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저질러도 의사 면허 회복...의사들은 신성 불가침의 직업인가

[안종주의 안전사회] 이재명 지사, 오죽 했으면 간호사 백신 접종권 제안했을까?

의료법 빌미로 한 의사들의 백신 접종 거부는 자충수

대한민국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길까, 아니면 자신 또는 의사집단의 눈앞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길까? 물론 의사집단의 이익이 곧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란 논리를 펴는 의사들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 논리가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 맞는 걸까?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민주당이 나서서 중대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해서는 의사면허를 취소하거나 일정 기간 정지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키자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의사파업을 벌여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만약에 이것이 현실이 되면 우리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기에 놓인다.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만약에 의사들의 집단 파업으로 백신접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간호사들이 백신주사를 의사를 대신해 접종대상자에게 맞히는 것을 (한시적으로) 허용하자고 국회의원 등에게 제안했고 이에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주사 행위는 의사 또는 의사 지시·감독에 따라 간호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가 파업 중일 때 간호사가 단독으로 주사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의료체계 유지가 어려운 긴급한 경우에 간호사 등 일정자격 보유자들로 하여금 임시로 예방주사나 검체 채취 등 경미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허용해 주시기 바란다. 의사협회는 국민건강을 위해 국민이 부여한 특권을 국민생명을 위협해 부당한 사적 이익을 얻는 도구로 악용 중”이라며 “의사협회가 의사 외에는 숙련된 간호사조차 주사 등 일체 의료행위를 못 하는 점을 이용해 백신접종을 거부, 방역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준 특권으로 국민을 위협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들의 백신 접종권, 신성불가침의 성역 아니다

이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한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 백신은 꼭 접종해야 하니까 진짜 그런 상황(의사 집단파업)이 온다면 고민해볼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일 순 있겠다.”며 이 지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코로나19 백신 첫 접종을 앞두고 의사들이 지닌 고유의 백신 접종권이 과연 신성불가침의 성역인가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 그 어느 집단에 견주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은 전국적 전면 파업을 통해 그 힘을 확실히 과시했고 지난해 8월 의대생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하는 등의 극한 수단을 동원하자 정부는 이들에 대해 구제 불가를 외치다 몇 달 만에 손을 들고서 지난 1월 모두에게 재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의사들의 힘이 또 한 번 불패신화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의사들이 이처럼 강력한 힘을 우리 사회에서 발휘하는 까닭에 대해 △투쟁에 많은 돈을 동원할 수 있는 재정력 △구성원의 명성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특성 △정책 결정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 △집단행동 시 사회적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큰 집단 규모 △사회 최고의 전문 집단이란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응집성 등이 꼽히고 있다.(‘한국 의사들이 힘센 다섯 가지 이유’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한울, 2002. 안종주, 227~235쪽)

막강한 의사들의 힘, 자신들이 아닌 우리 사회가 부여한 것

의사들의 강력한 힘은 이런 이유 말고도 의료법 등을 통해 의사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우리 사회가 주었기 때문에 발휘된다. 따라서 ‘공부를 잘해서’라거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권한이나 힘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의사의 힘은 절제되어야 하고 신중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의료법 개정에 맞서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 운운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재명 지사가 우려하고 또 간호사 예방 접종권 부여까지 제안한 것은 과거 우리 의사들이 보여준 집단행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 그리고 2020년에 보여준 의사들의 집단 행태는 의사들에 대해 다수 국민이 불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국민 정서를 반영한 일침인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의사들은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과 힘을 지녔다. 병원 내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아도 의사 면허가 영구 취소되지 않는다. 각종 중범죄를 저질러도 영구 취소되는 일은 없고 형을 살고 나오면 대부분 곧바로 면허가 회복된다. 전문가 집단 가운데에서도 가장 특혜를 받아온 것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것에 대해 코로나 백신 접종조차 거부를 공공연하게 밝힐 정도로 강력 반발하는 것은 기득권 지키기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사실 의료법이 개정되더라도 그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의사는 전체의 0.1%도 채 되지 않은 터인데도 말이다. 우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잡아야 한다. 한데 의사들은 미꾸라지를 잡지 말라고 한다.

범죄자 두둔하는 집단에게는 설 자리를 주지 말아야

대한민국 그 어느 집단도 범죄자를 두둔하지는 않는다. 그 예외가 의사집단이 된다면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의사들 가운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와 같은 반인권, 반생명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 다수가 지지한다면 의사들은 이를 수용해야 할 것이고 국민 다수가 반대한다면 국회는 그 눈높이에 맞춰 손질하는 것이 맞다.

우리 사회는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한 면허 취소·정지뿐만 아니란 이번 기회에 선진국처럼 간호사·물리치료사 등 다른 의료인과 의료기사들의 권한을 확대해 단독 개업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의사들이 지닌 권한을 분산하는 보건의료 개혁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집중할 경우 사회가 이를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 만약에 하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번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울 경우도 제동을 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의사 파업은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능의 마비로 이어진다. 의사가 지속가능하고 상생하는 사회로 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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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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