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 '자성의 불균형' 유감...도쿄올림픽 한미연합훈련 취소해야

[정욱식 칼럼] 9.19 군사 합의가 위태롭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북한이 거친 담화를 내놨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15일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훈련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3년 전 봄날'은 평창 대회를 계기로 남북대화가 본격화되면서 4.27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졌던 화해 국면을 의미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1월 8차 당대회에서 남북관계가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진단하면서 남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3년 전 봄날도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태도 변화의 척도 가운데 하나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거론했는데, 3월 8일부터 연합훈련이 실시되자 이번 담화를 내놓은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을 '붉은선(red line)'을 넘어선 것으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구체적이고도 강경한 맞대응도 경고하고 나섰다.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고, "교류협력기구인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 기구를 없애버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중대조치를 최고수뇌부에 보고한 상태"라고 밝혀 실질적인 행동에 나설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측이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군사분야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9.19 군사 분야 합의서의 파기 가능성을 가리킨다. 9.19 군사합의는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구축이 획기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19년 이래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군사 합의에 대한 양측의 평가도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의 종전 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김여정은 작년 6월 담화에서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폄하했었다. 그리고 이번 담화에선 파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밝힌 입장과 연결된다. 그는 2월 5일 인사청문회에서 대북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가 일상화됐다"고 반박했었다. 실제로 '북한의 대남 침투·국지도발' 건수가 2010~2017년 264건이었던 반면에, 2018~2020년에는 1건이었던 점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이는 9.19 군사합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에 따라 9.19 군사 합의가 파기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최대 성과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김여정의 담화도 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명백한 것은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말기에 들어선 남조선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김여정은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를 덧붙였다.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미국을 상대하겠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당대회 이후 긴 침묵을 깨고 2달 만에 나온 북한의 입장은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럽다. 북한의 불만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자성의 불균형'을 보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정은은 경제 실패를 자인하고 인민들에게 눈물을 보일 정도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대외 정책의 실패는 한국과 미국 등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나 역시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북한이 실패한 외교의 원인을 자신에게서도 찾지 못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북한의 담화가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는 한미연합훈련 강행시 상당 부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북한은 여지도 남겨두고 있다. 9.19 군사 분야 합의서 파기는 안보 수요를 줄여 경제 문제에 집중해야 할 북한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남조선 당국이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남북관계 회복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걸지는 않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에 따라 한미, 혹은 한미일의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가 중요해지고 있다. 수 주 내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내용을 담지 못하면 북한은 대화 자체에 흥미를 갖지 않을 공산이 크다. 또한 8월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도 중요해지고 있다. 훈련이 실시되면 북한은 9.19 군사합의서 파기 선언으로 응수할 가능성이 높다.

하여 한미일이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어차피 8월 연합훈련은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될 경우 시기적으로 겹치기 때문에 실시 여부가 불투명하다. 또한 한미일은 도쿄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의 참가를 희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속히 8월 연합훈련 취소를 선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타깝게도 2018년에 의기투합했던 남북한은 그 직후부터 멀어져만 갔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호응 없는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한미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등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대화의 문을 걸어 담근 채, 대남 비방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자성의 불균형'을 보이면서 말이다. 상대를 향한 양측의 민심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고착화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 당국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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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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