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했던 학원 선생님이 CCTV 없는 곳에서 추행했다고 합니다"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열두 번째 이야기

"초등학생인 아들이 학원가는 걸 싫어하더라구요. 그땐 공부하는 게 싫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가 학원에서 강제추행을 당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이 아닌 아들이라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아 보였던 원장 선생님이 가해자라니 충격이 더합니다. 원장은 공부하던 중에 아이를 따로 불러 남들이 안 보는 데서, CCTV가 없는 곳에서 추행했다고 합니다. 트라우마가 남을까 봐 걱정입니다. 아이가 어려서 어른처럼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피해를 신고했을 때 수사기관이 믿어줄까요? 소문이 나면 어쩌죠? 이런 일이 있은 지가 여러 달 되었다는데, 아들은 왜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성폭력 사건의 경우 위험하다고 경계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중 집이나 학교에서 보호자나 지인에 의해 벌어지는 일들도 상당하다. 한층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제하며 무언가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힘든 만큼 아이들에게 발휘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일반 교과과목이든 예체능이든 예외가 아니다.

학습기관에서 발생하는 보호자 또는 감독자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을 반복하여 접하다 보면, 대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들이 있다. 우선 가해자가 평소 무뚝뚝하거나 괴팍했다기 보다는 아이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였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아이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 잠깐 남아보라거나 학업 중간에 따로 불러내서 보는 눈이 없는 상황에서 행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온순하고 왜소한 피해자에 대한 선호가 높다. 관리하는 아이들 모두를 상대로 범행하지는 않지만, 계속하여 범행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한 명 나타나 알려지면 추가 피해자가 발견되는 일들이 적지 않다. 다만 가해자가 '선생님'이라는 보호자이자 감독자의 위치에 있는 입장인 만큼, 피해자들이 부모에게 빨리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상당수가 가해자로부터 분리된 후 말하고 심지어는 성인이 된 후에야 말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들의 입장에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어떤 범주까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피해가 추행 수준이고 이미 학원 등을 옮겨 가해자로부터 분리가 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심각한 피해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 괜히 들쑤셔 자녀에게 트라우마를 만들거나 안 좋은 소문이 나면 어쩌나 걱정도 생긴다. 위 상담 사례도 부모에게는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의 일이지만, 실은 세상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유형의 사건이다.

여러 걱정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조치를 하시는 게 맞다'라고 안내한다. 변호사로서만 갖는 입장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입장이고 개별적인 인간으로 갖는 입장이다. 특정 피해자가 맞닥뜨린 피해지만 발견되는 공통점에 비추어보면 가해자의 죄질이 나쁘고 '내 아이' 이후로도 재범이 계속될 것이 예견된다. 그러니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이 이미 한 짓에 대해서도 앞으로 할 짓을 감안해서도 필요하다.

한편 아이의 기억이나 상처는 지금 아이가 표현하는 수준이나 부모가 인식하는 수준에 있다가 그대로 잊히지 않는다. 상담소 활동가도 아닌 유료상담을 하는 변호사인데도 지난날 이런 피해가 있고 부모님께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처리되었는데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찾아오는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산다. 그러니 굳이 법적인 접근만이 아니더라도 조치가 필요하다. 피해자에게는 "그 사건은 니 인생을 흔들 만큼의 부피는 아니야. 하지만 그 사람은 네게 잘못했고,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어"라는 선언이 가장 우선되는 전제이자 필요한 조치다.

참고로 아이가 부모에게 말을 빨리 못하는 것은 부모를 불신해서가 아니다. 피해가 괜찮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작은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부모를 걱정하기 때문이고, 자신을 교육하는 선생님이 설마 자신을 나쁘게 한 것일까라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가 피해 당시 말을 못했던 것은 아이의 잘못도 부모의 부족함도 아니다. 이것이 법이 보호자, 감독자라는 신분의 사람들이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죄질을 극악하게 보는 이유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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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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