고개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유행하던 '추풍령 고개'라는 노래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고 간다니 무척 높은 고개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추풍령은 사실은 '낮아서 유명한 고개'이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사이에 있는 이 고개는 해발 221미터로, 소백산맥과 백두대간 사이에서 가장 낮은 고개다. 그 덕분에 기반시설 건설이 상대적으로 용이해, 경부선과 국도 제4호선이 지나가고 있고 경부고속도로도 이곳을 지나간다.

▲ 초기 경부고속도로의 사진이 추풍령휴게소에 전시되어 있다. ⓒ손호철

경부고속도로의 서울 방향 거의 중간지점에, 정확히 이야기해 부산톨게이트에서 195킬로미터, 서울톨게이트까지 205킬로미터 지점에, 추풍령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에 들어가면 벽면에 진열된 빛바랜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의 다양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위대한 도전'이라는 제목 아래 공사를 지휘하는 박정희의 사진, 건설장비가 없어 인력으로 공사를 하는 사진, 군장비가 동원된 사진, 용달차가 느리게 운행하던 초기 고속도로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있자, 갑자기 대학 시절인 7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서울 부산 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에의 길이다. 1970년 7월 7일 대통령 박정희.' 휴게소를 나와 고속도로 쪽으로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 30미터를 자랑하는 거대한 탑이 자리 잡고 있다. 탑 아래쪽에 위치한 받침대에는 공사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부조 위에 이 같은 글씨가 쓰여 있다. 국내 최초의 '전국적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준공을 기념하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준공기념탑'으로, 1028평방미터 화강암에 석공 연인원 7780명을 동원해 만든 거대한 건축물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고속도로 건설은 그린벨트 등과 함께 박정희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중의 하나이다.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우리는 전국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됐고, 그 부수적인 효과도 엄청나게 크다(물론 발본적인 생태적 삶, '슬로우 라이프'의 시각에서 '페스트 라이프'를 상징하는 고속도로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 정도로 '급진적'이지 못하다).

▲ 준공기념탑 기저 부분에 있는 조각과 박정희 칭송 글 ⓒ손호철
▲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지점인 추풍령 휴게소의 오버패스에서 본 경부고속도로 ⓒ손호철

도로, 즉 정겨운 표현으로 '길'은 문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시대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있었고, 중국과 티벳 사에는 차마고도가, 잉카제국에는 잉카로드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 도로의 꽃은 역시 고속도로이다.

박정희는 독일 방문 중 아우토반을 여러 차례 방문해 고속도로 건설을 구상했고 귀국 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은 그 당시 정부 예산의 23%로, 여당인 공화당과 경제부처조차도 재정파탄이 우려되고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야당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유진오 신민당 당수는 "히틀러의 아우토반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경부선의 철도 복선화가 있는 곳에 다시 고속도로를 만들어 파행을 하는가?", "고속도로를 만들어도 달릴 차가 없다. 부유층을 위한 호화시설일 뿐이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과의 지역 격차 확대와 빈부 격차를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야당 의원들은 건설현장으로 쳐들어가 땅에 누워 "우량 농지 훼손이 웬 말이냐, 쌀도 모자라는데 웬 고속도로냐"며 결사반대 구호를 외쳤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야당이 한 다른 많은 정당한 반대들과는 달리, 근사안적인 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박정희 정권이 건설 공사를 군사작전 식으로 '빨리빨리'로 건설한 것은 문제가 많다. 박 정권은 이 고속도로를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해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최단 시간이 2년 5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무리한 공사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77명이, 실제로는 이에 몇 배에 달하는 수백 명이 공사 중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이들 희생자의 위령탑은 금강휴게소 근처에 있는데, 그 이유는 최대 난공사 구간이던 청주 옥산면과 옥천 묘금리 사이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계 최단 시간 완성이라는 성과를 뒤집어 보면 최단 시간에 성과를 이루기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을 희생시킨 '산재왕국'이 숨겨져 있다. 현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고를 '자랑하는' 산재 사망률 등 우리의 부끄러운 생명 경시와 성과 제일주의, 즉 하루 평균 7명이 출근을 했다가 시체로 돌아오는 '산재왕국'의 원형이 바로 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

▲ 건설 장비가 없었던 시절, 인력으로 난공사를 군대식으로 진행했던 사진이 휴게소에 진열되어 있다. ⓒ손호철

사실 경부고속도로가 우리나라의 최초의 고속도로는 아니다. 그 전에 서울-인천 고속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인천 고속도로는 사실상 '지방고속도로'이기 때문에 진정한 전국적 규모의 고속고도는 경부고속도로가 처음이며, 이어 1970년 4월에 착공한 호남고속도로는 1973년에 개통됐다. 이후 수많은 고속도로를 건설해 이제 '고속도로가 없는 우리의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됐다. 2018년 말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부산을 5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인 4767킬로미터에 달한다. 거기에 일반도로 1만3983킬로미터 등 전체 도로 길이는 11만714킬로미터로, 세계에서 도로망이 가장 잘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아니 지방을 달리다보면, 사용자도 별로 없는,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도로들도 많아, 이제 우리도 일본처럼 건설업자들이 정부 예산으로 불필요한 도로까지 건설하며 경기를 살려나가는 '토건국가'로 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든다. 특히 사방에 거리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사기업이 건설한 민자 도로가 널려있어, 이를 달릴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 언젠가 서울~부산은 '삼성도로'를, 서울~광주는 '현대도로'를, 서울~강릉은 'SK도로'를 달리는 날이 오는 것 아닌지 모를 일이다.

▲ 무리한 공사 진행으로 목숨을 잃은 순직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난공사 구역이였던 금강휴게소 근처에 세워져 있다. ⓒ손호철

'이 고속도로는 박 대통령 각하의 영단과 지휘 아래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조국근대화의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자랑이다.'

경부고속도로 준공탑에서 고속도로 쪽으로 가면 고속도로 위에 다리를 놓아 양쪽으로 통행하는 차량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막힌 장면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즐기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는데 탑에 새겨진 '박비어천가'가 눈에 띄었다. 이를 보자, 고속도로를 생각하며 박정희에 대해 생겼던 고마움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50주년을 맞아 2020년 6월에 새로 세운 기념비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어려운 공사를 완성시킨 건설부 관계자와 시공업체 직원 531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정희의 이름 뒤에 가려져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공로를 기억하는 의미 있는 기념비지만, 이름 없이 스러져간 건설노동자들의 이름은 없는 것이 아쉬웠다.

'본 고속도로는 5000년 우리 역사에 유례없는 대토목공사이며, 조국근대화의 초석이 되고 국가 발전과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국민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

"아니 이건 또 뭐야?" 그 옆의 또 다른 기념비를 보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조국근대화의 초석'에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국민정신'이라, 유신시대에 많이 듣던 이야기가 왜 여기에 쓰여 있나? 놀라 자세히 보니, 충격적이게도 50주년 기념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명의로 세운 기념비였다. 이 글이 197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에, 박정희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촛불항쟁 뒤 집권한 자칭 '촛불정부'의 각료가 쓴 글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공사는 어려운 여건에서 국내 자원과 기술로 이룬 중요한 업적이지만, 군대식 속도전으로 불필요한 인명 피해가 생기는 등 이후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된 '빨리 빨리주의'와 인명 경시, 그 결과로서의 '산재왕국'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대 '촛불정부'의 기념비이라면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 준공 50주년 기념비. 김현미 장관의 글은 촛불정권이 아니라 유신정권의 글 같아 충격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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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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