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오독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최창렬 칼럼] 당심과 민심 사이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 핵심인 윤호중 의원은 비주류인 박완주 의원을 105대 64라는 큰 표 차이로 이겼다. 민심은 친문의 2선 후퇴를 포함한 쇄신을 요구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은 친문 핵심을 원내 전략의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당 대표 선거에서 또다시 친문 색채가 분명한 인물이 선출될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유권자 일반의 민주당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독해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심이 왜 민주당을 심판했는가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진단이 나와야 하고, 민심과 당심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지를 정확히 성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재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조국 사태와 당의 오만 및 무능 등을 패인으로 지적하고 반성하자 강성 친문 지지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3선 의원들은 "당을 위한 관심과 충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당의 위기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검찰개혁으로 포장되고 오히려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는 진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구체적인 패인 분석을 찾기 어렵고 심도 있는 당내 토론과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당 대표 선거에서 선거 패인과 쇄신책이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친문 권리당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당내 선거 구도가 원인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보궐선거에 귀책사유를 제공할 때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그리도 쉽게 바꾸면서 민심의 비중을 늘리도록 당 대표 선거 규칙을 바꾸지 않는 것은 기득권화된 민주당의 모습을 표징한다.

'총선거와 지방선거는 회고적 투표의 성향이 작용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정권심판론이 작동해서 졌지만, 대선에서 전망적 투표의 측면이 부각된다면 민주당이 이길 수 있다'는 막연한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게 아니라면, 선거 후 3주가 지난 현재 민주당에서 쇄신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선거 민심에 대한 오독(誤讀)을 넘어 난독(難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위험한 논리는 '재작년 조국 사태 때문에 이번 선거에 졌다면 지난해 총선에서의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식의 반론이다. 미래통합당의 수구냉전적 기질의 노출에 의한 반사이익,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정권을 담당한 세력에게 해법을 기대한 심리가 당시 민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보는 게 편향을 배제한 분석일 것이다. 이번 선거도 국민의힘이 대안세력으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민주당 심판론에 기인한 반사이익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논리의 연장이다.

특히 민주당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변화가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 보여줬던 냉전시대의 유물인 색깔론과 좌파 독재 타령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진영논리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정권과 관련된 수사를 막은 집권세력에 대한 중도층의 이탈과 민심 이반 등으로 국민의힘이 승리했지만, 국민의힘은 더 이상 지난해 총선 때처럼 원천적 한계를 안고 있는 정당이 아니다. 물론 국민의힘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동적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탄핵 불복론과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는 다른 질적 변화다.

집단지성의 발현으로서의 선거는 과학처럼 정확하며,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양한 층위의 정치적 비정상에 대해 반드시 반응하고 대가를 지불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은 선거 이후의 당 대표 선거에서 친박 핵심인 이정현을 대표로 선출했다. 그해 가을,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의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고 이후 대선, 지방선거, 총선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민주당이 박근혜 탄핵 프레임과 국민의힘의 시대착오적 행태로 챙겼던 반사이익은 사라졌다. 재집권을 하기에 지금의 민주당은 허약하고 위험하다. 정권교체론이 선거구도로 짜이는 순간 어떠한 후보도, 정책도 무용지물이다.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민심이 확산되기 전에 민주당은 변해야 하고 혁신해야 한다. 당심은 절대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