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집권 후 미일 양국은 처음으로 면대면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의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과 더불어 '2+2 회의'를 가진 것이다.
양국은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기존 국제 질서에서 벗어난 중국의 행동이 국제 사회에 정치‧경제‧군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중국을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 나아가 일본은, 중국이 가장 금기시해오는 홍콩 및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국가 안보를 고려한 적절한 대응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실제로, 미일관계 전문가인 나카야마 도시키로(中山俊宏)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이번 2+2회담의 메시지는 '중국은 확실한 위협이며, 미일 동맹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공동발표문에 처음으로 '중국'을 명시한 만큼, 주변 정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게 될 것"이라며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오쿠조노 히데키(奧薗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톤의 메시지가 나왔다"는 우려처럼, "중국에 대한 비난 수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는 평가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에는 "이로 인해 일본이 미중 패권 다툼의 최전선으로 스스로 다가간 것이 아닌가?"는 일본 정부에 대한 성토도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중국의 더 강한 반발 등이 우려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을까? 이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과 같은 일본의 절박한 사정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미일 양국이 공동선언에서 중국을 명시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양국이 일본에 위협이 되는 중국의 '해경법 (海警法)'에 유감을 표명한 사실에 주목했다.
해경법은 중국 연안의 해상 경비를 담당하는 중국해경국의 권한과 역할을 대폭 강화한 법으로 지난 2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의 핵심은, 중국이 주장하는 관할 해역에서 위법 행위 단속 등을 이유로 다른 나라 선박에 퇴거 명령을 내리고, 필요시에는 무기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이다.
다시 말해 중국은 해경법 제정으로 영토 및 영해 분쟁이 있을 때 중국의 해양 경찰력이 더 강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실상 군대와 같은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 법의 주된 대상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이는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해경법 제정 관련,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尖角列島)와 그 부속 도서는 중국 고유의 영토이다"라고 밝힌 바에서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의 애매한 허점을 파고 들었다"며 혀를 찰 뿐, 일본 정부로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상대방이 무력 도발한다면, 이쪽도 동등한 정도의 무력으로 대응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일 것이지만, 이러한 상식은 현재의 일본에는 통용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일본 헌법은 스스로 제정한 것이 아니다. 세계 2차 대전 패전 후, 사실상 미국의 주도하에 "일본이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고안하여 제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정식 군대를 지닐 수 없다.
무기 사용도 일본에 대해 외부에서 먼저 무력 사용을 해올 때에 방어 목적으로, 그것도 까다로운 절차 등을 통해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하물며 일본의 경찰 조직의 대외적 무력 사용은 그것보다 훨씬 더 쉽지 않게 되어 있다.
게다가 일본의 '해상보안청법'에는 영해 보존의 임무는 기술되어 있지도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해양경찰 소속이지만, 사실상 중국의 군대 선박과도 같은 것이 일본 측과 대립하게 된다면, 일본의 대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이 일본의 애매모호한 "그레 존( グレー・ゾーン, gray zone)"을 노린 행위를 해 올 경우, 일본의 경찰선인 해양순시선 등으로서는 난처하기 그지없게 된다. 그렇다고 자위대가 전격 나서기도 쉽지 않다. 상대는 군대 조직이 아닌 경찰 조직이며, 게다가 자위대가 섣불리 나서면 중국의 군대조직인 인민해방군도 끌어들어 자칫 일파만파의 전쟁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골치 아픈 상황이 일본으로 하여금, "차라리 미국으로"라며 미국 의존을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쿼드(QUAD)"에 대해 적극 환영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그동안 국가 안보를 전적으로 의지해 온 미국의 위상은 쇠락 일로에 있다. 일본의 안보 불안도 그만큼 더 커져만 간다. 이 상황에서 미국 외에 인도나 호주 등과 같이 반중 전선에 동참할 수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다.
이처럼 전범 국가이자 자국 헌법에 의해 스스로 국가 방위조차 할 수 없게 된 일본, 그러면서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 변죽을 울리곤 함으로써 주변국들과의 불화를 자초하고 있는 일본의 우파 정권은 안보 위기의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와 같은 미일 양국의 움직임에 대해 냉철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에게는 여시구진(與時俱進)의 자세가 절실하다. 이를 토대로 "한미일 동맹 강화"나 "가치 지향 동맹" 등과 같은 미명 하의 동상이몽적 측면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미일 대 중국"의 대치 전선이 강화될수록 반대급부적으로 우리의 '위상'은 치솟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양측의 대립이 더해갈수록 양측은 중견강국 대한민국을 자기들 편으로 할 필요가 그만큼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한미 양국 간 "2+2 회담"도, 이미 물밑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 준비에 적극 나선 중국의 동향 역시 우리에 대한 양측의 바로 이러한 입장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현재와는 차원이 다른 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한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보다 더 다각적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국면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더욱 당당하며 강단있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절실한 것이다.
* 우수근 부총장은 유튜브 <우수근의 한중일 TV>, 페이스북 <한중일 윈윈 클럽>을 운영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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