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혁명가 백기완 선생을 떠나보내며

[기고] 민중해방 깃발 세워놓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 진보운동의 거목, 민주화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 불굴의 투사, 뛰어난 웅변가,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우리 시대의 가장 띄어난 민중 시인이자 우리말 구사의 대가. 걸출한 문필가, 진보진영의 큰 어른, 민중운동의 사상가 등등으로 불린 백기완 선생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는 다기다양하게 불렸지만, 나는 그를 한마디로 ‘민중해방의 길을 열기 위해 싸운 거리의 혁명가(이자 사상가)’라고 부르고 싶다.

선생은 가난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 등에 담겨 있는 이 땅의 민중의 한과 꿈을 자기의식 형성의 자양분으로 삼았고, 거리에서 장삼이사들과 어울리고 독학하는 가운데 우리 문화 속에 담겨있는 민중적 정서와 염원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분, 온 몸을 던져 투쟁하면서 희망을 만들어나간 민중만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은 분이다,

선생은 그들로부터 배워 민중해방이 실현된 새 세상을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 되 함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인 노나메기 세상이라고 불렀고, 그가 쓴 많은 저술들 속에서 노나메기 세상과 그런 세상을 향한 무지랭이들의 투쟁을 마술적 리얼리즘의 필치로 그려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새 세상이 올 때 까지 '흔들지 않고'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다. 그는 한걸음의 전진을 위한 거리의 투쟁에 나설 때에도 그 투쟁이 민중해방의 길을 여는 투쟁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한 진정한 거리의 혁명가였다. 이 점에서 그의 삶과 투쟁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용어들은 민중, 민중투쟁, 민중해방이다.

▲ 2019년 고 김용균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의 장례식을 찾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정택용

선생은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사랑했고,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그가 사랑한 우리말, 우리 문화란 사실은 민중의 언어와, 민중적 우리 문화, 우리 민중문화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민족통일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남북한 모두가 노나메기 세상이 되는 '해방' 통일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보편적 민중해방을 추구하는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선생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한 싸움에 앞장섰다. 이처럼 그가 민주화투쟁에 전력을 기울인 것은 단지 정치적 민주주의의 쟁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군부독재 타도 없이 민중해방의 길을 열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에 힘입어 민주화과정이 도입된 이후에는 민주화투쟁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민주화의 수혜층이 되어 서서히 체제에 포섭되어 간 것과는 달리, 선생은 한결같이 그 혜택에서 배제된 민중들과 함께 하는 민중운동의 전사로, 민중운동의 큰 스승으로 활동했다. 그가 보기에 노동배제, 민중배제의 민주주의는 (독점)자본지배체제 면죄부를 주는 무늬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1987년, 92년의 대선에서 ‘민중후보’로 나서 유세장에서 민중의 염원을 대변하는 사자후를 토해 냈으며, 이후에는 주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과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그들에게 몰아치는 비바람과 폭풍을 막아주는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었고, 지친 그들의 심신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큰 어른이자 좌절하는 자들을 호통 치며 그들을 다시 전사로 나서게 만드는 위대한 선동가로서 활동했다.

그런데 쇠약해 질 대로 쇠약해진 노구를 이끌고 투쟁현장을 누빈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노동현장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가족은 그를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숨을 거두기 직전 병상에서 그가 행한 일은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를 쓴 것, 가족에게는 '노나메기'라는 글자를 유서로 남긴 것이었다고 한다. 이 일은 거리의 혁명가이자 민중운동의 사상가였던 그가 행한 마지막 투쟁인 셈이다. 이렇게 그는 병상도 투쟁의 현장으로 바꾸고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장시인 묏비나리에서 말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를 몸소 실천하신 백기완 선생, 그는 민중투쟁, 민중해방의 깃발을 세워놓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누가 이 깃발을 치켜들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는 외친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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