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 봉쇄정책의 설계자로 잘 알려진 조지 캐넌이 1984년에 쓴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이다. 그는 이후에도 미국의 외교정책이 너무 군사화되었다고 개탄했다. 자신의 전략적 조언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이념적·정치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자신의 의도보다 미국의 봉쇄 전략이 소련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과장하고 대응했다고 비판했었다.
소련은 20%, 중국은 2%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내에선 또 하나의 봉쇄정책이 어른거리고 있다.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서 말이다. 대중 전략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선 여러 가지 이견도 나오지만, 중국이 넘볼 수 없는 군사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거의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국방비를 늘리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만큼, 동맹국들을 독려해 중국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할 때 가장 강력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군사적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전략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우선 미국 및 동맹국들의 군사력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GDP가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 확실시되는 반면에, 중국의 군사력이 금세기 내에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20년 현재 중국의 국방비는 미국 국방비의 30% 수준이고 이 격차는 당분간 크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핵 전력에 있어서는 2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또한 군사력에서 중요한 것은 '누계' 군사비 투자인데 이 역시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의 군사력도 상당한 수준인 반면에, 중국은 북한을 제외하곤 명시적인 동맹국도 거의 없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및 동맹국들이 중국에 대해 군사적 봉쇄를 추구하면 자해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마저 있다. 물리적인 충돌은 차치하더라도 결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유리한 경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중국의 군비경쟁 잠재력이다. 소련의 1980년대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0%에 육박했다. 반면 오늘날 중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 수준이다. 이에 따라 소련 몰락의 향수에 젖어 중국을 군비경쟁으로 유도해 중국의 경제적 약화를 초래해야 한다는 일각의 발상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중국도 소련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또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의 결속이다. 미국이 2000년대 들어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에서 탈퇴해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본격화하고, 유럽에선 나토 동진을, 아시아에선 "재균형"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중러 결속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제1의 적으로, 러시아를 제2의 적으로 삼아 동맹국들과 함께 군사적 대응에 나서면 중러는 더욱 결속하게 될 것이다.
세계 2, 3위의 군사대국이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유라시아의 거대한 두 나라의 결속 강화는 향후 세계 질서의 중대 변수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할 때 가장 강하다"는 외침은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리도 함께 할 수 있어!'라고 응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에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들"로 불리는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 한반도 등에서 군사 활동도 눈에 띠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균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 및 동맹국들의 군비증강과 미국 주도의 동맹 강화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동맹국들은 중국과 군비경쟁을 불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동아시아의 여러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항해의 규칙 마련, 양안간의 대화 촉구, 동중국해의 위기관리,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울러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중국도 이러한 외교적 노력에 동참할 때, 자신이 주창하는 '평화발전론'이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우월성,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줘야
기실 미중 경쟁은 경제력과 군사력 등 '하드파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식 정치체제의 쇠락과 중국식 권위주의의 자신감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중반부터 미국 내에선 링컨 이후 최악의 당파성을 겪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 불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트럼피즘과 영국의 브렉시트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미국 주도의 세계 체제가 기후 위기와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나라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글로벌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도 결코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권위주의 체제'를 수출해서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던진 "도대체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냐"는 질문에 민주주의 국가들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중 전략의 핵심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정치경제 체제가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임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두어야 한다. 타자를 '악마화'하면서 내부의 모순을 감추려고 하기에는 그 모순이 너무나도 커져버렸다. 안보 인플레이션이 유행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화도 너무 커졌다.
이제는 군사화를 자제하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건과 자원을 가지고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과 '선의의 경쟁'이 가능해질 수 있다.
전체댓글 0