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참패하고 염치도 잃었다. 성추행 물의를 일으켜 열린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파렴치한 공천이 부른 자업자득이라는 비난을 더불어민주당이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원칙 뒤집은 민주당의 '자가당착'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더불어민주당 당헌 96조 2항)
2015년 6월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상곤 혁신위'가 당 혁신 및 정치개혁 방안으로 이 조항을 당헌에 담았다. 당헌에 따르면, 이번 재보궐선거는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물러난 탓에 열린 선거여서 공천 자체가 불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지내던 시절에 했던 이 '대국민 약속'을 뒤집지 않고 민주당이 무공천으로 자숙의 길을 걸었다면 4.7 재보선이 '대선 전초전'으로 부각될 이유도 없었다.
전국단위 선거 4연승에 도취한 민주당의 권력욕에 망각과 표변은 순식간에, 집단적으로 진행됐다. 이 당헌을 처음 적용할 상황이 닥치자 민주당은 지도부가 나서 "후보를 내서 책임을 지겠다"며 보궐선거 공천 여부를 전당원 투표에 부쳤다. 당헌 개정에 대한 찬성률은 86.64%로 압도적이었다.
투표율은 26.35%에 불과했지만, 눈에 띄는 반발도 없었다. 저조한 투표율에 효력 논란이 일었고 전당원 투표를 이용해 민감한 의사 결정의 책임을 당원들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당헌 개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민주당이 당헌 개정이라는 무리수를 둬가면서 후보를 낸 이유는 간단하다. 박원순 전 시장의 명예회복과 '적폐' 세력에게 서울과 부산을 맡길 수 없다는 선민의식이 작동했다.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열린 뒤에도 민주당은 박원순, 오거돈 성폭력 사태에 대한 자성과 사과를 뒤로 물렸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우상호 의원을 비롯해,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2차 가해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 사과하라"고 민주당에 눈물로 호소하기까지 했다.
결국 민주당은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된 원죄와 당헌을 변경했던 책임은 물론,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2차 가해만 부추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부동산 '적폐청산'… 오히려 '내로남불' 각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했다. 부동산 폭등에서 기인한 상실감, 박탈감과 불평등·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LH사태를 기점으로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여당은 사과보다 "부동산 적폐 청산"으로 맞불을 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이번 계기에 우리 사회 불공정의 가장 중요한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한다면, 우리나라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 했고,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도 "이것만(부동산 투기) 잡아도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업적이 될 수 있겠다는 욕심을 가져본다"고 했다.
하지만 돌파구로 내세운 '부동산 적폐청산'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본인 소유의 강남 주택 전세금을 14% 올려받았고, 전·월세 상한제를 주도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법 시행 전 자신의 아파트 월세를 9% 올려받았다.
"정부가 노력하면 전월세 시장은 안정될 것"이라고 국민을 안심시켰던 김상조 전 실장과 "법이 시행되기 전에 전·월세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 초기에는 혼란이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던 박주민 의원 모두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에 반(反)했기 떄문이다.
여권 내부의 '적폐'가 속속 드러나면서 정부·여당의 메시지는 스스로를 '내로남불' 세력으로 만들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비판했던 '4대강 사업'과 똑 닮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도 앞장서 처리했다. 초대형 국책 사업을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찾아 독려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등 각종 사전 절차를 면제해 준 법안에는 가덕도에 신공항을 조성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이었다. 심사한 여당 의원들조차 자괴감을 토로했다. 온갖 특혜 조항에 정부 부처들까지 난색을 표했지만 나쁜 선례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20년 집권' 야심 물거품 위기
잘못 맞춘 선거 전략이 부른 민주당의 후폭풍은 거세질 전망이다. 강경 기조를 끌어온 의원들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당장 선거를 이끌어온 지도부에 대한 사퇴 요구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참패 성적표를 받은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수습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선 지도부 총사퇴 등 거취에 대한 논의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최고위가 끝난뒤 기자들과 만나 "당이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더 개선하고 채울지, 또 민생과 개혁 과제는 더 철저히 해야 된다는 의견을 나눴다"며 "지도부 거취와 관련된 것은 내일(8일) 의원총회에서 논의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대선 출마를 위해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당헌 개정을 주도하고, 선거까지 패배하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총선 직후 40%대에 육박했던 그의 지지율은 한 자리수로 내려앉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대선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줬다.
반면, 대권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윤 총장의 정치적 입지를 키워준 절대적 역할은 정부여당이 했다.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주도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 시즌2'를 주도한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활약한' 결과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취임 초부터 '윤석열 때리기'에 집중했다. 라임자산운용 사건 등을 수사하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시키고, 검찰 인사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비롯한 윤 총장의 측근들을 대거 좌천시켰다. 지난해 11월에는 윤 총장에 대해 징계를 내렸지만, 법원은 징계 처분을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호응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법사위 회의마다 '윤석열 난타전'을 벌였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폐지하고 '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며 검찰개혁 시즌2의 포문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윤 총장이 '검수완박'을 외치며 대선 가도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자충수가 됐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최대 고비에 직면한 민주당이 진영 정치의 습성에서 전환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5선) 우원식(4선) 홍영표(4선) 의원이 차기 당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재보선 참패에 따른 '로우키'는 불가피하더라도, 차기 당권 주자들이나 대선 후보들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표심이 좌우되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지지층 정치의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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