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동물→인간 최초 전파 규명 물 건너가나?

[안종주의 안전 사회]

코로나 백신이 코로나19 유행을 과연 끝낼 수 있을 것인가에 지금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면 의사학자(醫史學者)와 감염병 전문가 등의 눈길은 이 못지않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에게로 언제 어떤 경로로 최초의 전파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하고 있다. 중간 매개동물이 어떤 종류인지, 중국 우한시 화난수산물도매시장이 진원지인지가 최대 관심거리다.

이런 임무를 띠고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코로나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1월 중국 우한으로 들어가 조사를 벌였지만 최초 전파, 즉 코로나 기원 방정식을 푸는 데는 실패했다. 인간한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트린 동물이 박쥐인지, 아니면 천산갑 등 다른 동물인지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최초의 환자(Patient Zero)가 누구인지도 규명하지 못했다.

조사단은 최초의 코로나 환자가 나온 진원지로 많은 전문가들이 의심하고 있는 우한 화난수산시장을 직접 방문해 이 시장에서 팔린 동물들을 조사하고 시장 상인 등을 만나보았지만 코로나19 기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얻지 못했다. 초기 발병 사례들에 대한 미가공 원 자료(raw data)와 맞춤형 자료를 중국 쪽이 조사단에게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WHO 조사단에 기원 규명 핵심 원 자료 제공 비협조

WHO 조사단은 코로나19 발병 초기 단계였던 2019년 12월 우한에서 확인된 174건의 확진 사례에 관한 세부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중국 쪽에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 쪽은 이 요청을 거절하고 해당 사례들에 대한 자체 분석과 광범위한 요약본만 제공했다. 이는 이미 기존 중국 쪽 발표 논문 등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다.

조사단은 중국 쪽이 가공하지 않은 원 자료를 제공해줄 경우 이를 가지고 후향적 연구(retrospective study)를 할 계획이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심층 분석을 하면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얼마나 일찍,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졌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후향적 연구는 역학 조사를 개시한 시점 이전에 조사한 내용을 자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향적 연구(prospective study)와 비교하면 자료의 신뢰성이 약간 떨어지는 결점이 있지만 단시간에 결과가 판명되는 장점이 있어 전향적 연구가 곤란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미 코로나 기원을 밝히는데 후향적 연구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강조한 바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바이러스학자인 로이 홀(Roy Hall) 교수는 수년에 걸쳐 수집·보관된 혈액 샘플을 가지고 광범위한 후향적 연구를 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유사하거나 관련이 있는 동물에 대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으며 더 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더 가까운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코로나전쟁-인간과 인간의 싸움>(안종주 지음, 동아엠앤비 펴냄) 30쪽)

하지만 조사단의 계획은 중국의 비협조로 헛심만 쓴 셈이다. 이에 조사단뿐만 아니라 코로나 기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전문가들과 세계 많은 사람들이 화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 기원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협조와 시간 끌기를 통해 코로나 기원이 미궁에 빠지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최초 환자, 2020년 12월이 아니라 10월 가능성

코로나 기원을 찾아가는 연구 과정에서 만약에 하나 중국의 주장처럼 최초 유행이 2019년 12월이 아니라 이보다 두 달가량 이른 10월에 최초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중국으로서는 낭패다. 중국이 조기에 이 감염병의 존재를 외부에 투명하게 즉시 알리지 않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면 비난과 책임 추궁이 국제 사회에서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밝힌 공식 최초 발병으로부터 두 달 전인 2019년 10월 후베이성 일대에서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으로 92명이 입원한 사실이 있다고 WHO 조사팀의 말을 인용해 지난 10일 보도한 바 있다.

감염병 역사에서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이 밝혀진 뒤 그 감염병의 최초 환자, 즉 그 감염병의 기원을 찾아 나선 결과 이미 10~20년 전에 최초 환자가 있었던 사례는 여럿 있다. 에이즈의 경우도 1981년 미국에서 감염병의 유행을 인지했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 결과 이미 1960년대부터 환자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카바이러스 감염증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말마따나 모든 가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탈리아설, 동남아설을 비롯해 각종 음모론 성격의 주장에 대해 중국 우한설과 똑같은 힘을 쓸 필요는 없다. 가장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가설에 힘을 모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감염병 기원은 시간 끌수록 진실 규명 어려워져

우리만 의심하지 말고 다른 주장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 심도 있게 함께 조사하자는 중국 쪽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기원 규명은 하세월이 될 수 있다. 신종 감염병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힘을 빌리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형제 격인 2002년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2012년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모두 그 전파 경로와 진원지를 이미 밝혀낸 바 있다. 사스는 중국 광둥에서 박쥐→사향고양이→인간 경로를, 메르스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박쥐→낙타(단봉)→인간 경로를 각각 거쳐 감염병 유행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감염병의 기원은 시간을 끌수록 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워진다. 관련 자료가 사라지거나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하거나 폐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쇠는 달았을 때 두들겨라'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격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국제 사회가 힘을 하나로 모아 중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해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일에 전적으로 협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의 기원 규명은 앞으로 유사한 신종 감염병 발생을 막거나 대유행으로 번지지 않도록 만드는데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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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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