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도-마조히즘의 극사실주의 '노동 소설'

[양지훈 변호사의 법과 책] <요즘 애들>

계간 <창작과 비평> 2021년 봄호에 실린, 박상영의 단편소설 '요즘 애들'을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과거 회사 생활을 계속 떠올렸고,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는 게 조금 힘들 정도였다. 이 소설 역시 나는 새로운 '노동 소설'로 분류할 수 있고, 그렇게 볼 때 더 정확한 독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같은 책에 실린, 한영인의 문학 평론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는 지금의 노동소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어 함께 읽을 만하다).(☞ 바로 가기 : <창작과 비평> 2021년 봄(통권 191호))

C매거진 인턴 생활

황은채와 '나'는 대기업 계열사인 'C매거진'의 인턴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다. 이들은 C매거진을 퇴사하고 '나'는 한 방송국의 정규직 기자가, 황은 미디어 프로덕션의 유튜브 담당 팀장이 되었다. 이들이 몇 년 만에 만나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재회하게 되었고 '나'는 황과 함께한, 사회 초년생 시절의 뜨거웠던 C매거진에서의 인턴 경험을 회고한다.

C매거진 역시 보통의 회사만큼이나 그들에게 열정노동을 요구했다. 문제는 회사의 상사들이었는데, 특히 문제된 이가 있었다. 불과 서너 명 남짓이 근무하는 잡지 회사에서 그들에게 가장 가혹한 인물이 바로 위 상사인 '배서정'이었다. 그는 업무 지시의 외피를 둘렀지만, 실상은 직장 내 괴롭힘에 가까운 언행을 황과 나에게 일상적으로 행하는 인물이다. 멀리서 보면 그 업무 지시는 정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와 황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것이었으며, 자기 기분에 따라 막말을 일삼는 것이었다. 배서정이 이들에게 추궁할 때 자주 쓰는 말이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란 말이다. 느닷없는 자기반성과 당혹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급기야 황은 배서정의 폭언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몰래 진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고, '나' 역시 배서정의 직장 내 괴롭힘에 폭발하여 마지막 항의를 하고 장렬히 퇴사한다.

조직의 밑바닥, 인턴의 노동 조건

근로계약을 체결한 모든 근로자는 '사용자-근로자'의 계약 관계에 더하여, 중첩적으로 근로자들 사이의 위계 관계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 근로자들 사이의 위계에 기반한 노동의 분배(누가 어렵고 힘든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는 필연적으로 긴장과 폭력이 작용하는데, 이때 가장 큰 피해자는 위계의 밑바닥에 속한 신입 인턴이나 비정규직들이다(실제 화이트칼라 세계에선 사용자-근로자보다 근로자들 사이의 갈등이 더 자주 벌어진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부품과 함께 서 있는 블루칼라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위계를 뚜렷하게 자각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신체를 기계화한다. 화이트칼라 역시 조직의 위치 안에서 분배받은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할 때가 있다. 황과 '나'와 같은 인턴은 아침엔 커피를 내리고, 오후 2시엔 반드시 트위터 맨션을 해야만 하고, 주기에 맞춰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 인턴들의 노동 안에는 주어진 정규 노동량에 더하여, 조직원들의 노동과 환경을 일상적으로 보조하고 관리해주는 추가 (돌봄)노동을 포함시켜야 한다. 과거 C. 라이트 밀즈가 지적한 것처럼, 인턴들이 정규/돌봄 노동에 상사들의 비위까지 맞추는 감정 노동을 더해야 한다는 현실을 보면, 화이트칼라 노동의 질은 블루칼라의 그것보다 더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불평등한 노동 분배에 관여하거나 방조한 상사들 중엔 과거 노동 해방을 부르짖었음 직한 586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오히려 그들의 위선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586들의 위선

한때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이, 지금 사적 영역에서의 옳음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C매거진의 편집장이 학생운동을 했음에도 폭력적인 사용자의 대리인이 되었고 '우리 가족'을 내세워 직원들을 공공연하게 노리개로 삼고, 방송국 롤모델인 남기자는 공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여 은근한 차별의 냄새를 풍기거나 느닷없이 부하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특히, 남기자는 과거 파업 얘기를 하며 가끔 울기도 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통증'을 딱 그만큼만 전시하는 것이 유효한 곳에서 하는 적정한 범위의 감정 표현이어서, 지옥 같은 인턴 경험을 했던 '나'에겐 생경하게 보인다. 남기자가, 해고된 비정규직의 집회를 보고 '나'에게 "쟤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윗사람들이 나쁜 놈들이지"라고 말할 때,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예상 가능한 통증의 범위'는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도래한 것이기도 하다. 편집장은 취업이 보장된 안정된 대학 시절, 정권 타도를 부르짖을 수 있었을 테고, 남기자 역시 정규직 직원 신분에 도덕적 우월성을 선점한 상황에서 파업을 낭만적으로 회고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아이러니는, 그러한 안락함 위에 스치듯 지나갔던 '이념'이 현재 이들의 비겁함에 대한 알리바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 때의 정의로움이, 그들로 하여금 황과 '나'를 '요즘 애들이란…' 말로 정리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이제 과거를 부정당하는 자들은 요즘 애들이다. 오직 요즘 애들만이 스스로 과거를 부정한다. 이들은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나아가지 못한 원죄를 숨길 수밖에 없는데, 중도 퇴사가 곧 '사회생활 못함'의 직접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C매거진의 인턴 경험을 말하는 것이, 지금 정규직이 된 회사 생활에도 손해가 됨을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회사, 사도-마조히즘의 세계

가장 가혹한 상사였던 배서정은 원래부터 나쁜 상사였나. 배서정 역시 누적된 폭력에 적응한 사원일 뿐, 이 세계에 태생적 악인은 없다. 그녀는 지금도 편집장의 폭력적인 대화를 묵묵히 견딜 뿐인데, 그것은 스물셋에 입사해 18개월의 수습을 버틸 때 터득한 생존 기술일 것이다. 배서정은 실은 황과 나와 같은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미리 보낸 노동자에 불과했으며, 그동안 감정과 생각을 잃고 C매거진과 편집장에 완전히 포섭되어 다시 황과 '나'를 괴롭히는 가해자-피해자인 인물이다. 편집장이 배서정을 갈구면 배서정이 황은채와 '나'를 괴롭히는, 사도-마조히즘의 세계는 이렇게 구성되었다. 이러한 폭력을 용이하게 만드는 구조는 그 폭력이 미치는 범위와 관계있다. 정규직인 '우리 가족' 안에서만 폭력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C매거진 밖에는 무급에 가까운 인턴 기회라도 얻으려 하는 수많은 취업준비생이 존재하고, 방송국 밖에는 이곳에 진입하려는 산업예비군과 비정규직들이 역시 존재한다.

누가 가장 나쁜 놈인지, 어떤 놈을 타도해야 이 세계를 혁파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야기 속에 우리들의 사장님, 사용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과거를 배반한 최상위 근로자 586들을 직접 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사도-마조히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당연히 자기 반성을 해야 할 자는 인턴들이 아니라 편집장이고 586들이라면, 이제 인턴들은 자신을 숨기지 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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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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