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노인빈곤'과 '고령근로'의 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연금개혁, 고령근로와 정합성 기초로 논의되어야…"

기대여명이 길어지는 만큼 은퇴 후 일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2020년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애 가장 오래 일한 주된 일자리에서의 은퇴연령은 평균 49.9세(남성 51.2세, 여성 47.9세)인 것에 반해, 장래에도 계속 근로하기를 희망하는 연령은 평균 73세로 둘 사이의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들의 평균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편 55~64세 고령자 고용률은 1998년 58.8%였던 것에서 매년 증가하여 2019년에는 66.9%에 이르렀다.

물론 고령자 고용의 증가가 한국에서만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서구 국가들의 경우, 1990년대 초반까지 조기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점차 공적연금의 재정압박이 가중되면서 조기은퇴 경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에 따라 수급개시연령의 연장, 조기연금 수급 시 급여 감액 등 고령자들로 하여금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조치들이 고령자 고용정책과 병행되었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상당수의 국가들에서 고령자 고용률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령자 고용의 증가도 서구 국가들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가?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 한국의 고령자들은 노후소득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일을 해야만 하는(must work)' 상황에 처해있다. 이미 공적연금을 통해 노인빈곤 문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관리해 온 서구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고령자들은 60세 이후에도 불가피하게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의 약 58%가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을 계속하겠다고 답하였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고령자의 약 93%가 앞으로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나 노령연금 수급권을 확보하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노령연금의 월 평균 급여액은 2019년 기준, 약 52만 원으로 은퇴 후 괜찮은 노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연구원에서 노인가구의 필요 노후소득을 분석한 연구결과('노인가구의 소비수준을 고려한 필요 노후소득 연구')에 따르면, 노인 단독가구는 월 130만 원, 부부가구는 월 210만 원이 노후에 필요한 적정소득으로 산출되었다. 현 시점의 연금 급여액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고령자들이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떠올리게 한다. 2014년 이후 기초연금이 계속 확대되면서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이 과거보다 크게 증가하였지만 노후에 필요한 적정소득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이후나 이미 노인이 된 이후 재취업한 일자리의 질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자들의 노동공급 총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노동수요(기업) 측면에서는 이들의 낮은 생산성과, 사회보험료와 같은 비임금 노동비용의 부담을 들어 퇴출압력이 강하게 나타난다. 서구 국가들에서 1980년대 이후 자동화와 같은 기술변화로 인해 고령인력의 상대적 수요가 크게 감소하면서 고령자들은 좋지 않은 일자리로 내몰렸고, 그 결과 고령 일자리의 질은 더욱 낙후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한국의 고령 일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그동안 고령 일자리에 대한 노력을 방기했던 것은 아니다. 그 예로,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한 60세 정년연장, 고령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 허용 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2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에서 고령자들에 대한 관점을 생산과 소비의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하는 고령사회 구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안에 고령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관한 질적 측면의 구체적인 고민들은 빠져있다. 공공부문의 노인일자리, 사회서비스 확충 등 고령 일자리의 확대를 큰 틀에서 제시하고 있으나, 아직 괄목한 만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5년마다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음에도 고령자 일자리의 질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연금개혁의 영향으로 2033년에는 수급개시연령이 65세로 연장됨에 따라 은퇴 후 연금수급까지의 소득단절(crevasse) 기간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이 되면 국민연금 수급률이 7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과정에서 급여 수준이 그만큼 증가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현재 노동시장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미지수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일을 해도 되는(may work)' 노년의 미래가 다가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연금개혁 과정에서 노후소득보장체계 재설계는 반드시 고령근로와의 정합성을 기초로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고령자들을 둘러싼 논의들이 노후빈곤 완화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후소득을 보장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일하는 노인들이 더 이상 가난하지 않도록 괜찮은 고령 일자리와 노후최저보장 강화의 정책 조합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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