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전략적 인내'와 김정은의 '전략적 인내'가 만나고 있다?

[정욱식 칼럼] 북한 접촉 불응 언론 보도...기선잡기?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이번 주에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다. 블링컨은 귀국길에 알래스카에 들러 중국의 고위 관료들과도 회담한다. 미중 고위급 회담에는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함께 할 예정이다.

이들 연쇄 회담의 중요한 의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북정책이다. 대북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바이든 행정부는 수 주 내에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이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한국 및 일본과의 긴밀한 협의를 강조해왔던 만큼, 이들 동맹국들과의 2+2 회담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예민한 시기에 주목할 만한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와 <CNN> 등 외신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2월 중순부터 막후에서 북한에 외교적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은 평양으로부터의 답변을 포함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들 외신은 취재원을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라고 밝혔다.

이 보도는 두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나는 '북한이 왜 응답하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 시기에 왜 이처럼 민감한 보도가 나온 것이냐'는 것이다.

북한은 왜?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오자 국내외 여러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을 예측했다. 미국 정권교체기에도 이러한 예측이 유행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에도 나왔었다. 그러나 "도발"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핵실험은 2017년 9월 이후 중단 상태이고 장거리 로켓 발사도 그해 11월이 마지막이었다.

"도발"의 범주를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로 확대하더라도 2020년 3월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이후 아직까진 없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혹은 몸값을 높이기 위해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바이든이 대선 후보 시절 김정은을 "폭군"이라고 불러도 그 흔한 비난 성명 하나 없었다. 또 바이든 당선 이후 5개월째 일체의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시사해도 반응이 없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연합훈련 실시 의사를 밝혀도 침묵을 지켰다.

북한이 코로나 백신 제약 회사를 상대로 해킹을 했다는 발표가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국무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다고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에게 공개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요구한 것도 없다. 그저 8차 당대회에서 원칙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 지금까지의 전부이다. 또 앞서 소개한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접촉 제의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궁금할 법도 한데,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처음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도발적인 언행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도 한다.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문재인 대통령 및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연출한 '톱다운' 방식의 협상이 황망한 결과로 끝나자, 한국과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는 '우리식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식 전략적 인내'이다.

미국은 왜? 한국은 어떻게?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2개월이 지나도록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고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리고 있다. 그러자 미국 안팎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적극적인 관여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들이 나오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언론에 예민한 정보를 흘린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접촉 불응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의 2+2 회담을 앞두고 기선잡기의 측면도 띠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에 북미대화를 촉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은 북한이 접촉 제의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탐색적 대화에도 응하지 않게 되면, 미국은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기존의 접근을 포장만 바꿔 다시 내놓을 공산이 커진다. 적극적인 대화 모색보다는 대북 제재를 유지·강화하고 미사일 방어체제(MD)를 중심으로 하는 한미일 군사협력 복원·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전략적 인내'의 요체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이렇게 되면 '북한식 전략적 인내'와 맞물리면서 한반도 정세의 교착 및 악화가 고착화되고 장기화될 공산이 커진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입지도 크게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한미연합훈련 강행 및 대규모 군비증강 지속 등 스스로 선택한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복원시킬 수 있는 다리 한두 개를 놓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문제 해결 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을 존중·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되도록 설득하는 것은 기본에 해당된다. 또 '북한의 긍정적인 조치에 맞게 대북 제재도 완화·해결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도록 설득해야 한다.

8월 대규모 연합훈련이 도쿄 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시 이와 조우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8월 연합훈련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세계 6위의 군사력으로 올라선 만큼, 대규모 군비증강도 자제함이 마땅하다. 대규모 연합훈련·군비증강 지속과 한반도 평화·남북관계 진전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해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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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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